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났는데 팔이 안 펴져요

올리브 오일 사건

by 나엘


발병한 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피부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유명한 의사도 찾아보고 피부에 좋다는 약이란 약은 전부 처방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입욕제도 잠깐의 간지러움을 완화시켜 줄 뿐, 치료의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던가. 남 앞에서 부끄러워 숨기 바빴던 난, 아토피 환자의 시간으로 살아간 지 1년이 넘자 거리낌 없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대본을 외운 것 마냥 줄줄 자기 소개를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피부병이 있어서 보기엔 좀 그래도 옮기는 병은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어린 친구들에겐 절대 하지 않았지만(인사하기도 전에 무섭다고 도망갔다.) 어른들을 만나면 꼭 이렇게 인사를 드렸다. 대부분 안타까운 눈으로 상냥하게 대해주셨고 뒤에서 날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이렇게 나는 어딜가든 "아.. 그 아이.. ?"로 통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피부병에 좋은거라며 지인들이 이것저것 정말 많이 뭘 보내주셨는데 그 중에 제일 기억나는 썰을 하나 풀어보고자 한다. 약간 웃픈 이야기긴 하지만


어느 날, 엄마를 통해 선물이 들어왔다. 해외로 선교 여행을 갔다가 특별히 공수해 오셨다며 본인이 더 신나서 주셨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약이나 입욕제가 아닌 '100% 천연 올리브 오일' 이었다.


굉장히 신선한 느낌에다가 병에는 처음 보는 화려한 문자들이 막 적혀있어서 왠지 모를 기대감이 생겼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그 날 저녁, 팔이 접히는 곳에 올리브유를 듬뿍 얹고 티비를 보다 깜빡 잠이 들었다.


30분 정도 잤을까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팔을 딱 피려고 하는데 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덜컥 겁이 나 목 놓아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어..엄마..! 나 팔이 안펴져!!"


엄마는 깜짝 놀라 방으로 오셨고 조심스럽게 기름을 발랐던 곳을 확인했다.

기름과 진물, 피부 껍질이 한데 엉켜버려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팔을 피면 살점도 같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태였고 둘이서 이걸 어떻게 해야할 지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거 칼로 잘라볼까요..?"


엄마는 부얶에서 칼을 가져와 조심스럽게 내 팔을 썰기(?) 시작하셨고 마침내 두 팔이 일자로 쫙 펼쳐지게 되었다.


"ㅇ..이게 되네?"


이 방법으로 해결이 됐다는 게 웃기기도 하고 어이도 없어서 둘이서 빵 하고 터진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재밌는 사건이었지 하며 회상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모른다.


아무튼 상당히 비싼 가격에 모셔온 천연 올리브오일은 계란후라이 할때나 사용되는 슬픈 처지가 되었다. 하하..




그때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힘든 상황들만 생각날 줄 알았는데 나름 웃긴 일도 있었구나 싶다.


알로에 사건, 홍삼 사건, 벌꿀 사건 등등 비슷한 사건들이 몇 번 더 있었는데 (올리브 사건은 웃긴 포인트라도 있지) 천연 제품은 하도 데여서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서 사용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 병은 옮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