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특별한 일 없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인생에 가득한 후회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됐다. 외면한다고 외면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피한다고 피해지는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외면하고 피하려 했다. 식사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고시촌 언덕은 유난히 높아보였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언덕을 오르내리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뛰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무겁기만 했다.
‘그땐 몸이 지치면 정신도 지친다고 생각하며 자주 뛰어다녔었는데..’
그 시절 나는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에게 이곳 고시촌의 ‘작은 왕’이라고 불렸었다. 권력과 위엄이 있기 때문에 왕이 아니라 그저 키가 작고 오랜 시간 이곳에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이 놀리듯 붙여준 별명이다. 싫지 않았고 오히려 오랜 시간 공부했지만 합격하지 못하고 지나간 내 시간을 위로해주는 별명이라 생각하며 지냈다. 열정적으로 언덕을 뛰었던 그때의 나도 없고 이제는 작은 왕이라 불렸던 그 시간도 이제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냐.”
고시원을 향해 오르는 언덕 위에서 만해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터벅터벅 소리를 내며 트레이닝복을 입은 형이 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뭐하고 살았나 싶어서, 한심해서 그러지 뭐.”
“장해야, 아티스트의 삶이 쉬운 줄 알았냐. 휴식 아티스트도 아티스트다, 이 말이야.”
나는 이런 형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고시촌의 ‘작은 왕’이라면, 형은 ‘현인’이라고. 같은 고시원에 살며 만해 형도 특별히 장밋빛 미래가 있는 것도 아닌데, 늘 유쾌하고 긍정적인 걸 보면 형은 현인이 분명했다. 게다가 형에게는 이곳 고시촌 장수생들에게 보이는 포장이 없었다. 내가 과거 어땠는지, 얼마나 잘나가는 사람이었는지 혹은 잘 될 수 있었는지 같은 과거를 떠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랬다.
그래서 지금까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묻지 않은 질문을 했다.
“형은 걱정 안 돼? 이렇게 지내도 괜찮은가 같은 거 있잖아.”
“걱정할 부분은 있겠지. 그런데 걱정하진 않아.”
“그게 가능해?”
“누가 그러더라고, 부족한 머리로 고민하면 더 괴로워질 뿐이라고.”
난 그 말에 웃고 말았다. 그렇게 오래 공부했지만 합격하지 못한 걸 보면 총명한 머리보다는 부족한 머리에 가까운 게 우리 같은 장수생 아닌가. 그걸 인정하니 고민하는 건 괴로움을 더하는 일이 분명했다.
“그럼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거야?”
“그건 아니고, 난 부족한 머리니까 좋은 머리를 가진 사람들을 따라가는 거지.”
“그걸 어디서 찾는데?”
“책이지. 너랑 똑같은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아는 게 있겠냐.”
준비했던 시험이 폐지된 후 책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자리는 유튜브 같은 SNS가 차지했다. 원래도 시험 준비가 아니면 책을 그렇게 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네 걱정 들어줘도 도움 하나 안 되는 거 알지? 나보다는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은 사람들을 스스로 알아봐.”
그렇게 오랜 시간 책을 붙잡고 살았으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고시촌 ‘현인’의 말에 내 인생에 다신 없었을 것 같은 책이 들어왔다. 그것도 다른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장수생에게 도서관은 집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잠이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수생은 합격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불신과 수험기간만큼 늘어나는 세상과의 단절로 두려움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삶의 경계를 넓히는 일이 정말 어렵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너무나 쉬운 일이 나 같은 장수생에게는 삶의 경계를 넓히는 일처럼 거창한 표현을 할 정도의 무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아마 이 지점 때문에 일찍이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이 장수생이 뭔가 시작하지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수험기간이 길어지면 걸려오는 전화마저 두려워지는 게 장수생이다.
그래서 어떤 시작을 도서관에서 할 수 있다는 건 장수생에게 정말 마음 편한 일이었다. 그러나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보기 시작한 것과 달리 책을 볼수록 점점 화가 났다. “열심히 해라”, “최선을 다해라”,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같은 뻔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방법이라고 일러주는 게 누구나 아는 거란 생각에 또 책에게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험 때도 책은 나를 그렇게 괴롭히더니 이번에는 뻔한 내용으로 나를 또 괴롭히고 있었다.
다행인건 실패한 고시생이라도 책은 평균 성인보다는 훨씬 오래 붙잡고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책이 또 괴롭히고 화나게 만들더라도 시간은 많은 휴식 아티스트를 막을 수 있는 건 역시 돈과 알량한 체면뿐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도서관을 다녔을까, 처음과 달리 흥미로운 내용도 많았고 이 독서의 끝에 시험이 없다는 것 때문이지 마음도 편했다. 역시 책이 문제가 아니라 시험이 문제였다. 그리고 실용서의 특징상 할 수 있다는 용기 가득한 메시지가 많았기에 의도하지 않게 그렇게 외면하고 싶던 현실도 잠시 덮어둘 수 있었다. 현실이란 내게 늘 방어하고 변명해야 하는 곳이었다. 왜 그렇게 오래 시험을 준비했는지, 왜 빨리 포기하지 않았는지 등 너무 많은 답변을 준비해야 했다. 남은 우리의 인생에 그렇게 관심 있지 않다고 말하지만, 요즘 사회에선 이 말도 틀린 것 같다. 타인의 삶에 관심은 없어도 약점을 헐뜯고 싶은 사람은 널렸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고 피하고 싶었다. 잘 살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이해해달라고 바란 적도 없다. 그저 헐뜯기 전에, 내가 말하기 싫은 현실쯤은 당신들이 지적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과거 시험이 그랬듯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진 않았다. 그런 세상 앞에서 나는 자주 발끈했고, 또 무너졌다. 그리고 무너진 나를 한 번씩 겨우 일으켜 세울 때마다 늘 코너에 몰려 있는 나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