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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곧 내 삶을 사는 것

by 하상인

나는 최근 명상책을 읽은 후 현재에 집중하려고 노력 중이다. 핸드폰을 옆에 끼고 살지 않으면 어딘가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마저 들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잘못 흘러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인생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핸드폰을 보는 것도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능동적인 활동으로 핸드폰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그건 진정한 의미의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핸드폰 사용으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건 비단 시간 낭비의 문제만 있는 건 아니다. 지금 당장은 시간의 문제에 국한되겠지만, 경쟁 분야가 아닌 곳이 없는 이 사회에서 집중력은 질 높은 결과물을 내놓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집중력을 잃는다는 건 가까운 미래에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게다가 핸드폰 사용으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행위는 열거한 문제 이외에도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될 가능성이 있다. 바로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루 24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은,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본인의 삶엔 소홀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독될 수도 있다. 수동적으로 SNS를 통해 비치는 타인의 삶과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인지조차 하지 못해 지속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본인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불안을 회피하고자 다른 사람의 삶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본인 인생은 답이 없다고 생각되니, 타인의 삶을 엿보며 자신보다 못한 부분이 보이면 '그래도 내가 낫다'라며 헛된 위로를 하게 되고, 자신보다 잘난 부분이 보이면 그 사람의 '티'를 찾고자 혈안이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자신의 삶은 보이지 않는 현실을 외면한 상태가 된다. 이는 결국 자신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모습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 동안에도 우리의 소중한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누군가의 삶을 보며 체험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려움을 겪더라도 내가 해결할 책임이 없고, 그 사람이 잘 나가고 있어도 내 인생이 바뀌는 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곧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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