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방법
베트남 여행 중에 본 일이다. 해질 무렵 냐짱의 선셋바에서 바다에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다.
냐짱은 경기도 냐짱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우리 바로 앞 쪽 테이블 역시 한국인 커플이었다. 커플 중 하나가 자기 친구에게 영상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여행의 즐거움을 친구에게 말하는 것이겠지~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통화는 10분을 넘어 20분이 다 돼 가도 끝날 줄을 몰랐다. 일부러 들은 것은 아니지만 별 대단한 내용도 아니었다. 여기 오토바이 진짜 많아, 풀빌라가 참 좋아 그런 내용 일색이었다.
상대방은 그 사이에 아무 할 일이 없다 보니 폰만 보거나 바다만 계속 응시할 뿐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나와 말하던 상대방이 저렇게 장시간 전화로 다른 사람과 주야장천 통화하고 있었다면 내 기분은 어땠을까? 아마도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상당히 불쾌했을 것이다. 이때 전화 에티켓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회사에서도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임원이나 팀장과 같은 상급자와 대화하는 도중에, 이 사람들에게 전화가 올 경우 내가 있건 없건 10분이고 20분이고 통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나를 자리에 둔 채로 그냥 사라져 버린다. 이러면 나는 황당하게 된다. 금방 돌아오는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고, 계속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마치 내가 투명인간 취급받은 기분이 들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나보다 못한 사람이니 내가 우선순위를 아래로 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랑 말하는 도중에도 쉴 새 없이 폰을 보거나 전화를 하고, 심지어 나가기까지 하는 것이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자기 윗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도 그렇게 할까? 결코 아닐 것이다. 나에 대한 무시가 깔려있는 것이다.
나랑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다른 중요한 일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나와의 대화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동료가 일 하다가 모르는 게 있어 나에게 물으러 왔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오늘 오후에 있을 2분기 실적 보고가 가득 차 있다. 이때 동료가 아무리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동료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이럴 때는 동료와의 대화 자리가 한없이 불편하고 귀찮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냐짱 선셋바에 있던 그 커플도 사실 속마음은 이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내 앞에 있다면 그렇게 20분 넘게 다른 사람과 통화할 수 있었을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게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콩깍지의 힘은 큰 것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다면 그 시간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되도록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혼자서 삐져서 뾰로통하게 있어도 상대방은 잘 모른다. 오히려 오해하게 된다. 내가 싫어서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라고 오히려 내 탓을 하게 된다.
나랑 있을 때 나에게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쭈뼛쭈뼛 개미 목소리로 들릴락 말락 말하지 말고 큰 소리로 분명하게 이야기하자. 만일 상대방이 직장 상사라서 솔직하게 말하기 힘들다면 돌려서라도 말하자.
그러면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멋쩍어하면서 당신과의 대화에 다시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관심이 없거나 다른 바쁜 일 때문에 나에게 신경 쓰기 힘든 사람과 지금 대화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겉핥기식으로 대충 대화를 하다가 끝나게 될 뿐이다.
그렇게 만나는 것은 오히려 안 만나느니만 못하다. 아예 안 만났으면 상대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었을 텐데 만나게 되면서 이 사람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서로 편안한 다른 시간에 다시 만나자고 제안하는 것이 좋다.
나와 만나서 전화하기 바쁘고 폰 보기 바쁜 사람과의 관계가 굳이 필요할까? 직장이나 가족들처럼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관계라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관계라면 이 관계가 굳이 필요한지도 고민해 보자.
40대는 인간관계를 늘리기보다는 정리하고 줄이는 시기라고 많이들 말한다. 그 말이 정말 맞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수많은 스트레스와 시간 낭비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관계를 계속 이어 나갈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자.
우리는 모두 소중한 존재이다. 존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집중하지 않고 자꾸 전화하는 사람을 좋아하기는 어렵다. 내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 급한 전화라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얼른 통화를 끝내자. 짧게 끝내기 힘든 전화라면 아예 나중에 만나자고 하자. 차라리 그 편이 낫다.
나에게는 소중한 전화 통화가 자칫 상대방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인간관계는 항상 사소한 것에서 좌우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