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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한 '새치'

by 하상인

10대의 나는 빨리 40,50세가 되고 싶었다. 이유는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기억엔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는 새치로 스트레스받아하는 나를 위해 새치를 뽑아주시기도 했지만 워낙 그 수가 많아 하나 두 개씩 뽑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뽑아주시길 포기하면서 나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학생이 염색을 하면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염색은 시도도 하지 못했다. 어차피 검은색으로 염색하여 새치나 가릴 용도였음에도 말이다.


내가 새치로 인한 스트레스를 크게 표현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우리 부모님께도 이유는 있었다. 아버지께도 고등학교 때부턴가 새치가 나기 시작했고 어머니도 일찍이 새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모두 새치가 있었지만 사는 데 큰 문제가 없었기에 아마 덜 신경 쓰지 않으셨을까란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이런 새치로 인해 나는 빨리 40, 50대가 되고 싶었다. 그러면 이 새치로부터 자유로울 것 아닌가. 남들 다 나는 흰머리가 뭐가 그렇게 신경 쓸 일이겠냐는 의미다. 그래서 당시엔 여러 가지 꿈이 있었지만 그중 내게 가장 매력적인 꿈은 연구실에서 사람과 자주 교류할 필요 없이 연구만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이것도 바뀌긴 했지만 오랜 시간 이런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괴롭혀왔던 새치라는 녀석이,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염색을 하며 사라지니 그간 왜 고민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심지어 고등학교 진학 후 중학교 선생님을 우연히 뵈었던 일이 있는데, 얼굴이 정말 많이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으니 청소년기의 새치가 얼마나 고민이었을지 참 마음이 무겁다.


갑자기 이런 글을 쓰는 건 우연히 당시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손잡아주고 내가 나를 먼저 이해해줬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새치가 나게끔 태어났냐며 원망하기 바빴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인데 겨우 새치에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이제는 웃음이 나온다.


이제는 머리를 자르러 갈 때면 새치는 하나의 대화 소재가 되었다. 더 나아가 학창 시절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새치를 떠올리면서, 당면한 문제에 대해 지금은 스트레스 일지라도 지나고 보면 웃음이 나오는 문제들이 될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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