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장하다, 장해(3)

by 하상인

공자가 쓴 <논어>에서는 40세를 가리켜 ‘불혹’이라고 표현했다. 불혹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됨을 의미한다. 물론, 공자가 살았던 당시엔 40세가 많은 나이였기 때문에 지금의 40세와 같이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40대가 된 지금 나는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기진 않지만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해내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기에 내 판단은 더욱 믿을 수 없게 됐다.

특히 얼마 전 우리 카페에 올라온 고시촌 장수생의 이야기는 특히 마음을 무겁게 했다. 사법고시가 폐지된 이후에도 여전히 이곳 수민동 고시촌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한 때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을 것인데 이렇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도 그녀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려서 되돌아갈 수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현실을 그 사람들이 알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많은 일이 나에게는 이미 너무 버거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쪽엔 도와달라고 말할 용기도 없고 아직도 ‘그래도 내가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사람인데’라는 버리지도 못하는 한심한 생각에 사로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가끔은 이곳 수민동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시원 옆 공원에 있을 때면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는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금세 바꿀 수 없는 현실에 그저 ‘내가 어쩌다 이런 선택을 했을까’란 질문만 되뇌어 본다.


‘난 어쩌다 이런 선택을 했을까’


너무 오래되어 그 시작도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약자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고시를 준비하진 않았다. 나는 그저 약한 놈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체격이 큰 것도 아니었기에 지식을 기반으로 한 힘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타깝게도 ‘약자’가 되었다. 나이로 보나, 사회적 위치로 보나, 물질적인 것으로 보나 그 어떤 것에서도 약자가 아닌 부분이 없는 확실한 약자였다. 게다가 더 이상시험을 통해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막막함은 더 커져만 갔다.


어쩌면 나는 만화 같은 인생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만화를 보면 주인공이 어떤 힘든 상황에 놓여도 보는 우리는 주인공을 심각하게 걱정하진 않는다. 여기서 무너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고 결국 이겨내고 그 만화의 주인공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화처럼 나도 주목 받고 종국에는 이기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아직까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늘 이렇게 헛된 상상은 끝을 모르고 이어지지만, 결국엔 잠시 잊었던 패배감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나는 어쩌면 애초에 장기간 평정심을 요하는 이 시험과는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이어가는 생각은 고시생 시절에도 하루에 몇 번이고 감정을 들었다 놨다 했고 그때마다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오히려 감정기복의 끝이 울적할 때면 마음을 다잡는다며 술이나 마셨다. 그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진즉 깨달았지만 술과 잡담이 외면하게 하는 잠깐의 현실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때와 다를 것 없이 감정적으로 침울해지자 일하고 자는 시간을 빼면 늘 들여다보던 온라인 카페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그 시절엔 함께 술을 마실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젠 갈 곳도 없고 연락할 곳도 없어 그냥 방으로 돌아와 혼자 핸드폰을 본다. 기술의 발달로 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세상은 점차 넓어지고 있는데, 내가 사는 세상은 더 좁아진 기분이다. 여기에 어쩔 수 없이 하던 공부라는 목표마저 없으니 외로움이 자주 찾아왔다.


내가 감정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적어도 외로움에 대해 한 가지 확실히 아는 게 있다. 외로움이란 녀석은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나는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때가 되니 극에 달한다는 점이다. 솔직히 나조차도 잘 나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며 미래도 별 기대되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싶진 않다. 게다가 결실 없는 공부만 해서 눈에 생기 하나 없는 사람과 누가 이야기하고 싶을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외로움에 잠깐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 그길로 바로 소주 한 잔 마시고 잠들었어야 하는데, 운영하는 카페에 함께 식사를 할 사람들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글이라도 빨리 삭제했다면 좋겠지만 그 사이 신청한 사람들이 있어 취소할 수 없게 됐다. 각출이었고 장소도 겨우 무한리필 식당이었지만 후회가 밀려왔다. 심지어 카페에 자주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와줬으면 좋겠다고 써둔 바람에 나를 포함해 무려 6명이 모였다. 내가 하자고 했으니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뭘 입고 가지’부터 시작해 평소 해보지 않은 온갖 걱정이 찾아왔다.


소개팅 나가는 것도 아닌데 거울을 보며 꼼꼼하게 씻고 준비했다. 잘 보일 이유도 없는 자리였지만 나는 ‘카페운영자’라는 생각에 괜히 부담이 되었다. 그렇게 옷을 고민하고 있는 사이 술김에 자리를 만들어 버렸다는 걸 후회할 새도 없이 약속 시간이 찾아왔다. 6명 중 2명은 불참했고, 남자 3명과 여자 1명이 모였다. 다행스러운 점은 나이가 아주 어린 사람은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각자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페운영자 ‘장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더 소개할 말이 없었다. 나이도 40세가 넘은 건 확실한데 정확히 몰라 태어난 년도를 말했다. 당연하게도 뒤이어 소개한 사람들은 모두 직장인이었다. 사회초년생으로 집값을 아끼기 위해 고시촌에 잠만 잘 곳을 구한 것이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수민동 고시촌은 고시가 없어진 후 오히려 개발이 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지고 원룸도 많이 생겨 사회초년생이 지내기 좋은 곳이 됐다. 요즘은 외국인 모델이나 유학생들도 많이 있다고 들었다. 고시촌 꼭대기에 지내며 내려오지 않는 나는 그런 현실이 낯설기만 했다.


“운영자님이시구나, 덕분에 여기서 생활하는데 도움 많이 받고 있어요. 어떤 일 하세요?”

“저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요.”


차마 설거지를 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평범한 질문에 답변을 했을 뿐인데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 어려웠다. 차라리 ‘휴식 아티스트’라는 말이 더 나았을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당당하지 못한 삶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가 나를 더 불편하게 했다. 이들은 직장인으로 앞으로 돈을 모아서 어디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나, 결혼 계획 등을 말했다. 나와는 너무 먼, 아니 이번 인생에서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란 생각에 의도하지 않게 점점 소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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