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서애 류성룡 (1542~1607)은 조선 선조 때의 명재상이다. 몇 년 전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의 주인공으로, 드라마에서는 배우 김상중씨가 연기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의주까지 피난을 떠나기도 하고, 의심 많은 선조와 명나라 사신들의 횡포에도 시달리면서 많은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그는 말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후, 임진왜란에 대한 평가를 담은 책 '징비록'을 썼다. 이 책에서는 조선이 왜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초기에 어떤 실수를 했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아픈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서애 류성룡의 모습은 실수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수를 철저히 분석하고 대비해야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 상황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몇 가지 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율곡 이이는 상비군 10만명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중심이 되어 비현실적인 의견이라고 비판하였고 결국 이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 때 10만명의 정예병을 양성했으면 어땠을까?
(물론 당시 조선의 재정으로 상비군 10만명 양성은 비현실적인 주장이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군대 규모를 조금이라도 더 키우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 전쟁을 대비해 남해안 쪽에 성을 지어야 한다고 하자 그 지역 백성들의 반발이 엄청났다. 일어나지도 않을 전쟁 대비한다고 우리 힘들게 한다고 난리가 났다. 폭동이 일어나는 곳도 있었다. 할 수 없이 이 계획은 폐기되고 말았다.
- 임진왜란 때 왜군의 칼 솜씨는 엄청났다. 일대 일 싸움에서 조선군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오랜 내전을 거치며 실전 능력을 쌓은 왜군과 농민 위주였던 조선군의 전투력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그 이상이었다.
- 임진왜란 직전에 조선에서는 두 명의 사신(황윤길, 김성일)이 일본에 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났다. 조선으로 복귀한 이후 왕(선조)은 정말로 일본이 조선 침략 의사가 없느냐고 사신들에게 물어보았다. 이 때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침략 의사가 없어 보였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김성일을 따로 불러 정말로 침략 의사가 없어 보였느냐고 물었다. 그 때 그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제가 그렇게 말해야 왕이나 백성들이 불안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때 이미 전쟁 준비 마지막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 탄금대 전투의 총 사령관이었던 신립은 용맹하기는 했으나 지략이 부족하고 포악하여 부하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조총의 위력에 대해 여러차례 그에게 말했으나, 그는 자신의 기마대로 한 방에 쓸어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 왕이 피난길에 오르자 지역 수령들이 식사를 준비하여 왕에게 바치려고 이동하고 있었다. 별안간 숨어있던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그 밥을 다 뺏어먹고 도망갔다. 그 지역 수령들도 책임을 추궁당할까봐 같이 도망가버렸다.
-백성들이 모이면 왜군은 얼레빗, 명나라군은 참빗이라고 하였다. 그 정도로 명나라 군의 횡포는 왜군보다 더했다. 명나라군이 한 번 지나가면 그 동네는 초토화되었다. 여자들은 명나라 군사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집 안에 꽁꽁 숨었다. 얼굴에 숮을 발라 못 생긴것처럼 변장하기도 하였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을 읽다 보면 조선이 이 정도로 형편없었구나 싶은 부분이 참 많이 나온다. 지배층만 상태가 안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일반 백성들 역시 정신상태가 극도로 해이해져 있었다. 성을 쌓자고 하자, 일어나지도 않을 전쟁 대비하겠다고 우리 괴롭힌다고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진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징비록에서는 이런 문제점들을 꾸밈 없이 다 열거하고 있다. 이게 징비록의 가치이다. 내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고 말했던 것, 주의 집중력 부족으로 저지른 실수, 잘 몰라서 저지른 실수 등등 떠오르는 실수는 다 적어보자. 가족, 학교, 군대, 직장, 친구 사이 등 제한 없이 적는 것이다.
이 중 임팩트가 컸던 실수를 떠올려 보자. 다른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줬거나 금전적인 손해를 준 일, 이 것 때문에 내가 두고두고 고생한 일이 있으면 적어보자
깊이 파내려가자.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결근한 적이 있었다면, 왜 거짓말을 했는지, 회사는 왜 가기 싫었는지 심층 분석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내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내가 적었던 모든 실수들을 비슷한 것끼리 묶어 보자. 몰라서 저지른 실수, 대충 처리하다가 실수한 것, 과시하려다가 선을 넘은 것 등등 비슷한 주제로 묶을 수 있다.
이제 원인을 분석해보자. 빨리 끝내고 퇴근하고 싶어서, 싫어하는 일이라 후딱 해치우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등등 그 원인이 나올 것이다.
이제 해결책을 작성해보자. 중요사항은 메뉴얼을 만들어서 빠뜨린 것은 없는지 체크한 후 천천히 처리하기, 이해한 것을 내 언어로 다시 물어보기 등등 나만의 해결방법을 찾아서 정리해보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대 왕조들의 역사서는 본인들의 승리는 자세하게 기록하지만, 패배는 아예 삭제하거나 최소한으로만 기록한다. 그러나 징비록은 이런 추세와는 반대이다. 아픔과 치욕의 기록이지만 상세하게 하나씩 다 기록하였다.
징비록은 일본으로 수출되어 17~18세기 무렵 일본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상대방의 시각에서 쓴 전쟁기록을 보며 삶의 지혜를 배운 것이다. 일본은 징비록에 진심이었지만 조선은 어땠을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불과 30여년 만에 청나라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정묘호란, 병자호란). 과연 징비록에서 배운 것이 있었을까 의심되는 부분이다.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 내 실수를 부끄럽게만 생각하지 말고 적어보자. 그리고 분석해보자. 그래야만 배울 수 있고 고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