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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가 잔심부름을 자주 시키나요?

일못러에서 벗어나기

by 보이저

얼마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정된 모 국회의원의 갑질이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보좌관들에게 집 안 쓰레기 정리에 심지어 화장실 비데 수리까지 온갖 사적 심부름을 다 시킨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의 업무는 국회의원이 의정 활동에 집중하도록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런데 가정부처럼 집안일에 투입된다면 보좌관 급여를 국고에서 지원해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비단 국회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 사기업에서도 상사들이 직원들을 사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그 타깃이 내가 된다면 가뜩이나 바쁜 업무에 심부름까지 더해져서 회사생활이 더욱 고달파질 수밖에 없다. 나에게 이런 일이 집중되는 이유와 함께 심부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소개드리고자 한다.




내가 겪은 심부름 사례


첫 직장에서 겪었던 일이다. 당시 부사장은 심부름 많이 시키는 것으로 악명 높던 사람이었다. 마치 황제처럼 군림하려고 했고, 상식에서 벗어난 잔심부름을 팀원들에게 마구 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 자기 숙소 벽지를 노란색으로 도배하라고 직원들에게 시키기

- 매일 아침마다 자기가 먹을 김밥을 종류별로 딱 하나씩 한 줄로 만들어서 갖고 오라고 시키기 (참치김밥 1개, 멸치김밥 1개, 치즈김밥 1개 이런 식으로 한 줄을 만드는 거다)

- 평소 좋아하는 기상 캐스터가 안 보인다고, 방송국에 전화해서 확인하게 하기

- 영덕게가 먹고 싶다고 하면서 직원에게 직접 경북 영덕에 가서 영덕게 사 오게 하기



이런 만행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팀장들이야 찍소리도 못하고 신입사원들에게 시킨 대로 하라고 닦달하기 일쑤였다. 그때 심하게 현타가 왔다. 내가 이런 일 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준비한 걸까? 왜 아무도 이런 부조리에 대해 침묵하는 걸까? 다행히 그 전무는 오래가지 못하고 바뀌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심부름을 시키는 상사들은 많았다.



사적 심부름의 유형


- 자기 사무용품을 대신 사달라고 하는 것

- 회식 끝나고 자기 집까지 바래다 달라고 하는 것

- 자기 자리 나 임원 방 청소를 시키는 것

- 개인 택배 수거나 우편물 발송을 요청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업무 범위를 벗어난 사적 심부름에 해당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도 인정될 수 있는 사안들이다. 예전보다는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런 지시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내가 자주 심부름을 하게 되는 이유


대체적으로 이런 심부름은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에게 몰리게 된다. 한참 일하기 바쁜 대리 이상 실무자들보다는 단순 업무 비중이 높은 사원급 직원들이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 직급이 올리간 상태인데도 계속 잔심부름이 몰려온다면 이건 직장생활에 있어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내가 보고나 기획 등 팀 핵심업무에서 비켜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잔심부름하는 것으로 포지셔닝이 되었다는 뜻인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거절 잘 못하는 만만한 성격으로 보여도 잔심부름의 타깃이 되기 쉽다. 얘한테는 이런 부탁해도 괜찮아~ 이렇게 인식하면 계속 부탁이 반복된다. 한두 번 호의로 한 일인데 점차 이 일이 내 업무로 고정되는 것이다.



잔심부름에 대한 대응 방안


1.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말자


잔심부름 부탁을 받고 기분이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야 담임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킨다면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좋아하겠지만, 직장인이 자기 할 일도 많은데 본업 이외의 잡무에 투입된다면 짜증 나는 게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러나 너무 민감해하지는 말자. 회사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잔심부름할 일이 분명히 있다. 야근하는 팀원들을 위해 저녁 도시락 받아 오기, 출장 때 내가 운전하기, 회식 때 먼저 가서 미리 세팅하기 등 잔심부름이 필요한 때가 분명히 있다.


이때 먼저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다들 귀찮아하는 일을 먼저 자청해서 한다면 빛이 나게 된다. 내 이미지도 좋아지는 것이다.




2. 선을 넘는 경우 정중하게 말하자


그러나 잡무가 너무 많고, 그 정도가 심하다면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앞에서 내가 겪었던 사례들처럼 기상 캐스터 최근 근황 파악하고 있고, 영덕게 사러 경북 영덕군 가는 것은 황당무계한 지시이다.


이런 것은 정중하게 반대 의사를 전하자. 지시한 사람이 너무 높은 사람이라면 직속 팀장에게 고충을 이야기하자. 팀장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 문제를 알게 하는 것은 필요하다.

만일 직속 선배가 그런다면 팀장에게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자.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냥 받아주면 얘는 이래도 괜찮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꼭 끊고 가자.




3. 내 업무를 꿰차자


내가 한가하게 보이면 타깃이 되기 쉽다.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겠는가, 한가해 보이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겠는가? 일은 많아도 팀 핵심 업무가 아니라 단순 업무라면 그 사람에게 잔심부름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나만의 전문 업무를 만들어서 꿰차자. 보고서 작성은 이 사람, 사내강의 전문은 이 사람 이렇게 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 전문 업무를 만들어야 한다.




4. 공론화를 하자


요즘은 직장인 익명앱인 '블라인드'가 있다. 블라인드를 좋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차마 실명으로 말하기 힘든 문제들을 말하게 하는 순기능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블라인드 앱이 도입된 이후 상사들이 팀원들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는 글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


글을 써서 문제 제기를 하자. 이게 소문이 퍼지면 그 무개념 상사도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100퍼센트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상사가 조금은 자중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근로계약서에는 내가 할 일에 대해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관련 법규나 취업규칙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잔심부름이 늘 존재하고 이 일들은 특정 팀원들에게 집중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잔심부름이 꼭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팀에 필요한 잔심부름이라면 여건만 된다면 내가 해보자. 내가 그래도 직급이 과장인데..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기꺼이 자원해보자.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업무와 상관없는 잔심부름이 반복된다면, 이때는 분명하게 말하자. 나는 일하러 회사를 다니는 것이지, 잔심부름하려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존엄성은 내가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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