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우리는 눈치가 빠른 사람을 부러워한다. 이들은 누가 어떤 표정을 짓기만 해도 귀신 같이 딱 알아차린다. 사회 생활에서 눈치가 빠른 것은 큰 메리트이다. 상사의 기분을 읽고 지금 내가 나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타이밍을 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사람은 자기 꾀에 빠지기가 쉽다. 나는 눈치가 빠르다고 늘 자신하기에 내가 하는 선택은 늘 옳다고 믿는 것이다. 이게 가끔은 큰 실책으로 이어진다.
역사 상 눈치가 정말 빠르기로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왕은 이 사람을 가리켜서,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눈치가 9단이었던 사람의 이름은 한명회이다.
그의 젊은 시절은 불우하였다. 7개월 만에 태어나 칠삭둥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인큐베이터도 없던 당시에, 칠삭둥이가 살아 남는 것은 기적이었다. 이렇게 출생부터 험난했던 그는 생존을 위한 다양한 처세술을 일찍부터 체득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다행히 그는 금수저 집안 출신이었다. 할아버지가 조선의 개국 공신이었기에 경제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클 수 있었다. 그러나 공부를 싫어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성격 탓에 그는 늘 과거에 낙방하였다.
겨우겨우 개성의 작은 궁궐 문지기 벼슬을 얻어 살아가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 눈치가 빠르고 각종 지략이 풍부했던 그를 눈여겨 본 친구 권람이 수양대군에게 그를 추천했던 것이다. 이 때 한명회의 나이 38세였다.
수양대군은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누구보다도 권력에 대한 야심이 있던 인물이다. 왕이 되고 싶었던 그는 능력있는 사람들을 사방에서 끌어 모으고 있었다. 한명회도 이렇게 그의 참모가 되었다.
수양대군은 처음 한명회를 만났을 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못생긴 얼굴에 옷차림도 꾀죄죄하고 내세울 것도 없는 벼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난 뒤,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되었다. 한 마디만 해도 다 눈치채고 자기 속마음을 귀신같이 다 읽어냈기 때문이었다.
"나의 장자방이 되어주시오!"
수양대군은 정식으로 한명회에게 간청하게 된다. 장자방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을 도와 책사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런 책사의 역할을 맡겼던 것이다. 이 때부터 한명회는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왕좌에는 단종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세종은 과거 신하들에게 손자였던 단종을 안고서, 내가 죽으면 이 아이를 꼭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하였다. 고명 대신이라고 불리던 나이 많은 신하들은 단종을 끝까지 사수하였다.
이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수양대군은 결코 왕이 될 수 없었다. 문제는 수양대군이 끌어모은 인재들은 하나같이 고위직과는 거리가 먼 어중이 떠중이들 뿐이었다. 이건 누가봐도 안되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싸움이었다. 이 때 한명회가 아이디어를 낸다.
"수양대군께서 직접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시지요"
자진해서 단종을 위해 명나라 사신으로 감으로서, 단종과 대신들의 신임도 얻고, 시간도 벌면서 위험한 자리를 피하라는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수양대군은 명나라에 가게 된다. 이 때 그는 명나라 황제의 환심을 사게 된다. 그가 없는 사이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왕위 등극 계획을 극비리에 수립하게 된다.
수양대군이 명나라에서 돌아온 후, 음력 10월 10일이 거사일로 정해진다. 살생부를 만들고 이 사람들의 집을 동시에 나눠서 찾아가 하나씩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이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상당수가 거사 당일, 이 계획을 듣자 찬성하지 않고 발을 빼려고 한 것이다. 이들은 사실 고명대신들에게 불만이 많았으나 그렇다고 죽이는 것까지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에 대한 후폭풍을 걱정해서 몸을 사리기도 하였다.
이 때 수양대군은 "나 혼자서라도 이 일은 진행한다"고 외치고는 곧바로 궁궐로 들어갔다. 이 때는 한 밤 중이었다. 자고 있던 단종에게 그는 다짜고짜 뛰어 들어가서 외쳤다.
"김종서, 황보인 등의 신하들이 반란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아닌 밤 중의 홍두깨일까? 자다가 깬 단종은 어안이 벙벙하다. 수양대군은 외친다.
"당장 그들을 궁으로 들어오라고 하시옵소서. 전하께서 직접 추궁하시옵소서"
"숙부의 뜻대로 그리 하시오"
이는 한명회의 계략이었다. 궁궐로 들어오는 순간 숨어있던 자객들이 공격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김종서, 황보인 등 대신들은 한 밤 중에 영문도 모르고 궁궐에 들어오다가 차례로 자객들 손에 죽게 되었다. 궁궐 출입 시에는 무기를 갖고 들어갈 수 없다. 호위 대신들도 들어가지 못한다. 한명회는 이 점을 노린 것이었다.
이렇게 수양대군이 조선을 손아귀에 틀어쥐게 되었다. 단종은 그저 어린 허수아비 왕일 뿐이었다. 그 뒤 단종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기게 된다. 이렇게 수양대군은 세조라는 이름으로 꿈에 그리던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 모든 것은 한명회가 기획한 것이었다.
많은 신하들은 세조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었다. 삼촌이 조카를 협박해서 왕이 되다니.. 성삼문, 박평년 같은 신하들은 세조를 죽이고 단종을 다시 복귀시키기로 은밀하게 계획을 세우게 된다.
마침 명나라 사신이 조선을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이 때는 별운검이라고 하여 칼을 든 무장 한 명이 왕 뒤에 서있게 된다. 마침 박팽년의 아버지가 별운검으로 지정되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었다. 박팽년의 아버지가 뒤에서 세조를 검으로 내리치면 그냥 해결되는 문제였다.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었다. 다들 이건 하늘의 뜻이라며 웃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명회의 눈치가 빛을 발한다. 박팽년이 갖고 있는 반골 기질이 영 개운치 않았다. 세조가 즉위하고 오래 지나지 않았고 여전히 세조에 적대적인 신하들이 많았기에 조금이라도 위협의 요소는 없애버리려고 했다. 한명회는 선포했다.
"이번 행사에는 별운검을 세우지 않는다"
사육신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거 탄로난게 아닐까?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하나? 이들은 두 파로 나뉘어 싸우게 되었다. 유응부는 당장 지금이라도 궁궐로 쳐들어가 세조를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선비 기질이 강했던 성삼문은 후일을 도모하기로 한다.
모든 일은 시기가 있는 법이다. 계획대로 안 되는 순간 김이 빠지게 된다. 그리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은 배에서 탈출하기 시작한다. 이번 사건도 그랬다. 김질이라는 사람은 이미 망했다고 생각하고, 장인이었던 정창손에게 이번 사건을 다 이야기한다. 정창손은 곧바로 세조에게 이번 거사를 일러바쳤다. 사육신의 작전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삼족이 멸족되는 화를 입고 말았다.
눈치에 관한 한, 그만큼 촉이 발달한 사람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눈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다.
신숙주는 세조의 총애를 받는 신하였다. 세조는 술고래로 유명해서 신하들을 불러 밤이 새도록 술자리를 벌이곤 했다.
한 번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세조가 신숙주의 팔을 비틀었다. "경도 나를 따라해보라" 세조가 말하자 신숙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힘껏 세조의 팔을 확 비틀었다. "아얏" 너무 아팠던 세조는 눈물까지 흘릴 정도였다.
한명회는 그 순간 직감했다. 자칫하면 신숙주가 위험해 질 수 있겠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 즉시 신숙주의 집에 사람을 보내어 신숙주 방에 있는 호롱불을 치워 버리라고 전했다. 신숙주는 집현전 학자 출신답게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집에 들어오면 항상 책을 읽었다. 그래서 책을 읽지 못하고 그냥 자ㄱ 만든 것이었다.
세조는 의심하고 있었다. 신숙주는 내가 싫어서 팔을 세게 비튼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점을 걱정했던 한명회의 촉이 빛을 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세조는 내시를 시켜 신숙주가 자고 있는지 확인하도록 명령했다. 술을 많이 마셔 인사불성이 되어 한 실수인지, 내가 싫어서 맨정신에 한 행동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신숙주가 잔다는 소식을 듣고 세조는 안심하게 된다. 사실 그 날도 신숙주는 책을 보려고 했으나 방에 등불이 없어서 그냥 잔 것이었다.
그의 친구 권람의 집에는 여종이 있었다. 권람은 그녀를 사모하였다. 그러나 떡하니 본부인이 있는 판에 선뜻 여종을 첩으로 들일 수는 없었다. 이 때 한명회가 넌지시 의견을 주었다. 회화나무 꽃을 삶은 물을 온몸에 발라 피부를 누렇게 만들라고 했다. 그리고 권람이 상사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하여 이게 황달로 번진 것처럼 연기를 하게 했다. 그는 자리에 앓아누웠고, 이 때 한명회가 그의 부인에게 넌지시 다가갔다.
"부인께서 질투하지 마시고 여종을 그에게 허락하셔야 저 병이 나을 것입니다"
권람의 부인은 하는 수 없이 여종과의 결혼을 허락하게 되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만, 부첩이 허락되던 조선 시대임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이처럼 한명회는 빠른 눈치 덕에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게 되자 그의 빠른 눈치는 조금씩 발목을 잡게 되었다. 자기를 키워준 그 능력이 오히려 독이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