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표 대리는 이번 달부터 매월 회사 마케팅 비용 실적을 정리해서 보고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수많은 부서에서 보내는 파일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떤 부서는 기한을 넘기기도 했고, 자료 수정할 게 있다고 몇 번씩 다시 보내는 부서도 있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어떤 비용이 마케팅 비용인지 막 헷갈린다. 전임자는 부서 이동 전 표 대리에게 인수인계를 해줬지만 여전히 헷갈리기만 하다. 분명히 들을 때는 다 이해한 것 같았는데.. 이상하기만 하다.
급한 마음에 전임자에게 전화를 한다.
"판매관리비도 마케팅 비용에 포함시켜야 하지요?"
"그렇지. 그거 빠뜨리면 안 된다고 얘기했잖니"
"시스템에서 영업 대리점 코드 입력하라고 나오는데 그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거 내가 지난주에 보낸 이메일 첨부파일에 다 있잖아. 확인 안 해봤니?"
"아.. 그런가요? 근데 지난번에 월 총비용이 1,000만 원 넘어가면 어디까지 결재받아야 한다고 하셨죠?"
"아이 참, 그거 전무님까지라고 말해줬고 네가 노트에 열심히 적더구먼. 그거 매뉴얼에 다 정리되어 있다고까지 말해줬는데. 기억 안 나니?"
표 대리는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반드시 제대로 알고 넘어가야 한다. 귀찮은 마음에, 꼬치꼬치 묻는 것이 미안해서 대충 확인하고 넘어간다면 큰 실수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나 모르는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물어보는 것은 곤란하다. 물론 업무를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다 물어보고 확인해야 한다. 그게 안된다면 그건 전임자의 100퍼센트 잘못이다. 나중에 사고가 터지게 되면 전임자가 큰 책임을 지게 된다.
문제는 알려줬음에도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이다. 전임자가 대충 알려줬거나, 일을 모르는 전임자가 자기도 잘 모르다 보니 엉뚱한 것을 알려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꼼꼼하게 설명을 해줬음에도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면 이건 곤란하다.
이때 질문을 잘해야 한다. 모른다고 다 물어보게 되면 전임자는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서로 간에 불신과 갈등이 싹트게 된다. 무작정 물어보기 전에 먼저 확인하고 최대한 이해한 다음에 물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다.
유난히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ADHD가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꺼번에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게 되면 당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물이 수도에서 쏟아지는데 양동이 개수가 몇 개 안 된다면, 갖고 있는 양동이를 다 채운 뒤에도 쏟아지는 물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 없이 수수방관하게 된다. 옆의 바가지에 있는 물을 재빨리 비운 뒤 채우기에 활용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눈앞의 상황에만 시선이 고정되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한 번에 척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반복해서 물어봐야 하고 상대방의 짜증을 샘솟게 한다.
자료를 받았음에도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자료를 저장하지 않은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은 충분히 설명을 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뼈처럼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질문을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받은 자료를 기반으로, 내가 이해한 것을 비교해 가며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했음에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질문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을 다 질문해서는 안되고 내가 먼저 최대한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잘 모르는지 나도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그냥 두서없이 막 물어보게 된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궁금한 게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대답해 주면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미리 정리해서 물어보면 대답하기도 편한데, 전화로 하나씩 막 쏟아내니 가뜩이나 내 업무 하기도 바쁜데 짜증이 나게 된다.
결국 질문을 잘해야 제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 출발점은 내가 스스로 최대한 해결해 보는 것이다. 그동안 받은 자료나 인수인계받은 사항, 내가 실제로 해보며 알게 된 사실들을 최대한 다 활용해서 먼저 이해하도록 하자. 그렇게 하고도 모르는 것들을 물어보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80퍼센트는 자체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만일 질문을 해야 한다면 전화로 속사포처럼 쏟아내기보다는 이메일로 궁금한 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내자. 상대방도 이해하기 쉽고 미리 준비해서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브루타 학습법'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유대인들이 자주 쓰는 학습 방법으로, 교사와 학생, 학생들 간에 서로 짝을 지어 질문하고 답하며 스스로 원리를 깨우치는 방식이다. 질문을 기반으로 원리를 터득하는 획기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직장은 이와 다르다. 학습이 아니라 주어진 자료를 기반으로 성과를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퍼부어대기보다는 주어진 자료를 기반으로 스스로 수행해 가며 최대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질문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확인해 보자. 상대방이 보낸 이메일, 매뉴얼, 최초 보고자료 등을 참고해 보고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방법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스스로 터득해서 알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 전 확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