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컴퓨터로 글을 쓰다 보니 손글씨를 쓸 일이 많지 않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이 답답할 때면 펜으로 글씨를 쓴다. 나는 필체가 예쁘지 않고 흘겨쓰는 경향이 있어, 내 글씨는 다른 사람들은 잘 알아보지 못한다. 소위 말하는 악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으로 글씨를 쓰다 보면 어떤 날은 흘려 쓴 글씨체에서 단단함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숨기고 싶은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는 내가 특별히 손끌씨를 쓸 때 마음을 반영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연구에서도 밝혀졌듯 손을 쓰는 행위와 뇌는 긴말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많은 문학 작품에서나 현실에서도 감정을 심장이 놓여 있는 가슴에 비유해 묘사하지만, 실제로 우리 감정은 뇌에서 일어난다. 그럼에도 우리가 감정을 뇌가 아닌 심장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은 감정처리 회로와 논리처리 회로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브레인미디어 "뇌과학으로 보는 감정" 2013.5.23. 기사 참조)
때문에 손으로 쓴 글씨는 어느 정도 나를 반영하고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내가 글씨체에 대해 조금 더 예민하게 접근하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때 일 때문이다.
나는 앞서 언급했듯 악필이다. 글씨체 연습을 하는 책자를 사서 써보기도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필체를 바꾸고 싶단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당연히 필체를 두고 좋은 소리 듣긴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함께 기숙사를 썼던 친구가 내 글씨체를 두고 난생처음 듣는 좋은 말을 해준 것이다. 단 한 번도 필체로 좋은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없었기에 그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필체를 달리 쓰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지만 친구가 좋은 이야기를 해줘서 그런지 나도 그땐 글씨체가 달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히 든 생각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내 생각대로 자신 있게 살자고 마음먹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게 영향을 준 것 같은 기분은 들었다.
그래서 이때 이후 마음이 불안할 때면 마음을 바로 잡는 방법으로 일부러 글씨를 천천히 쓰기도 했다. 지금도 변화가 필요할 때면 컴퓨터가 아닌 펜으로 글씨를 쓰고 있다. 내 경험과 뇌과학 연구를 토대로 볼 때 펜을 들고 손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는 직관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