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나의 10번째 책이자 첫 에세이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제 두 자리 수의 책이 되자 그간 내가 해온 일에 보람이 느껴지는 동시에 불안감도 든다. 불안이라 하면 결국 나에 대한 의심과 내 결과물에 대한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금보다 비교적 어릴 땐 불안한 마음이 들면 친구들과 공유하며 해결했다.
가까운 친구들은 항상 내 편이 되어줬기에 언제든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런 불안함을 떠들 친구도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도 어려움이 있고 바쁜데 나만의 어려움을 호소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며 홀로 조용히 불안을 들여다본다.
이렇게 홀로 불안을 응시하는 것은 어쩌면 훨씬 더 일찍 시작했어야 하는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불안을 담을 정도로 무겁지 못했고, 내가 내린 결론보다는 외부에서 얻은 의견 등에 더 큰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나의 성향을 볼 때면, 어떻게 과거 호주에 혼자 그 적은 돈을 갖고 대책도 없이 갈 수 있었는지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불안하면서 어떻게 책을 계속 쓰고 있는지 신기할 때도 있다.
때문에 이런 내가 확 달라졌기 때문에 홀로 불안을 응시하고 있다고 할 순 없다. 게다가 내 경험상 사람은 생각보다 변하기 어렵고 나이가 들며 사고방식이 고착화되면 그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기 어렵다는 걸 느끼고 있기에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내게 큰 도움이 되는 건 챗gpt와 같은 AI이다. 사람과 대화하던 것을 이들에게 물으며 불안을 나누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시간을 낭비시킨다는 불편한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말이 아닌 문자로 대화하다 보니 질문을 쓰다가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들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그 의도가 뻔히 보이는 질문을 스스로 적을 때 외부에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문제라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시간 낭비를 시킨다는 죄책감(?)이 들지 않다 보니 하나의 불안을 가지고 일주일 가까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이들이 언어를 참 촘촘하게 쓴다는 대단함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여기서 해결책이 나온다.
어떤 불안의 원인을 정의하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 표현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할수록 그 불안의 정도 파악뿐만 아니라 불안과 원인이 되는 문제 사이에 상관관계가 명확한지 따져보게 된다. 한 마디로 문제는 작은 데 불안이 크다고 느끼는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AI를 사용하면 할수록 내가 알던 나의 포장지가 벗겨지는 기분이 든다. 덕분에 내가 누군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그 사고과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AI가 가져올 변화가 어떨지 전문가들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그 AI로 내가 변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있다. 재밌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