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면서부터는 확실히 누군가로부터 쓴소리를 받을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사회는 이미 다 배웠다고 생각하고 돈으로 각자의 수행능력을 평가한다. 그리고 재차 기회를 주기보다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가져온 사람 대신 같은 돈으로 잘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 친구나 가족이 아니라면 계약에 따라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잘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할 수밖에 없다. 쓴소리를 듣고 싶어도 학교와 달리 비용을 내야 한다. 호의로 아니면 '아직 당신은 배우는 과정에 있으니까'라는 넓은 아량으로 그냥 제공되는 것은 없다. 쓴소리를 듣기 싫어했던 학창 시절과 달리 누군가 자신이 올바르게 발 수 있도록 가르쳐줄 수 있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하겠다는 사람이 있는 게 현실이다.
나는 얼마 전 이 쓴소리를 배우자로부터 듣게 됐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나와 함께하고 나의 성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배우자일 것이기에 그 쓴소리를 그냥 넘겨들을 순 없었다. 그녀가 내게 한 이야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선택을 했으면 다른 길을 찾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라."
내가 A라는 선택지를 골랐다고 말해 놓고 B라는 선택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듣게 된 말이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덧붙였지만, 다 맞는 말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인정받지 못할 것 같으면 내가 선택한 일이라도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었다. 분명히 선택했을 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는데 가만 보니 내가 끝까지 해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고, 해내더라도 인정받지 못할 것 같으니 그냥 포기하는 것이다. 말로는 끝까지 해봐야 배우는 게 있다고 떠든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에 끝까지 하라는 이야기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해오던 행동이나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고 말한다. 무의식적으로 반복하여 생각과 행동이 굳어진 줄도 모르고 살기 때문도 있겠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도 있다. 평소 할 일이 없어 다른 사람의 삶을 자신의 삶보다 더 들춰보며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최소한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쓴소리는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