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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라 Oct 30. 2018

그냥 우리, 조금만 더 이렇게 있자


그냥 우리, 조금만 더 이렇게 있자


날씨가 참 얄궂다. 참 밖에 나가기 싫은 날이다, 그치? 

오늘 같은 날은 이불 속에 더 있어도 돼. 

뜨거운날 아스팔트 바닥에 들러붙은 껌처럼, 그렇게 바닥에 들러붙어 있자. 

아, 나는 이럴 때 요가에 ‘사바사나’라는 자세를 해. 

이른바 ‘시체자세’인데, 그냥 대자로 뻗는거야. 

팔과 다리를 살짝 벌린채로 있고, 손바닥을 하늘로 보이게하고 온몸에 힘을 툭 푸는거야. 

난 사실 이 자세를 할 때 내가 정말 죽었다는 상상을 해. 

내가 발가벗은 시체라고, 총을 맞고 좀전에 숨을 거뒀다고 생각하는거야. 

(아, 잠깐. 숨은 쉬어야 돼. ㅎㅎ)

편히 숨을 쉬어야 온몸에 힘이 모두 빠져버리고 힘없이 축 늘어질 수 있어. 

그리고 아무생각 없어지는게 중요해. 

숨쉬는 개수를 센다거나 숨쉬느라 내 배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만 머릿속으로 상상하는거야. 

아 그래, 사실.. 이것도 귀찮지? 



그냥 누워 있어도 좋아. 

다만, 죄책감을 갖거나 불안해하지만 말자. 

오늘은 너를 그냥 꺼두는 거야. 

아, 스마트폰도 꺼버리자. 

괜히 페이스북이랑 인스타그램이랑 카카오톡 계속 열어보면서 괴로워 할거잖아. 

이런 날도 있어야지, 


너, 요즘 너무 힘들었잖아.




밤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이 안오고, 겨우 누워도 스마트폰을 한시간은 하나봐. 

실없게 연예인 기사는 왜 그렇게 보는지.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은 몇 번째 다시보는지. 

그러다 아침이 오면, 몸이 천근만근 안일어나지더라. 

몇 번이나 10분씩 알람을 다시 맞추고 겨우 일어나서 지각을 하지.

 낮엔 잘 지내다가도 몰래 한숨을 몰아쉬어. 

먹고 싶지도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은 요즘.


넌 너무 열심히 달려왔어. 

네가 하는 일을 잘 해내려고 고군분투 했고, 

스스로 잘해보려고 얼마나 의지를 다잡고 노력을 했는데.. 내가 다 알아.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지. 쌓아놓은 게 없었어. 

오랜 노력이 겨우 제자리걸음 하게했어.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아닌가봐. 

뭘해도 잘하는, 정말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리고 그냥 뭘 안해도 행복해 보이는 친구들도 있어. 

걱정도 없고 항상 밝은 친구들... 

나는 왜 늘 이 모양이고, 초라하고, 해도해도 안되는 걸까. 

쟤는 저렇게 잘하는데, 나는 뭐하고 있는거지? 

나 10년 뒤에도 이렇게 살고 있으면 어떡하지? 

가난하고 능력도 없고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을거야.. 

난 가치가 없어. 난 쓰레기야. 이렇게 살아서 뭐해...

지금, 한강 물이 몇 도일까? 우리집이 몇 층이더라..

 여기서 떨어지면 안 죽는 거 아냐?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면 브레이크 없이 흘러가지..? 

다시는 기쁘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고, 

지나온 모든 것이 다 후회돼고 자책만 남아. 

점점 더 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싶고 

그냥 한 발자국도 떼지 않는게 안전하게 느껴질거야. 

사실, 이제 네가 그렇게 의도하는건지, 

이미 무기력해진 네 몸에 압도되어서 

그렇게 생각당하는지조차 모르겠을 거야. 


그런데 있잖아,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너무 수고 많았어. 

네가 내 옆에 있다면, 지친 네 어깨를 꼭 안아주고 싶다. 

실은 넌 정말 잘하고 있어. 

하지만 네가 잘하는 사람이고, 멋진 사람이 아니어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너를 좋아할거야. 

그리고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둠의 터널을 함께 빠져나갈거야.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세 가지를 들어봐줄래?



가장 어렵겠지만 꼭 필요한 건, 우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야. 

이 끔찍한 상황들.. 매일같이 무기력하고 좀비같은 몸뚱아리, 고장난 수도꼭지 같은 감정,

 모든 일을 다 펑크를 내버리고 숨을 곳도 없는 이 상황들. 

결코 발버둥치고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어지러진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는거야. 

하지만 이것이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체념과 포기를 말하는 건 아냐. 

오늘 나의 상황은 내가 과거에 했던 일들의 결과이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도 지금 나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아무런 감정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거야. 

그래 알아, 받아들이는 것 어떻게 하는거냐고 묻고싶지? 

아마도 이건 절대 글로 전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내가 만난 치유된 사람들은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했다는 것만 기억해줘. 


좀 더 현실적인 단계로는, 

우울증이라는 질병에 걸린 사실을 인정하는거야. 

원인이 어디에 있든, 네 뇌와 신체, 그리고 정신은 

우울증이라는 상태에 잠식되어 있어. 

그걸 알아차리는거야. 

’나는 쓸모없어’와 ‘나는 우울증에 걸려서 스스로 쓸모없다고 생각해’라고 

생각하는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야.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같은 생각만 계속 하는 것은 

‘반추’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우울증의 결과야.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면, 

뭔가 잘못되었고 이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겠지.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라는 걸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자연히 우리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거야. 

이건 네가 잘못한게 아니고, 네 몸이 지금 잘못된 거니까. 

그리고 네 몸에 찾아온 그 문제가 절대로 

별거 아니라고 무시하고 넘어가지 않기를 바래.




다 아는 얘기라고?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 

사실 우리가 이렇게 우울한건 어쩌면, 

우리 자신에게만 너무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그동안 네 몸 상태, 느낌, 생각, 기분처럼 

너와 관련된 정보에만 온통 신경을 쏟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네가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비난을 받으면 너무 힘든거야. 

이와는 조금 다르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네 자신을 친절하게 받아들이는, 

‘자기자비’라는 개념이 있어. 


달라이라마는 자기자비를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데 세심하고 

그것을 덜어주거나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깊게 헌신하는 것”이라고 했어. 

사실 불교에서는 ‘생명이 있는 존재는 모두 고통받고 있다’고 말해. 

‘나’도 그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돌봐야 하는거야. 

나와 타인이 고통받고 있나 살피고 돕는 것이지.

그러고 보니 세 가지 다 받아들이라는 얘기네. 받아들이지 못했다는건 

우리가 그동안 ‘되고싶은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나’의 간극을 줄이려고 

얼마나 아둥바둥 노력해왔는지 반증하는 것 같아. 

그래온 너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좋아해주면 좋겠어. 

내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너를 좋아하듯이 말이야. 

힘든 길을 걷고 있을 너에게, 

꽃길을 만들어주지는 못하겠지만 함께 걸을게. 


천천히, 같이 가자.



<아임낫파인> 우울증을 다룬 프로젝트를 엮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어쩌면 우리 자신인,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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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낫파인> 인터뷰 영상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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