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인 점은 같이 시험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로스쿨 입학을 위해 떠나고 홀로 남아 막막했는데, 형을 알게 되면서 조금은 활력이 생겼다는 점이다. 나이만 먹어버린 내 상황을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비롯해 그런 패배감을 극복할 방법이 없어진 내에게 ‘백수’가 아닌 ‘휴식 아티스트’라는 유머러스한 타이틀을 붙여준 게 도움이 됐다. 특히 ‘휴식 아티스트’는 누군가에겐 의미가 단 하나도 없는 단어였지만 내게는 무력하기만 했던 인생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게 한 말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든, 즐거워서 웃든 웃는 건 좋은 일이었다. 게다가 나처럼 웃을 일 없는 사람에겐 잠깐의 웃음도 큰 위안이 됐다.
그랬기 때문일까. 난 이렇게 ‘휴식 아티스트’가 된 김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바로 고시촌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카페 운영이었다. 남는 게 시간이고 17년을 고시촌을 지킨 내게 이건 쉽고 재밌는 일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온라인으로 뭐든 찾고 하지 않나. 게다가 시작할 땐 몰랐는데 온라인은 내게 정말 좋은 안식처였다. 온라인에서는 이 나이 먹도록 직업도 없이 언덕 위의 고시원에 사는지 등을 설명하며 패배자로 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온라인 카페에선 글을 통해 나의 경험을 풀며 소설가가 되기도 했고 어느 날엔 고시촌을 제일 잘 아는 지역 ‘정보통’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온라인 카페 운영으로 돈을 버는 건 아니었음에도 충분히 즐거웠다. 당시 고시촌 관련 카페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나처럼 일상 밀착형의 느낌은 없었기에 경쟁력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17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곳을 벗어난 적 없는 누가 봐도 빼어난 이 지역 전문가였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겠지만 내겐 처음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는 만해 형이 일하는 식당에서 새로 직원을 뽑아야 하는데 그 카페에 글을 올려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대부분이 고시촌에 처음 온 사람이기도 했지만 나와 같이 사회에 나갈 용기가,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인지 의외로 지원자가 금방 나타났다. 그렇게 온라인 카페는 점차 분야가 다양해지며 활성화 됐다. 나는 열심히 카페 활동을 했다. 남는 게 시간이라서 카페에 질문이라도 올라오는 날이면 금방 자세히 아주 친절하게 답을 달아줬다.
옛말에 ‘곳간에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내가 먹을 게 있어야 인심을 쓴다는 뜻이다. 고시촌에서는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다. 뭐라도 해본 놈이 아무것도 안하고 공부만 해본 놈 도와줄 수 있다 정도로 말이다. 카페가 활성화되면서 고시 식당 정보, 고시원 정보 등을 주고받는 정도를 넘어 사람들은 자신의 사연이나 일상 글도 공유하기 시작했다.
홀로 오랜 시간 공부만 하다 보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한참 동안 사회 경험 없는 우리가 어디에 속해 사람을 사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이 나이쯤 되면 다들 결혼을 했으며 아이도 키우고 있는 사람도 많다. 대화 소재도 맞지 않고 그런 경험이 없다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애매한 위치인 거다. 물론 카페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당장 고시촌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어떤가, 이 나이에 고시원에 산다고? 원룸에 산다고? 심지어 멀쩡한 직장도 없다면 다들 문제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거리를 두기 때문에 대화는 더욱 어렵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소통 창구가 되는 이 카페 운영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일도 아닌데 비참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한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은 다른 커뮤니티에 올라온 수민동 고시촌에서 겪은 이야기였는데, 누가 그 글을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 공유한 것이었다. 작성자는 고시촌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람인데, 일을 하는 동안 정신이 이상해진 장수생을 봤다고 했다. 내용인즉, 카페 문을 닫을 무렵인 오후 9시만 되면 나이든 한 여자가 두꺼운 민법책을 끼고 찾아와 메뉴에 대해 묻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메뉴가 무엇인지 묻고 설명을 듣고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가 다른 가게에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던 것이었다. 매일 같이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이상하고 웃기기까지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전혀 웃기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결실 없이 오랜 시간 고시 생활에 바친 사람이 느끼는 외로움에 잠식된 심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