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우유부단한 스타일이다. 여기에 낮은 체력이 더불어 귀찮음까지 심한 편이다. 먹고 살아가는 것이나 지금까지 글을 써온 것은 그나마 어떻게든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우유부단함은 내 인생에서 불안함 만큼이나 오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대부분의 우유부단한 상황은 책임회피에 기반한다. 가만히 있으면 책임질 일이 생기지 않는데 혹은 어려운 결정을 하면 머리를 싸매며 고민할 일이 생기지 않는데 나아가야 하는 고통에서 생긴다. 언젠가 한 번은, 매일 같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일하는 생활을 10년 이상 성실하게 하는 친구에게 진심으로 "대단하다"라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이건 누구나 하는 일"이라는 간단한 답에 내 인생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만큼 책임회피에 대한 역사가 깊은 내 삶이다.
예전엔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스스로를 욕보이는 것 같아 최대한 에둘러 언급을 하거나 아예 글로 쓸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누구나 인생은 처음이고 각자의 상황이 다르다는 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나 법률을 위반하며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시행착오가 있고, 그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오히려 다르다는 걸 이해하면서 나에 관한 생각도 바뀌었다.
우유부단함이나 책임회피와 같은 문제도 제대로 인식한 건 얼마 안 됐다. 난 내가 정말 적극적이고 변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며 앞선 문제들과는 거리가 있다고 여겼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은 내가 변화에 대해 생각하던 중 와이프에게 털어놓자 '정신승리를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인생을 보는 각도가 넓어졌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유를 들어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변화를 떠들면서 정신승리로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이유와 쉬운 길을 선택한 이유를 합리화하기 바빴다.
책을 그렇게 읽으면서도 나쁘게 말하면 그 내용 중에 듣기 싫은 소리는 가려서 들었던 것이다.
솔직히 여전히 나는 그때 이후에도 합리화하며 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한 번에 바꾸지 못한다며 또 합리화하는 이야기를 하지만 진짜 쉽지 않다. 그래도 이제야 정말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아 뿌듯함은 있다. 뭔가 하는 것 같은데 만족감도 없고 방법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혹시 내가 정신승리하며 합리화하는 건 아닌지라며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