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인생이 마라톤이라면? 큰 일이다.

체감할 수 있는 표현이 주는 힘

by 하상인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인생은 길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 역시 인생은 마라톤이라 생각했기에 지금까지 큰 성과 없는 글쓰기를 지속해 왔는지도 모른다. 계속 붙잡고 쓰면 길게 보였던 마라톤 코스가 끝나듯 막연하게 글쓰기도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 한 방송을 보다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건 어딘가 잘못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방송은 MBC의 인기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였다. 여기에 기안84님이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뛰는 모습이 나온 것이다. 20대부터 달리기를 해왔다고 하는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매주 연습을 했고 체중도 감량해 왔지만 이 대회 전까지 풀코스를 뛰어 본 적은 없었다. 영상으로만 봐도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완주해 냈다. 그가 첫 대회에서 완주해 냈다는 사실도 너무 대단했지만 나를 놀라게 한 건 5시간이란 기준이었다.



나는 이 방송을 보기 전까지 늦더라도 어떻게든 들어오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건 개인적인 차원의 기준이고, 대회 기준 아무리 늦어도 5시간 이내에 들어와야 완주를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인생을 마라톤이고 5시간 내에 완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여유가 없이 계속 뛰어야 한다. 만약에 대회라고 한다면 우리는 아무리 늦어도 1km를 대략 5분에 뛰는 속도로 계속 뛰어야 하는 것이다.(참고로 지금 기준으로 마라톤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완주한 사람은 케냐의 '켈빈 키프텀'으로 2023년 10월 8일 시카고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0분 35초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러닝머신 위에서도 2km를 뛰는데 12분 정도 걸리고 이후엔 더 못 뛰고 쉬는 내 입장에서는 1km를 5분에 달리는 속도로 4시간 이상 뛴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냥 한 마디로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인생이든 글쓰기든, 이를 마라톤에 비유하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체감조차 하지 못하는 개념으로 어떤 상황을 비유하며 인지하는 건 개인이 행동으로 옮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10만 자 정도 되면 1권의 책이 되므로 하루에 1만 자를 쓸 수 있다면 10일이면 충분히 채울 수 있다. 하루 1시간에 1천 자를 쓰는 사람이라면 10시간이면 하루 1만 자를 쓴다. 이렇게 간단히 생각하고 10일 내에 완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은 1시간 1천 자도 계속 쓰기 어렵다.



평소 꾸준히 일정 분량 이상을 써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그런 경험 없이 단순히 머릿속 계산만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하루도 못 가 포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100m 달리기처럼 기록은 나쁘더라도 곧바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일로 글쓰기를 접근한다면 훨씬 현실성 있는 일로 다가올 수 있다. 하루에 1만 자가 아니라 1천 자를 목표로 써 보는 것이다. 오전에 시간을 들여 써보면 몇 백자라도 쓸 수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1천 자 정도면 할만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막연히 많이 쓰는 표현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묘사하는 것보다, 가늠할 수 있는 일로 해야 할 일을 비유해 본다면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일을 시작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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