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인생에서 정말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인생인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자신에게 있어 몰입할 수 있는 일인지 알지 못하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르며 설사 몰입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더 할 수 없게 되는 일신상의 어떤 이유가 생길지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그런 점에서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건 큰 축복이다.
나는 평소 일을 할 때 집중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이 긴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오랜 시간 뭔가 몰입하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는 그만큼 인생에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는 의미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일찍 사무실로 나와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해보기도 했다.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긴 했지만 단순히 오래 앉아 있는 건 내가 생각하는 몰입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다 최근 조금은 낯설고 복잡한 일을 해보게 되었다. 평소 같았다면 거절했을 것인데 이상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간도 타이트하게 잡았다. 아마 나는 내가 이걸 해낼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자 평소에 찾아보지도 않았던 학술자료도 찾아봐야 했고, 관련 기관에서 제공하는 강의도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게다가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 동안 사무실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평소보다 늦은 시각 집으로 돌아갈 때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밖에 해내지 못한 내 모습에 허탈함도 느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문제를 대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다. 나는 노력은 하되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르는 분야라도 그 분야 전문가가 들이는 시간 정도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철저하게 무너지면서 다소 낯선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때부터 마음을 다잡았더니 저절로 몰입이 되었다.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 했는데 찾지 못했던 건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는 건 회피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해오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아마 나도 모르게 까다롭고 어려운 일에서는 몰입할 수 없다고 답을 내렸던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