나는 과거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아주 좋아했다. 지금은 예전처럼 플레이하진 못하고 그저 유튜브를 통해 은퇴한 선수들의 영상을 보며 대리만족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프로선수들이 계속 뛸만한 대회가 없기 때문에 은퇴한 선수들은 주로 일반인들과 게임하는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영상에 나오는 일반인들은 대부분 실력이 좋은 편이며, 애초에 이들도 실력 있는 사람들을 찾기 때문에 은퇴한 선수들과 합이 잘 맞는다.
이런 영상을 보면 참 재밌는 점이 하나 있다. 패배한 일반인들 중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 '한 끗 차이였다', '이런 사람한테 내가 왜 지지?'와 같이 제삼자가 보면 확연히 체감할 수 있는 실력차에도 이들은 전 프로게이머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임에서 패한 후 흔히 말하는 '정신승리'를 하는 것이다.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자기합리화'란 "죄책감 또는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정신승리'는 이런 자기합리화의 일종이라 할 수 있으며, 보통 정신승리는 좋지 않다고 많이들 말한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결함이나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데 정신승리를 하게 되면 같은 잘못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승리 : 경합에서 겨루어 패배하였으나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은 지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는 것을 이르는 말(출처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하지만 내가 보는 게임 영상에서 상대방이 이렇게 정신승리한다는 점이 재미의 한 가지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정신승리가 '승패'를 떠나면 스스로를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보게 됐다.
보통은 정신승리를 하고 도망을 가기 때문에 다신 만나는 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도전장을 내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실력이 늘어 유명해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었다.(전 프로게이머라고 이미 알고 붙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음) 아마 보통의 정신승리 수준(?)이라면 다시 패배 후 이를 정당화하는 것이 괴로워 시도하지 않았을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를 뛰어넘어 '내가 질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하며 계속 도전해 결국 승리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정신승리가 승패를 떠나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유사한 방식으로 정신승리를 하고 있지만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말 유행했던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경우가 그렇다.
어쨌거나 "중꺾마"란 표현을 쓰려면, 마음이 꺾일 만한 상황을 마주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떻게 마음이 꺾이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패배를 객관적으로 보고 분석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결국은 그 상황을 어느 정도 합리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정신승리는 어쩌면 성장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경험인지도 모른다.(이런 과정 없이 스스로를 냉철히 분석하고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