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자 축구가 이번에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국제축구협회 FIFA는 어떻게든 중국을 월드컵에 참여시키고 싶어한다. 14억 인구가 축구 시장에 뛰어드는 순간 천문학적인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FIFA가 아시아 지역에 월드컵 축구 티켓을 8.5장이나 부여한 것도 중국을 본선에 참여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월드컵에 4.5장의 티켓을 아시아에 부여한 것을 감안하면 거의 2배가 늘어난 것이다. 이 정도 티켓을 줬다면 그래도 출전할 수 있겠지 싶었지만 결과는... 보기 좋게 탈락이었다. 중국은 B조 6개 팀 중에서 최하위인 6위에 그쳤다.
2002년 월드컵 때 이후로 중국 남자 축구는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 뒤로 무려 6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히 중국은 진출에 실패했다. 심지어 아깝게 좌절된 것도 아니었다. 어떤 경우는 최종 예선조차 올라가지 못하고 2차 예선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축구팬인 시진핑 주석은 천문학적인 돈을 축구에 쏟아부었다. 중국의 자존심을 축구에 건 것이다. 브라질 유명 선수들을 귀화시켜 국가대표 팀에 대거 합류시켰다. 세계적인 명망을 얻고 있는 감독을 1년에 수 백 억원씩 주고 데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늘 실패였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걸 과연 중국 축구가 실력이 없어서 이거 하나 만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감 부족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중국 축구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유소년 축구 육성 실패를 꼽는다. 중국에서 실시한 '1가정 1자녀' 정책 탓에 집에서 소황제처럼 자란 선수들이 이기적이어서 팀 플레이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진단은 아니다. 주변 국가들에 비해 인구 대비 유소년 축구 선수 비율이 낮다고는 해도, 중국 인구가 14억명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에는 수 많은 유소년 축구 클럽이 있다. 여기에서 쏟아지는 선수들만 해도 엄청난 숫자이다. 그러니 유소년 축구 선수가 적어서라는 말은 근거가 약하다.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경직된 문화 탓이라는 견해도 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중국은 북한과는 달리 사회주의 색채가 옅은 편이다. 사회주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근거가 약하다.
1가정 1자녀 정책 때문에 선수들이 이기적이라 팀 플레이가 안된다는 말도 근거가 약하다. 다른 구기 종목인 여자 축구나 농구, 배구에서 중국은 세계적인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기적인 성격이 문제라면 왜 다른 구기 종목은 잘 하는 걸까? 남자 축구만 유독 죽을 쑤고 있는 것은 다른데서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감 결여' 때문이다.
자신감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몸을 사리는 것' 이다. 내가 뭘해도 욕 먹는다는 생각에 안전빵으로 가려고 한다. 위험 부담이 큰 행동은 욕 먹기 쉽기에 최대한 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에이미 커디(Amy Cuddy)가 했던 '파워 포징(Power Posing)' 실험에서는 피실험자들을 두 부류로 구분하였다.
한 그룹에게는 지휘관처럼 상석의 자리에 앉아 꼿꼿하게 앉아 있게 했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쭈구리처럼 바닥에 앉아 있게 했다.
그 뒤에 베팅 게임을 시킨 뒤, 이 두 그룹이 어떻게 돈을 거는지 관찰하였다.
쭈구리처럼 바닥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게임에 임했다. 베팅 금액도 지휘관 그룹에 비해 현저하게 적었다. 자신감 부족 현상이 나를 움츠러들게 만든 것이다. 이 실험은 중국축구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중국 축구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숏 패스를 잘 안한다는 것이다. 숏 패스를 하다가 뺏기는 순간 상대에게 바로 역습 찬스를 허용하게 된다. 그 때 자기가 감당해야 할 욕이 두렵기에 롱 패스 위주로 가려고 한다. 아무나 받아라~ 식으로 후방에서 전방으로 길게 쏘는 것이다. 당연히 패스 정확도는 떨어지게 되고, 그 패턴을 간파한 상대 팀들은 전방에 서 있는 중국 선수들이 공을 못 받도록 미리 위치를 잡게 된다.
회사에서도 내 의견을 내고 싶지만, 혹시 모를 핀잔과 지적 때문에 말을 안 하게 되고 침묵하게 된다. 자신감 있게 어떤 일을 주도적으로 하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서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안전한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업무 해봐야 잘 할 자신이 없다. 이미 앞서 비슷한 업무를 진행했던 동료들이 피를 봤다. 나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불 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바보는 없다. 못하면 욕 먹을게 뻔하니 일을 맡지 않으려고 한다.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나오는 지역 현안들이 있다. 공군 비행장 이전, 교도소 이전, 철도 지하화 등등... 지역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지만, 사실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은 일들이다. 이런 것들을 책임지고 총대 메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없다. 욕 먹기 딱 좋고, 실현되려면 10년은 족히 걸리는데 그 열매는 내가 아닌 뒷 사람이 가져 간다. 이런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중국의 경우, 프로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하는 것을 기피하는 풍조가 있다고 한다. 그냥 프로팀에서 뛰면 고액 연봉 받으면서 편하게 선수로 뛸 수 있는데, 누가 굳이 스트레스 받아 가면서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은 국가대표팀에 들어가려고 하겠는가? 다른 나라 선수들은 국가대표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데, 중국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실패를 미리 예감하고 어떤 걸로 핑계를 댈지 그 궁리부터 한다. 예산 부족, 인력 부족, 관심 부족 등 핑계거리는 참 많기도 하다. 잘 안 될 것을 대비해서 일부러 대충 일하거나, 다른 일들을 만들어 거기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없어 못했다고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한국 육상이 그런 모습을 자주 보이고는 한다. 코치는 선수들이 의욕도 없고, 나태해서 훈련을 게을리한다고 지적한다. 선수들은 코치들이 전문성이 없어 낙후된 방식으로 지도한다고 그들을 불신한다.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서로 핑계부터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 여자 100m 기록은 31년 전 기록이다. 지금은 그 비슷한 수준의 기록도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 축구 역시도 부동산 산업의 몰락으로 많은 후원 기업들이 파산하는 바람에 투자가 줄어서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이라고 핑계를 대기 바쁘다. 미국이나 EU의 중국 견제 때문에 해외 국가들이 중국 선수 영입에 소극적이라서 그렇다는 핑계도 대고 있다. 핑계가 많아질수록 제대로 된 분석이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이런 조직일수록 리더가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더 높으신 분들은 자기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만만한 팀장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권한은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지원도 잘 해주지 않으면서 엄청난 성적을 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전에에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었던 핌 베어벡은 이런 말은 한 적이 있었다.
"한국 축구협회는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브라질 수준의 성적을 내기를 기대한다"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 비난의 화살은 리더에게 향한다. 비현실적인 기대치를 갖고 있기에 이를 충족할 수 있는 리더는 사실상 없다. 그럼에도 많은 것을 요구하다 보니 리더는 수시로 갈려 나간다. 당연히 새로운 리더를 찾기도 어렵다. 이미 독이 든 성배로 악명 높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
중국은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마다 세계적인 명장들에게 비난을 퍼붓고는 해고시켜 버린다. 사기당했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내쫓는 것이다. 리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데 모든 책임을 리더에게 묻는 것이다.
조직이 망가지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재건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솔로몬 왕이 세웠던 이스라엘 성전은 300년 뒤, 바벨론 침공 때 한 순간에 불에 타 사라졌다. 그 성전을 다시 짓는 데는 무려 20년이 걸렸다. 성전을 짓는 것을 방해하는 주변 민족들이 있었고, 지배국이었던 페르시아의 눈치를 봐야했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성전을 짓느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회사 역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수한 인력도 영입해야 하고, 비전을 가진 리더가 있어야 한다.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가며, 노하우도 쌓아야 한다. 이 모든 일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재촉한다고 솥에 있는 쌀이 금방 끓어서 밥이 되지 않는다.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걸 기다려주지 못하고 빨리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재촉한다면 이는 멸망의 지름길이다.
내가 응원하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감독 중에는 노장들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 감독이 있었다. 그 사람은 국민 감독이라는 칭호를 듣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어 팀에서 자리를 잃어버린 30대 중반 이후의 노장 선수들을 긁어 모았다. 그리고 반짝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그를 재활용 공장장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그게 한화 이글스의 오랜 암흑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단기적으로 2년 정도는 좋은 성적이 나왔지만 그 사이 신인들은 내팽겨쳐졌고, 방치되었다. 감독은 2군 선수들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른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하다가 팀이 망가지게 된 것이다. 빨리 성과를 내기를 재촉하면 큰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중국 축구의 문제점은 단지 스포츠에서만 벌어지는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감을 잃어버린 개인과 조직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집단 전체가 침체에 빠져버리게 되고, 갖고 있는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어 진다.
어떻게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한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이렇게 막연하게 접근하며 좋아지기는 커녕 수렁으로 더 빠져들어가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위험한 일을 기피하고, 욕 안 먹는 안전한 일만 하려고 한다. 시작하기 전부터 핑계부터 찾게 되고 빠져 나갈 길만을 찾게 된다.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항상 리더가 오물을 뒤집어 쓰고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현실은 외면한 채 빨리 좋은 결과를 어떻게든 만들어내라고 독촉하기 바쁘다. 이는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스포츠는 우리 인생과 닮았다. 인간은 역사에서도 배울 점이 많지만 스포츠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 중국 축구를 반면교사 삼아 지금 내 인생이 같은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