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기가 있었다. 그게 언제까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학생 때까진 그랬던 것 같다. 그땐 충동적으로 든 생각이라도 괜찮아 보이면 일단 시작했다. 책도 그렇게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최근 개인적으로 조금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그건 뇌과학과 인지과학을 공부한 일본 저자의 책을 보던 중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써보라는 내용을 보면서 시작됐다. 나는 이 질문에 당연히 쉽게 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고민을 하며 5분이 지나고 10분쯤 됐을 땐 '그려지지 않는다'라고 썼다. 그려지지 않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이유는 난 5년 이상의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도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매년 책을 쓰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5년 이상의 장기적 목표는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너무 당연하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실체가 없다는 것에 놀랐다. 장기적인 목표의 부재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겠다는 방향성의 부재와 같다. 장기적인 목표를 통해 매일 조금씩 하는 그 행동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일인데 그런 점에서 나의 방향성은 확실히 불분명했다.
뭔가 이상한 마음이 든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인생 전반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지금 당장 큰 문제가 있다고 느끼진 못했다. 그래서 10년 후의 미래를 지금이라도 그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와 지금은 다르다고 답을 내려야 하는 것인지 나름대로 생각해 보게 됐다.
그러다 내린 나만의 결론은, 미래를 그려야 할 필요는 있지만 과거와 다르게 당장 그려지지 않는 게 이상하진 않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보니 나에 대해 알게 된 부분도 있고, 인생이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패기가 부족해 보여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만큼 나를 알아가기 위해 고민했다는 느낌도 받았기에 허탈하거나 분한 감정은 없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10년 후를 그린다면 아마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갖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표현하지 않아도 살아오며 자신도 모르게 내재된 나침반 같은 게 생겨 특별한 일이 없으면 궤도를 벗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0년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할 줄 전혀 몰랐는데, 역시 인생은 살아봐야 아는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