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안 대리는 워라밸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근무시간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8시간이며, 그 이후에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특히 그는 귀차니즘이 강하다. 귀찮은 것은 질색한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든지 그냥 빨리 해치워 버리려고만 한다. 그에게 있어 업무란 그저 어떻게든 끝내면 그만인 것이다. 더 꼼꼼하게, 더 완벽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것은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다.
일에 대한 그의 태도는 곧바로 업무성과에서 드러나게 되었다. 그가 하는 일마다 늘 구멍이 나게 되었다. 마치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가 부실시공 때문에 벌써 물이 새고, 벽에 금이 가는 것처럼 그가 하는 일들은 하자가 넘쳐난다. 일을 후딱 끝내버리고 싶어 하고, 정해진 시간에만 근무하고자 하는 그의 강한 열망이 불러온 참사인 것이다. 일을 할 때 내가 챙겨야 하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 부분도 원인 중의 하나이다.
팀에서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만 간다. 일을 제대로 못해내는 그에게 중요한 업무가 주어질 리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상황의 심각성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행복해하고 있다. 일이 줄어들어 이제는 정시에 칼퇴근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냄비 속 개구리가 냄비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것도 모른 채 편안하게 물속에 누워있는 격이다.
맡은 일을 꼼꼼하게 수행하지 못하고 대충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거나,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순, 반복 일이거나 너무 난도가 낮거나, 반대로 너무 난도가 높아 수행하기 어려운 일인 경우일 수도 있다. 매일 같이 전화가 쏟아지거나, 항상 밖으로만 돌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잘 보여서 물건을 팔아야 하는 외근직인 경우 그 일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일에 만족하기가 힘들다.
내가 일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고 믿다 보니 일에 대한 만족도 역시 떨어지게 된다. 어차피 열심히 일해봤자 나쁜 평가받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기에 열심히 일할 동기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 정도면 됐지 뭘" 이런 무사안일주의가 강하다. 의심 가는 것. 확인이 더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찾아서 의문이 풀릴 때까지 알아보아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는다.
대충 상황만 확인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변경 사항이 있는지 이런 것은 확인하지 않은 채 넘어가게 된다. 일이 어떻게 되던지 관심 밖이다. 나중에 리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실적을 물어볼 때, 그때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다.
꼼꼼하게 내용을 확인하고 대비하면 좋은데, 일을 쳐내기 식으로 하다 보니 이런 부분이 취약하다.
빨리 퇴근해서 회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다. 회사는 그저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곳일 뿐이다. 쇳덩어리가 나를 짓누르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 상황을 탈출하고 싶어진다.
회사가 그런 쇳덩어리 같으니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정시 퇴근은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것도 일이 많은 부서에서 종이 땡 치자마자 가는 것은 눈 밖에 날 수밖에 없다.
무엇인가에 깊이 몰두하는 것이 있을 때도 회사에서 마음이 떠나게 된다. 이제 이 회사 그만 다니기로 결심했을 때, 다른 인생을 펼치기로 작심했을 때 회사라는 공간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취미생활에 빠져 있는 경우도 회사에 충실하기 어려워진다. 아는 분 중에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 분이 계셨다. 응원하는 팀 경기는 홈경기뿐만 아니라, 원정 경기까지도 빠지지 않고 직관하셨다. 당연히 축구가 있는 날은 휴가를 수시로 쓰셨다. 그분 자리는 응원하는 팀 축구 액세서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마치 축구응원이 본업이고, 직장은 부업으로 하는 것만 같았다. 이렇듯 취미생활에 지나치게 빠지면 회사에 소홀해지게 된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감춰지는 것은 없다. 언제 가는 다 드러나게 된다. 내가 귀찮다고 대충 엑셀에 숫자 입력한 것은 나비효과가 되어 다른 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그 자료를 다른 부서에 공유하는 순간, 잘못된 수치로 전달되고 이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내가 대충 일하는 바람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료를 다시 전수 조사하고 수정해야 한다. 여기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내 선에서 해결이 안 될 경우, 다른 사람까지 투입되어야 하는데 이 경우 큰 민폐가 된다. 내 일도 아닌 다른 사람 일 때문에 괜히 고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료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신뢰를 잃고 만다.
결국 그렇게 회사에서 나쁜 평가를 받으며, 내 입지는 좁아지게 된다.
대충 일하는 것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오랜 기간 형성된 뿌리 깊은 내 정체성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꼼꼼하게 일해야지! 이렇게 결심한다고 해서 바뀌지는 않는다. 쉽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고 독하게 아래 방법대로 해보자.
대충 일하는 사람들은 귀찮은 것을 정말 싫어한다. 전화해서 확인하고 물어보는 것, 엑셀 창을 띄워서 일일이 확인해 보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한다. 그런 일일수록 절대 미뤄서는 안 된다. 미루는 순간 그 일은 안 하게 되고 결국 큰 사고로 이어진다.
해야 하는 일은 즉시 바로 해라. 다른 바쁜 일이 있으면 기록해 놨다가 그 일이 끝나면 바로 해라. 만일 시간이 걸리면 그날은 야근할 각오로 임하자. 일이라는 게 다음 날 이어서 하려고 하면 생각도 잘 안 나고, 연속성이 끊어지기에 사고로 자주 이어진다. 궁금한 것은 바로 전화하고, 확인할 건 다 확인해서 정확하게 하자.
내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몰리는 경우가 있다. 이 때는 리더에게 양해를 구하자. 사람은 케파(Capa, 수용능력)라는 게 있다. 케파를 무시하고 계속 일을 던져 주는 조직은 뭔가 잘못된 조직이다. 인력을 충원하거나, 업무를 조정해서 불필요한 업무는 없애야 되는데, 리더가 자기 성과 내세우고 싶어서 일만 잔뜩 벌이고 피해는 팀원들이 고스란히 지는 경우가 참 많다.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내가 맡고 있는 일이 너무 많다고 말하고 업무를 다이어트하자. 일이 너무 많으면 결국 대충 처리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능력은 한정적인데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처리할 수 있는가? 그렇게 사고 터져도 정작 리더는 아무 책임 지지도 않는다. 자기 때문에 바쁜 팀원에게 모든 책임을 지운다. 그러니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업무를 조정하자.
집에서 쇠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는 법이다. 회사에서 대충대충 일하는 사람은, 집에서도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모든 일에 다 대충대충 임한다.
양말을 휙 하고 아무 데나 벗어던지기 일쑤이고, 설거지는 며칠 째 방치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억지로 설거지를 하게 되면 대충 물만 묻혀서 닦을 뿐이다. 집 안 청소를 할 때도 청소기를 돌리는 둥 마는 둥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보이는 곳만 대충 쓱쓱 밀어댈 뿐이다.
친구들과 만날 때도 시간 감각 없이 10분 정도 늦는 것은 기본이다. 어디서 만나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매사에 대충대충, 설렁설렁 이 몸에 배어 있다. 자기가 둔 물건도 잘 기억하지 못해 수시로 잃어버리고, 누가 한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 보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건 습관을 만들어서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청소기를 돌릴 때는 매뉴얼을 정하자.
- 식탁 의자는 밖으로 다 빼기
- 바닥에 있는 물건들은 다 올려놓기
- 구석까지 다 청소기 밀기
- 소파 위는 한 번 뜯어서 시트 안을 청소기로 밀기
- 청소기가 끝나면 밀대로 바닥을 닦기
대충대충 일하는 데는 내 태도에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인 경우도 많다. 반드시 세부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하자. 그리고 그 매뉴얼 대로만 하자. 창의성 발휘할 필요도 없다. 정해진 것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집에서부터 대충 일하는 습관을 고쳐나가자.
회사 외 내가 관심을 두는 것들이 많다. 그 자체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사가 있고 취미가 있다. 최근 워크 앤 라이프, 즉 워라밸을 중시하는 것도 사람이 일만 해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관심사가 지나치게 비중이 높으면 회사 일에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풍선이 커지면 방 안을 가득 채우게 되고 내가 생활할 공간이 줄어들듯이 취미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이게 적정선에서 조절되어야 한다.
나도 최근 글을 쓰면서 이 쪽에 관심을 완전히 뺏긴 적이 있었다. 이 때는 회사 가는 것도 싫고 회사에서도 틈만 나면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는 했다. 이 시기 나는 실수를 참 많이 범했다. 일도 대충 하는 경향이 강했다. 주의를 한쪽에 뺏겨 버리니 회사 일에는 관심을 제대로 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뒤 글쓰기 원칙을 세웠다. 글을 출퇴근 길 지하철, 점심시간 뒤에만 쓰고, 댓글은 일하다 쉬는 시간 10분 정도에만 달고, 집에서 자기 전에 주로 다는 것으로 했다. 이렇게 원칙을 세우니 회사에서 대충대충 일하는 모습도 줄어들게 되었다.
내 신경을 분산시키는 게 있다면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대충대충 일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결점이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절대로 일못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는 일마다 부실하고 사고가 나는데 믿고 맡길 수가 없는 것이다.
대충 일하는 것을 고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랜 기간 형성된 습성이기 때문에 단시간 만에 내 의지만 가지고는 고치기 어렵다. 일단 집에서부터 고치자. 혹시 대충 샤워하는 습관이 있다면, 청소나 빨래를 대충 한다면 이것부터 바꿔나가자.
이때 의지만 갖고는 절대 바꾸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할 일을 순서대로 적어보자. 그것대로 하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보고 그 순서대로 해보자. 사람이 습관이 만들어지는데 드는 시간이 90일이라고 한다. 딱 90일, 석 달 동안 꾸준히 하면 꼼꼼하게 일하는 습관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회사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요소임을 명심하고 경각심을 갖고 시작해 보자. 어렵지만 90일만 꾸준히 하면 분명히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