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없는 외로움에 관하여
사람들은 내향적이고 조용한 인간이 집순이일 거라고 으레 생각하곤 한다. 그런 내향인들이 다수긴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내향적인 밖순이다. 집 안에 가만히 있는 거 못 견딘다. 주말엔 싸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린다. 하다못해 밖에서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 하는 그런 인간이다.
그러나 이런 밖순이 인간인 나는 동시에 인간관계가 극히 좁은 내향인이기에(모든 내향인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렇다는 거다), 내가 어딘가 가고 싶을 때 연락해서 같이 다닐 만한 친구가 없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난 정말 인생을 어떻게 살아온 건가 싶을 만큼 친구가 없다. 초중고 12년 대학 4년 도합 16년의 학교 생활을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겠지만 정말이다. 아예 0명이라는 건 아니지만 외출할 때 가볍게 동행할 만한 친구는 없다. 대부분 몇 달에 한 번 만나는 친구들. 내 인생에서 사귀어본 친구 중 가장 친한 친구는, 나의 전 애인이다. 즉 인생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와 더 이상 친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뭐... 괜찮다. 내향인이라서 그런지 애매한 사람과 다니는 것보다는 혼자 다니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혼자 다니면 온전히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까.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누구와 맞출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니니까 '오히려 좋아'일지도.
이러한 이유로 나는 꽤 오래전부터 혼자 놀기에 익숙한 인간이 되었다.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간 게 스물한 살 때였고 그 이후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가끔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다. 이젠 혼자 하는 여행이 익숙하고 편해졌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혼자서 서울 방방곡곡 가고 싶은 곳 잘 다닌다. 혼자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고 공연도 볼 수 있다. 혼자서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인지-아마도 제일 친했던 친구를 잃었다는 게 피부로 와닿을 무렵부터-혼자서 열심히 돌아다니다가도 불쑥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좋은데,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한데도 한번 고개를 든 외로움은 자꾸만 나타났다. 예쁜 인스타 감성 카페에 앉아 다정한 연인들 사이 꿋꿋하고 무던하게 케이크를 먹어도 외로웠다. 꽃이 활짝 핀 거리를 고고하게 산책해봐도 외로웠다. 일부러 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이 오히려 뼈가 시리게 외로워졌다.
어디에선가 '외로움은 인간의 원죄'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생각할수록 맞는 말인 것 같다.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은 인간에게 상처받고 고통받고 뒤통수 맞아도 인간에게 치유받으며 징그럽도록 어울려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친구도 만들고 모임도 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살고 있는 거겠지.
대학교 다닐 때까진 그나마 친구를 사귀거나 자주 만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직장에 다니면서 몇 없는 친구마저 잘 만나지 못하게 되었기에 외로움이 자꾸 심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어떤 달은 친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을 만난지 오래되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누구랑 대화하듯이 중얼중얼하고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을 좋아하고 말하고 싶어하는 인간이구나, 하는 것이다.
날씨가 쌀쌀해진다. 외로움에 더욱 취약해지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나는 외로움에 굴복하지 않고 혼자라도 씩씩하게 길을 나서야 한다. 가을은 아주 짧고 아주 아름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