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인권운동의 신호탄, 로자 파크스 여사의 성공 비결

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by 보이저

1963년 8월 28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워싱턴 기념탑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100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그 곳에 모였다. 정확히 100년 전에 애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게티스버그 연설을 통해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던 그 날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한 흑인 목사가 다음과 같은 말을 시작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옛 노예의 후손들과 옛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가 가득한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모든 인종은 평등하고,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그 연설은 지금까지도 명연설로 추앙받고 있다. 그 연설을 했던 사람은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목사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애초부터 인권 운동가였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소규모 흑인 교회를 담당하던 목사였을 뿐이었다. 인권운동과는 아무 연관도 없었다. 그를 인권운동에 헌신하게 만든 것은 지역사회에서 벌어진 뜻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로자 파크스(Rosa Parks)라는 한 흑인 여성이 버스에서 겪었던 일로 시작한다.




인종차별적인 버스 탑승 규정


요즘 시대에 피부색에 따라 버스에 탈 수 있는 자리가 정해져있다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남부에서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버스에서 인종 별 탑승 가능한 자리가 지정되어 있었다.


앨라배마주의 경우, 버스기사는 반드시 백인만 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앞의 네 자리까지는 오직 백인만 앉을 수 있었다. 그 뒷자리부터는 인종에 상관없이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버스의 모든 자리가 다 차있을 경우, 유색인종은 백인 승객에게 자기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다. 심지어 자리를 양보할 때는 백인 승객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일단 무조건 버스 앞문으로 내린 후 버스 뒷문으로 다시 탑승해야만 했다. 이 규정들을 위반할 경우에는 경찰에 바로 체포되었다.




로자 파크스 여사의 체포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을 가진 40대 흑인 여성이 버스에 탑승했다. 퇴근 시간 버스는 금세 많은 승객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모든 자리는 승객들로 가득찼고 이 때 그녀는 다른 백인 승객을 위해 일어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버스 가사는 그녀에게 일어나라고 계속 고함을 질렀다. 끝내 일어나기를 거부했고, 체포당하게 되었다.


이는 지역사회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평소에도 흑인들은 말도 안되는 이 버스 규정에 불만이 많았다. 그러던 중 로자 파크스 여사 체포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이다. 이는 10년이 넘게 진행된 미국 내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촉발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로자 파크스 여사


시민 불복종 운동의 시작


흑인들은 버스를 타지 않게 되었다. 1년 동안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 직접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게 되었다. 차가 있는 동료들의 차를 얻어 타고 다니기도 하였다. 앨라배마주에서는 처음에는 그저 비웃기만 하였다.


"며칠 저러다가 말겠지. 이전에도 그랬었잖아"


사실 흑인들이 버스 탑승 규정을 위반했던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 때도 시민 불복종 운동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흑인들은 똘똘 뭉치게 되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불복종 운동은 흑인들의 공감대를 얻어 미국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승객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던 흑인들이 버스를 타지 않으면서 버스 회사들은 심각한 재정난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앨라배마주 당국과 버스 회사들은 인종 차별적인 버스 탑승 규정을 폐지하기로 하였다. 흑인들이 승리한 것이었다.




승리의 비결 세 가지


로자 파크스 여사의 시민 불복종은 어떻게 이런 큰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이전에 있었던 시민 불복종 운동들은 왜 다 실패하였을까? 크게 세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로자 파크스 여사의 인맥이다.


그녀는 지역 사회에서 인맥이 넓었다. 평소에 남편과 함께 지역 사회에서 많은 봉사활동에 참여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녀는 흑인 뿐 아니라 백인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이는 그녀가 체포되었을 때 백인들의 도움을 얻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당장 지역 신문에서 그녀의 평소 인품에 대한 소개와 함께 석방해야 한다는 사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당발이었던 그녀의 위상 덕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엄청난 속도로 지역사회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당연히 여론이 빠르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회사에서는 그저 내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동료들, 타 부서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나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파크스 여사는 평소에 지역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고, 이웃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는 성격이었다. 그 덕에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두 번째는 그녀의 인품과 평판 덕이었다.


그녀는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이전에 버스 자리 양보 거부로 인해 체포되었던 사람들은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다. 불륜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범죄로 조사 중이었던 사람도 있었다. 여론이 좋지 않았기에 시민 불복종 운동은 흐지부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당시 흑인 사회에서는 드물게 고등교육까지 받은 엘리트였다. 신앙심도 깊었고 지역 사회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평소에도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참여하였다. 항상 이타적이고 솔직 담백한 성격은 흑인 뿐 아니라 백인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었다. 당시 백인 정치인들이나 경찰관들 역시도 그녀에게 우호적이었을 정도이다.


이전 회사에 친절하기로 유명했던 회계팀 여직원이 있었다. 직장 초년생 때 나도 3년 간 회계팀에서 근무했기에 그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하루에도 수 십번씩 전화벨이 울려댄다. 그거 응대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고 정작 내 업무는 제대로 못한 것을 느끼고 좌절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온갖 전화에도 늘 친절하게 응대했다. 어떤 경우는 직접 자리까지 방문해서 알려주기도 하였다. 당연히 그녀에 대한 평판은 좋을 수 밖에 없었다. 후에 그 직원이 결혼할 때 회사 직원들의 축의금 릴레이가 이어졌다. 이 직원에게만큼은 꼭 축의금으로 감사 표시를 하고 싶다는 소감이 줄을 이었다. 평소의 좋은 평판이 얼마나 빛을 볼 수 있게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세 번째는 조직을 이끌 훌륭한 지도자를 선택한 것이다.


시민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중들 앞에서 조리 있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고, 학식을 갖춘 사람이 리드해야만 했다. 구심점이 있어야 일이 제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때 가장 적합한 리더로 선택된 것이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 그는 사실 평범한 지역 사회 목사로 당시 겨우 26세였다. 목사로 부임한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부임한지 얼마 안 된 터에 이런 중책을 맡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된 요청에 마침내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마틴 루터 킹, 그는 열정적이고 뛰어난 웅변가였다. 원만한 성격이다보니 두루두루 다른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당시 흑인 인권 운동가들 중에는 말콤 엑스나 검은 퓨마, 카마이클처럼 폭력적인 방법도 불사하거나 공산주의, 이슬람 주의 등 주류 미국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노선을 택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이 쪽과는 명확하게 선을 긋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미국 시민들을 움직였다. 수 많은 암살시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뜻을 하나씩 관철해 나갔다. 그만큼 리더의 힘은 엄청난 것이다.





마무리하며


만일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던 사람이 로자 파크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찻잔 속의 작은 태풍으로 별 감흥 없이 끝났을 것이다. 실제로 이전에 있었던 저항 시도들은 다 그렇게 되고 말았다.


로자 파크스는 달랐다. 그녀는 훌륭한 인품으로 칭송을 받고 있었다. 지역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기도 하였다. 이것이 그녀의 저항이 전체 미국을 움직인 원동력이 된 비결이다.


회사 생활도 마친가지이다. 평소에 좋은 평판을 만드는 것은 나중에 큰 힘이 된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 이 사람들이 든든한 내 우군이 되는 것이다. 평판은 회식자리 부지런히 쫓아 다니면서 술 많이 마신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조금 더 친절하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때 조금씩 만들어지게 된다.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 버스 자리 양보 거부가 이렇게 큰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커지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로 이 일이 크게 번진 것은 아니다. 사건이 벌어진 직후 그녀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훌륭한 평판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만큼 평판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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