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END>
*영화 <해피엔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겨울의 추위는 온데간데없고 약간은 덥기도 한 날씨는 사고 치기에 딱 좋다. 크고 작은 지진이 반복될수록 미래에 대한 무수한 불안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다. 그게 마치 스피커로 전해지는 음악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 3043년 봄. 코우와 유타는 열여덟과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그런 시시하고 희망 없는 미래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당장 내일 지진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면 즐기다가 죽고 싶다. 오로지 그것뿐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은 서로 닮아가기 마련이다. 코우(히다카 유키토)와 유타(쿠리하라 하야토), 밍(시나 펭), 아타(하야시 유타), 톰(아라지). 이 다섯 청춘들은 닮아있는 서로의 얼굴에서 어색함을 하나둘 발견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전반에는 행동하는 코우와 생각하는 유타가 반복된다. 교장(사노 시로)의 로비의 산물인 노란 스포츠카 'Z'는 유타의 아이디어와 코우의 행동으로(비록 가위바위보에 진 결과여도) 흔들리는 땅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게 된다. 교장은 전교생을 일일이 추궁하기 시작한다. 내진 공사 보조금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야. 그러다 지진이 나면 전부 깔려 죽고 싶지. 너희들이 이렇게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건 전부 저 노란 스포츠카 덕분이라고. 너 같은 집안(여기서는 코우에게 한 말이기에 재일(자이니치)을 말한다)이 멀쩡히 학교를 다니고 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는 건 전부 나의 로비 덕분이라고. 그리고 쿵. 결국 그 속내를 드러낸다.
이런 협박에도 불구하고 범인(이라고 쓰고 영웅이라고 읽는다)은 나오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네오 소라 감독은 최소한의 노동으로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는 판옵티콘을 이 청춘 영화의 한가운데에 가져온다. 감시벌점시스템인 'Panopty'(이하 판옵티)는 그럴싸한 규칙으로 바람직하지 못한(권력자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학생들을 벌하기 시작한다. 판옵티는 아이들이 설치하는 스피커와 다름없다. 한 번은 가짜 고양이 울음소리로 경비원을 속였고, 한 번은 가짜 지진경보로 선생님들을 속였다. 정해진 바지 대신 치마바지를 입거나(유타가 밍에게 물려받아 리폼했다) 손가락 욕을 하고 애정행위를 하면 벌점을 받지만 교무실에 들어가 서랍을 열고 열쇠를 훔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현세대의 허무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동시에 학교 밖에서는 시위가 매일 일어난다. 총리 키토는 대지진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있는 사회를 잠재우기 위해 의미 없는 발표만 해댄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별과 억지뿐이다. 대지진 때마다 일본에 불법으로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위협이 된다. 역사를,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총리의 이 말을 어디선가 들어봤을 것이다. 불법 거주 외국인(이라고 주장당하는)의 조상들은 100년도 더 전에 우물에 독을 탔다는 혐의를 받아 살해당했다. 자이니치 4세인 코우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투표권도 없는 엄마 후쿠코(푸심)와 그것으로 학생을 협박하는 교장, 어디에나 있는 나와 같은 친구들 중에 누가 옳은 것일까. 나는 여기서 무얼 해야 하는 건가.
그런 코우를 일깨운 건 친한 친구도 아닌, 그렇다고 자이니치도 아닌, 자위대가 홍보하러 학교에 오면 듣는 것이 허용되는 일본인 후미(이노리 키라라.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 카네코 후미코를 참고했다)다. 그의 첫 대사는 이랬다. 코우가 Z사건의 범인이라고 건물 대피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던 신에서 '경찰이나 할까'라고 말하는 아타와 그를 놀리는 유타에게 말한다. "경찰은 국가와 부유층을 위해 일할 뿐인 무장한 관료야." 이미 글러버린 자신을 포함한 현세대에 대한 냉소가 담겨있다. 현세대는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우리 세대는 글렀다고. 코우는 묻는다. 너도 애초에 포기한 거 아니야? 우리 세대를. 아타의 말대로 기분이 좋은 게 이상한 시대가 되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게 전자계산기인 시대가 되었다(실제 일본에서 정치비판 등을 이유로 발매가 거부되고 방송이 금지된 곡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분은 1절에 해당된다. 글 마지막 링크 참고).
흔들리는 코우를 바라보는(계속 바라보고 있던) 건 유타 뿐이었다.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유타의 곁에는 지진주의보, 교통주의표지판, 주의판이 쫓아다닌다. 연구실에서 쫓겨나 새로 만든 아지트에서도, 장비를 옮기던 역사에서도, 엄마와 걷던 길에서도. 주의할 것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벗어나 즐겁게 살고 싶은 게 다였지만, 그걸 알아주던 불알친구도 자신을 떠나는 중이었다. 그런 요즘은 새로운 게 없다. 옛날 명곡을 디깅하고, 이제는 머리밖에 들어가지 않는 음악이라는 담요로 만든 아지트에 웅크리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생각을 좀 하라는 코우의 말에도, 아빠의 고향에 가보고 싶다며 미국으로 이민 간다는 톰의 말에도 유타는 쉽게 흔들리고 만다. 마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버려지고 또 어딘가에 고정되어 빙글빙글 도는 낡은 미러볼 같다.
학교라는 곳은 그런 곳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각기 다른 공들을 잠시 가두는 곳이다. 그곳이 우리의 태초라고, 우리는 비슷한 취향과 목표를 두고 있다고, 같은 부류라고 말하지만 그곳을 떠날 시기가 찾아오면 등을 돌리고 전부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5반의 다섯 아이들도 이와 다를 리 없다. 후미와 코우를 선동했다며 경례를 거부하던 담임 선생님(나카지마 마유무)은 모순뿐인 말만 내뱉으며 경례를 시키는 음악부 고문 선생님으로 교체되었다. 옷을 리폼하며 자신을 표현하던 아타는 벌점 청소를 했고, 겁 없이 중국어를 내뱉던 밍은 구석으로 내몰렸다. 영원히 우리가 즐거울까. 이 생각 없는 녀석아. 사람은 변해. 그러니까 너도 변해. 스스로 생각 좀 해. 우린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다. 코우는 유타에게 말한다. 너나 나나 걔네나 우린 다 다르다고. 우릴 묶어두는 도구에 불과한 학교라는 곳에서 벗어난 곳에서 만났다면 친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불 같이 시위에 뛰어들던 코우는 점점 순응하기 시작한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붙잡혀 경찰의 말에 순순히 영주권을 보여주러 집으로 간다. 전원을 내리고 친구들과 도망치던 상상력이 풍부했던 시절은 아주 먼 옛날 같다. 판옵티는 사생활 침해라며 교장실에 항의하러 가자는 후미의 말에도 뒤로 돈다. 비정상 사회를 따르는 게 이상하다고 함께 말하고 싶지만, 따르지 않으면 이미 흔들린 뿌리가 뽑힐 수도 있다. 투표권도 없이 절대 편한 적도 없이 평생 일본에서 산 엄마의 인생과 기대에 조금이라도 미쳐야 했다. 비정상 사회임을 알면서 그들에게 고개 숙이고 이끌려 가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건지 안다. 그걸 몰랐을 때가 차라리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 같다.
한 세트에 만 엔을 훌쩍 넘기는 고급 스시보다 한 줄에 만 원짜리 김밥이 낫다. 집단 점거 농성의 자리에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 특별영주증명서 휴대 의무가 없음에도 연행하는 경찰에 순응해도 된다. 플라스틱 용기에 고무줄로 열리지 않게 고정한 김밥 한 줄 정도의 마음이어도 된다. 그걸로 이미 충분하다. 모두가 변하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게 정상적인 사회다. 변함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변해버려도 여전히 좋아할 수 있는 세상이 정상적이다. 그 사실을 아는 데에 시차가 생겼을 뿐이다. 그 시차가 다시는 나란히 서지 못하게 된 시발점이었다고 해도 어깨를 부딪히며 얼굴을 마주 보던 시간이 있기에 변해버린(변하지 않은)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다.
마음이 흔들리는 건 전부 지진 탓일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연재해를 고작 나약한 나라는 인간 따위가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불가항력의 영역이다. 전쟁이 나서 동료에게 누구보다 먼저 칼을 들이미는 게 아니라 직접 듣지 않은 것을 무지성으로 믿으며 곡해하지 않고(더빙하지 않고) 가끔은 어깨를 내어주며 뒤에서 힘껏 밀어주는 것이다. 인생을 다 바치는 일처럼 보이는 행동에 대해 수차례 고민하고 마음속에서 싸우며 결국 '전부 제가 한 겁니다' 하고 말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그게 비록 내가 넘어지고 옆 사람을 앞으로 보내는 일이라도. 그래도 내가 잊고 있던 뒷사람들이 일으켜줄 것이다. 어쩌면 그들과 함께 전보다 더 많고 끈질긴 연대를 해낼 것이다.
코우와 유타는 아주 작은 각도로 벌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등 돌려 나아가는 육교 위의 헤어짐처럼 정반대의 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세상은 두 사람을 다른 부류로, 전혀 친해질 수 없는 사이로 보겠지만 그들이 같은 곳에 마주 보며 서있던 상상력 충만했던 시간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게 행복의 끝일지, 행복으로의 시작일지 지금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아주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다.
近いの将来の話。
<くそくらえ節(똥처먹어라절)> https://youtu.be/19cc4YQKqM4?si=bq4lLSIZO_d5XYTl
똥처먹어라절 사이트 https://protestsongs.michikusa.jp/japanese/okabayashi/kusokuraebushi.html
이미지 https://www.bitters.co.jp/HAPPYEND/
네오소라 감독 플리 https://open.spotify.com/playlist/44PgDic2ugS8bFvpOeGpx3?si=JWqWjPGFSyqXbL4-bPE0U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