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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받아들이게 하려면? (베트남의 오토바이 사례)

시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by 보이저

지난주 베트남 냐짱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한국보다 확연히 저렴한 물가, 맛있는 음식, 신나는 바다체험 등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올 수 있었다. 왜 냐짱이 한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지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컸던 문화충격은 바로 '베트남의 도로교통' 문화였다. 오토바이가 도로에 넘쳐났고, 도로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사람이 뒤엉켜 있었다. 큰 도심이 아니고서는 신호등 자체가 아예 없었고, 횡단보도 역시 신호는 없었다. 사람들은 눈치껏 길을 건너야만 했다.


양보는 없었다. 사람이 건너건 말건 자동차와 오토바이는 돌진해 왔다. 그렇게 목숨을 건 도로 횡단을 수시로 해야 했고, 아무래도 아이들까지 있던 터라 도로를 건너는 것을 나중에는 기피하게 되었다. 현지인들이야 워낙 적응이 되다 보니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외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길 건너는 것이 늘 불안하기만 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그렇게 많을까? 길거리에 왜 신호등이 거의 없을까?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늘릴 수는 없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베트남 정부에서도 이를 개선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토바이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쉽게 바꾸기는 힘들었다고 한다. 사람에게 한 번 굳어진 의식이나 습관은 바꾸기가 정말 어렵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 베트남 도로교통과 연관 지어 설명하고자 한다.




베트남에 오토바이가 많은 이유


베트남에 등록된 오토바이 수는 5000만 대가 넘는다고 한다. 인구 1억에서 미성년자를 제외한다면 1~2명 당 한 대씩은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가히 오토바이의 천국이라고 불릴만하다.


동남아시아는 오토바이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특히나 베트남은 그중에서도 오토바이가 많다. 당연히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다. 1일 평균 교통사고 사상자 수는 30명에 이른다. 신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베트남에는 왜 이렇게 오토바이가 많은 것일까?


첫 번째는 대중교통의 부족이다. 베트남은 최근에야 하노이와 호찌민에 지하철이 생길 정도로 교통 인프라가 열악하다. 도로가 폭이 좁고 보도가 좁다. 길이 여기저기 파여 있는 것도 통행을 어렵게 한다.


베트남은 40년 간 일본, 프랑스, 미국, 중국, 캄보디아를 상대로 전쟁을 치른 국가이다. 이 기간 동안 사회 인프라는 파괴되었고 복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연히 대중교통 인프라는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동이 불편하다 보니 사람들은 편리하고도 값싸게 구매할 수 있는 오토바이를 선호하게 되었다. 마침 일본의 혼다가 대대적인 오토바이 홍보를 진행하였다. 이렇게 베트남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애용하게 되었다.


베트남이 고도성장하면서 시내버스도 늘리고 교통 인프라도 개선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는데 굳이 버스를 타지 않으려고 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베트남에서는 손해를 세금으로 보전해 줄 수 없었고 적자에 시달리던 버스 회사들은 결국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되었다.


지하철 역시도 사람들은 지하철 역까지 자기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그리고 몇 번 지하철을 타던 사람들은 오토바이가 차라리 더 낫다고 기존 방식을 고수하게 되었다. 큰돈을 들여서 만든 지하철인데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를 싫어하는 이유


사람들은 일단 어떤 것에 적응이 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이를 '경로 의존성'이라고 한다. 기존 방식이 익숙하기에 계속 그 방식을 고수하게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엑셀 프로그램을 매우 기피하던 나이 많은 팀원이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엑셀 사용을 싫어했다. 수식이 잘못되면 찾아내기도 힘들고, 그거 일일이 입력하는 게 더 시간이 걸린다고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셨다. 알고 보니 그분은 엑셀을 하나도 모르셨던 것이다. 사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엑셀 기능은 한정적인데 그 낯섦이 싫어서 고집을 피웠던 것이었다.


이 분은 특이한 케이스이지만 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낯선 것을 싫어한다. 기존 방식이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아무리 AI, AX 방식, 유비쿼터스 등 온갖 도구를 비싼 돈 주고 사서 직원들에게 쥐어주는데도 활용률은 저조할 뿐이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저 잔소리로만 들리는 것이다.




바람직한 변화 정착 방안


회사에서 온갖 카드뉴스, 이메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는 절대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이거 하면 커피 쿠폰 드립니다!" 이것도 커피 때문에 한두 번만 하지 더는 하지 않는다.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되어야만 사람은 움직인다. 그건 누가 이야기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1. 초기에는 어느 정도 강제성을 부여하자


코끼리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 주인이 아무리 어르고 때려도 먹으려고 하지 않고 꿈쩍도 않는다. 이 때는 새끼를 떼어놔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새끼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코끼리가 움직이게 된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AI에 대해서 팀별 자체 미션을 정하게 한 뒤, 제대로 수행하여 성과를 내는지 결과를 갖고 팀 평가 중 20퍼센트를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되니 임원 이하 전체 구성원들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AI 강의를 듣는 사람, 책을 보면서 챗봇도 만들고, 매뉴얼도 만드는 사람 등등.. 꼼짝도 하지 않던 코끼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안 하면 나쁜 평가가 나오니 좋건 싫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지금 내가 보이고 있는 모습을 알려주자


예전에 개그맨 이경규 씨가 진행하던 '양심 냉장고' 프로그램이 있었다. 횡단보도 정지선 뒤로 차가 정지하는지 관찰한 후, 법을 준수하는 차 주인에게 냉장고를 수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몇 시간을 촬영해도 단 한 대도 정지선을 준수하는 차량이 없었다. 정지선은 고사하고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너가는 사람이 없으면 그냥 막 지나가는 차들도 부지기수였다. 정지선을 모두 다 지키는 차들이 나오는 경우는 1시간에 1대가 있을까 말까였다 (이때 냉장고 선정 기준은 차선에 있는 모든 차들이 다 정지선을 준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30년 전 프로그램이 방영될 당시와 비교하면, 정지선을 준수하는 차들은 정말 많아졌다. 이 프로가 히트를 치면서 사람들 사이에 교통법규 준수에 대한 의식이 싹트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대로가 편해!" 이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보여주면서, 변해야 된다는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3. 변했을 때의 효과를 체험하게 하자


아프리카에서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한다. 새마을 운동은 한국을 빠른 속도로 근대화시킨 성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 성공 모델이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에 소개되어 빈곤 탈출을 위한 운동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들도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무슨 돈을 쥐어주는 것도 아니고, 각 마을마다 필요한 사업을 주민들이 직접 결정해서 알려주면 자재와 기술을 알려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새마을 운동은 '자율성'과 '맞춤형 기술과 자재 지원'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니 돈을 쥐어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농사가 잘 되지 않는 토질을 가진 마을에는 닭을 키우는 양계 사업을 지원하였다. 효과적으로 닭을 재배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닭고기와 계란을 시장에 팔고 그 돈으로 식량도 사고, 아이들 학교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마을에는 전기가 설치되고 공동 지하수도 개발되면서 더 이상 밤이 칠흑같이 어둡지도 않게 되고, 물을 뜨러 몇 시간씩 걷지 않아도 되었다. 입소문이 난 새마을 운동은 그렇게 여기저기서 서로 도입하겠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이처럼 변화를 통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변한다. 회사에서도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면 업무역량이 향상되어 평가에도 유리하고 급여도 더 받을 수 있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래서 정말 직원들의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제도나 시스템을 선정하여 효과를 거둬 입소문이 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프리카 새마을운동


마무리하며


변화는 누구나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진다. 설령 그게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쉽게 시작하지 못한다. 그만큼 경로 의존성이 주는 유혹은 막강한 것이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베트남 정부가 오토바이를 줄이고 싶다면 대중교통을 늘려야겠지만 단순히 지하철, 버스 노선이 늘어난다고 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오토바이를 안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이미 오토바이에 적응이 되어 버렸고, 굳이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느니 집에서 오토바이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 세금을 늘리거나 가구 당 보유 대수를 한정하는 방법, 사고 시 무거운 책임을 물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꾸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인센티브도 부여해야 한다. 100번 이상 사용 인증 시, 10번 무료 탑승권 주기 또는 최근 인도에서 하는 것처럼 기차 승차표에 로또 번호를 부여해서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도록 한다던지 여러 가지 방법이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유인하면서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재미도 있고 이득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베트남 오토바이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지만 사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회사에서는 큰돈을 들여 AI,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등을 직원들에게 확산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직원들 반응은 시큰둥하기 그지없다. 그런 거에 쓸 돈 있으면 직원들 월급이나 더 올려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마치 수학공부 하기 싫어하는 학생에게 수학 잘해야 일류대 간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는 것과 같다. 일류대는 죽었다 깨도 못 갈 것 같은데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그런 것보다는 나도 수학을 잘할 수 있다는 성공 경험과 수학이 주는 의외의 재미를 느끼면서 성적이 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결국 본인이 느껴야 하는 것이다. 변화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변화는 어렵지만 전략을 잘 짜서 접근하면 분명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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