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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신세를 한탄하게 될 때가 있으신가요?

by 보이저

매주 목요일마다 오후 5시 ~ 8시에 기술교육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왜 굳이 그 늦은 시간에 뭘 얼마나 더 배워야 한다고 그렇게 교육을 운영한 건지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듣는 사람에게도, 진행하는 사람에게도 그 교육은 큰 고역이었다.


그날은 유독 나쁜 일이 연달아 터졌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항의 전화도 받고, 집에서는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까지 오는 상황이었다.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상황이었다. 일은 그때 터졌다. 밤 8시가 넘어 교육은 끝나고 나 혼자 빈 강의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이트보드를 옮기는 순간, 손가락이 보드의 쇠 프레임에 끼었다.


"아야야"


손가락을 빼내려고 할수록 쇠는 더 강하게 손가락을 죄어왔다. 이러다가 잘릴 수도 있겠다 공포가 엄습해 왔다. 있는 힘을 다해 손가락을 빼내고 나니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왔다. 몸이 아픈 것 보다도 마음이 더 아팠던 것이다. 주먹으로 화이트보드를 내리쳤다. 마카펜, 지우개 등 손에 잡히는 것은 다 집어던졌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책상이며 의자며 다 발로 차고 뒤집어엎었다. 강의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가 봤으면 어땠을지 싶다.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 준비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맞는 건가 회의가 올라왔다. 항상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사소한 일에도 이를 드러내며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 팀장,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이 늦은 시간까지 손가락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일하고 있는 나,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서러워서 그 자리에서 통곡하고 말았다.




신변을 비관하는 이유


우리는 살다 보면 내 인생이 너무 싫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숨 막히게 바쁜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도대체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퇴근한다고 해서 내 인생이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두 아이 중 하나는 공부도 시켜야 하고, 놀아도 줘야 한다. 물론 즐거운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역시나 내 인생, 내 삶은 여기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그날 강의실 하나를 다 때려 부술 정도로 분노했던 것은 그런 설움이 복받쳐서가 아니었을까? 손가락이 끼어 피가 나고 아팠던 것은 트리거 즉, 그 설움에 불을 붙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때 생각했다. 내 신변을 제 때 잘 다스리고 화를 조절하지 않으면 큰 사고를 칠 수 있겠다 싶었다.




인조와 소현세자의 비극


갑자기 웬 역사 이야기인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신변을 비관하다가 큰 사고를 친 역사적 사건이 있어 소개드리고자 한다. 그 주인공은 조선의 왕 인조와 소현세자 간 사건이다.


인조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 황제 태종에게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으며 항복을 구하는 절을 한 바 있다. 이게 평생의 한으로 남게 되었다. 오랑캐에게 항복한 왕이라는 주홍글씨가 씌워진 것이다.

인조는 이로 인한 자격지심이 심했다. 늘 자기 신변을 비관했고 그늘져 있었다. 두 아들이 볼모로 청나라에 끌려가 있다는 것도 심적 부담을 더하게 되었다.


드디어 볼모로 끌려갔던 두 아들이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인조는 크게 기뻐했다. 며칠을 잠도 못 자고 학수고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만났던 첫째 아들 소현세자는 청나라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청나라가 얼마나 강하고 발전했는지, 조선도 청나라처럼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인조는 심기가 크게 불편해졌다.

"예끼! 너는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그깟 오랑캐 나라 자랑뿐이더냐?"


홧김에 그는 옆에 있던 벼루를 그에게 던졌다. 그 벼루는 소현세자 머리에 정확하게 맞았다. 소현세자는 쓰러졌고 며칠 뒤 죽고 말았다. 누가 이런 일을 예상했겠는가? 인조는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야사에 소개된 글이다. 소현세자는 병으로 죽었다, 암살당했다 등 죽음 관련 다양한 설들이 있다. 야사에 소개된 내용이 사실이라고 가정하였다. 홧김에 한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바람직한 신세 한탄 방법


당장 힘들고 어려운데 신세 한탄을 안 할 수는 없다. 다만 극단적으로 내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방법이 무엇일까? 나도 다치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방법을 소개드리고자 한다.



1. 직접 큰 목소리로 말해보자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말해보자. 있는 대로 악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내 가슴속에 있는 고통, 괴로움을 내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통성기도를 한다. 속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소리 내어 기도할 때에 더 간절하게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끄집어내서 기도할 수 있다. 나도 아무도 없는 옥상, 어떨 때는 공터 으슥한 곳에서 소리 내어 힘든 것을 다 말하는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우화에서 비밀을 대나무숲에서 다 털어놓은 사람이 마음의 병에서 벗어났듯이 그렇게 이야기해 보자.




2. 물리적인 폭력은 절대 안 된다.


스포츠에서 경기가 풀리지 않는다고 선수들이 테니스 라켓을 부수거나, 골프공을 호수에 집어던지거나, 투수가 글러브를 내팽개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화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더 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나 역시 강의실을 난장판으로 만들 때 처음에는 보드를 주먹으로 치는 정도였지만, 그게 성이 안 차니 의자를 던지고 책상을 발로 차는 수준으로까지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게 되었다. 절대 물리적인 폭력은 안된다. 딱 5초만 심호흡을 하자.




3. 나를 힘들게 만드는 그 자리를 피하자


내가 실패한 공간에 있으면 괴로운 생각에 계속 사로잡히게 된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자. 여기에 계속 있으면 계속 내 신세한탄만 할 뿐이다. 산책을 가도 좋고 일찍 퇴근해도 좋다. 만일 지금 내가 일하는 이곳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면 팀을 옮기거나 이직도 생각해 보자. 참고 버티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니다.




4. 힘든 운동을 해보자


웬만큼 체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러닝 머신 위에서 전속력으로 뛰면서 내 신세를 한탄할 사람은 없다. 격한 운동을 하면서 내가 힘든 상황을 잊도록 해보자.


첫째 아이는 나를 닮아서 집중력이 참 좋지 않다. 아는 의사 선생님이 얘가 만약에 공부에 집중을 못하면 아파트 20층 꼭대기까지 계단으로 왕복을 시켜보라고 조언하셨다 (우리 집은 8층이다). 그때마다 달밤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첫째 아들을 매일 볼 수 있었다. 확실히 한 번 힘을 다운시켜 놓으니 집중해서 공부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자꾸 내 신세가 처량하고 힘들 때는 숨이 찰 정도로 힘든 운동을 해보자.




마무리하며


우리 모두는 사실 괴롭다. 나는 '불행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평생을 살면서 본인이 감당해야 할 불행의 양이 있다. 이 양이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없는 사람은 결단코 없다. 지금까지 내 인생이 순탄하기만 했다고 앞으로의 인생도 순탄할 것이라는 보장은 절대 없다. 반대로 지금까지 내가 힘들게만 살아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불행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어찌할 방법이 없는 불행은 일단 논외로 하자. 그러나 내가 극복할 수 있는 불행이라면 그 불행의 시기를 줄이거나 크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까지 소개드린 방법은 사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기전으로 가야 한다. 내가 뭘 잘하는지 강점을 발견하고 꾸준히 실력을 키워서 그 분야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그게 안되면 불행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축구 잘하는 사람이 축구는 안 하고 맨날 야구 2군 팀에서 절절매고 있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축구로 전향해야지 야구가 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일단 내 입으로 큰 소리로 선포하자. 내가 지금 힘든 것,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다 물러가라고 소리치자! 나를 옭아매는 사탄, 마귀 다 물리치는 대적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을 벗어나자. 내가 실연당했던 곳에 자꾸 있으면 그 생각밖에 안 난다. 그 공간을 벗어나자. 그리고 힘든 운동을 통해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에서 빨리 빠져나오자. 장기전과 단기전 전략을 번갈아 쓰면서 이 어려움의 터널을 벗어나도록 하자.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찬송가 369장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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