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사랑의 오랜 그늘 아래서
장기연애가 끝나고 난 후 남는 흔적은, 사진이나 선물 따위가 다가 아니다. 정말 치명적인 것은 일상 사이사이 예상도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그런 것들이다.
그 때문에 처음 먹어본 음식
그가 좋아해서 알게 된 유명하지 않은 어느 가수
그가 들려줬는데 내 취향에도 맞아서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한 음악
그가 키우는 강아지의 부드러운 촉감
그가 살아서 생전 처음 가봤던 동네
그의 자취방에서 나던 세제 향
그와 갔던 여행지와 식당
그와 갔던 가게에서 산 물건
그와 나중에 가기로 약속했던 곳
그가 해줬던 요리의 맛
그 때문에 알게 된 친구
그가 뿌리는 향수 냄새
그가 써줬던 편지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
그의 생일
그가 예쁘다고 했던 옷과 가방
그에게 옮은 취향
그가 선물해 준 카카오톡 이모티콘
그가 부르던 애칭
그의 습관과 말투
그가 즐겨입던 옷
그가 자주 타던 버스 번호
그가 사랑을 고백했던 장소
그가 이별을 말하던 날의 날씨
꿈에 가끔 나타나는 그
소개팅할 때 생각나는 그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 글을 쓰면서 흐르는 눈물까지
이런 것들이 힘줘서 떼려 해봐야 찢어지기만 하는
오랜 연애가 남긴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