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집 안에는 빨래 바구니가 있다. 다 쓴 수건, 옷, 양말 등 옷가지들을 그 바구니 안에 넣고 그 바구니가 다 차면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돌리게 된다.
집 바닥에 수건 하나가 널브러져 있어서 무심코 그 수건을 빨라 바구니 속에 넣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아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수건 혹시 오빠가 바구니 속에 넣었어?"
"응.. 바닥에 있길래 넣었지. 그런데 왜?"
"이 수건 안에 옥수수 알이 잔뜩 들어 있었어. 지금 세탁기 안으로 옥수수 알이 다 들어가서 막혔어. 좀 확인하고 두지 그랬어"
"아.. 나는 그런 건 생각도 못했는데"
순간 내가 관찰력이 부족해서 벌어졌던 과거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지나가게 되었다.
나는 관찰력이 부족한 편이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확인하면 벌어지지 않을 실수였는데, 그게 부족해서 실수를 하고는 했다.
회사 사무실에 웬 박스 하나가 오랜 기간 방치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보기에도 안 좋고 해서 그 박스를 내다 버렸다. 며칠 후 한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에 있는 박스 못 보셨어요?"
"네.. 그거 못 봤네요"
"아.. 거기에 중요한 책이 들어 있었는데, 큰일이네"
나는 엉겁결에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내가 그 안에 어떤 것이 들어 있었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내 관찰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상대가 보내준 약도를 조금만 더 꼼꼼하게 보았다면 금방 길을 찾았을 텐데, 길을 못 찾아서 결국 결혼식이 시작되고 나서야 헐레벌떡 식장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관찰력이 부족하면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된다. 그리고 실수하게 되는 것이다.
관찰력이 좋기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은 바로 현대 정주영 회장이다. 그는 일상에서 보는 것들을 절대 대충 넘기지 않았다.
6.25 전쟁이 막바지이던 1953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부산 유엔군 묘지를 방문하고 싶어 했다. 당시는 이른 봄이었다. 묘지의 잔디가 자랐을 리 없었다. 겨우내 죽은 잔디가 누렇게 풀 위에 덮여있는 상태였다.
미군 관계자들은 다급해졌다. 자국 대통령이 국빈 방문하는데, 이런 묘지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푸르게 만들 도리도 없었다. 페인트를 칠할 수도 없고.. 다급한 마음에 여기저기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이때 현대 정주영 회장이 나타났다. 당시 현대는 자동차 수리나 소규모 건설을 하는 작은 회사였다. 갑자기 그에게 좋은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그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김해평야 근처에 푸른 보리밭이 있는 것을 떠올렸다. 즉시 그는 그 논으로 가서 비싼 값에 아직 다 자라지 않은 푸른 보리를 전량 구입했다. 그리고 그걸 들고 가서 묘지에 심었다. 유엔군 묘역은 순식간에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정주영 회장은 보리 구매 비용의 몇 배가 넘는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처럼 관찰력이 좋으면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세상에는 기회가 많이 오지만, 그 기회를 잡는 것은 준비된 자이다. 그 준비는 관찰력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정주영 회장처럼 관찰력이 좋으면 생각하지 못한 기회를 잡아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관찰력이 가져오는 효과는 무엇이 있을까?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더 빨리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계가 고장 났을 때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미세한 진동이나 소리를 감지하여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 평소에 들리는 소리와 미세하게 다른 소리가 날 때 이를 포착해 내는 것이다.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 변화, 몸짓, 말투 등을 통해 감정이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어 공감 능력이 높아진다. 상대방의 기분이나 의도를 더 잘 이해하게 되므로, 오해를 줄이고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원활한 의사소통과 신뢰 구축으로 이어진다.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세부 사항들을 발견할 수 있고, 동료나 상사가 주는 비언어적 신호(non-verbal cues)를 파악하여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이는 실수를 줄이고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관찰력도 사실 습관이다. 습관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90일만 투자하면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 다음 방법들을 추천드린다.
아파트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종이를 모아서 버린다. 가끔 나는 집에 굴러다니는 종이들을 별생각 없이 휙휙 종이 박스에 던져 넣고는 한다. 가끔 아내가 묻는다.
"아이 시험지 혹시 오빠가 버렸어?"
"기억 안 나는데.. 시험지가 있었어?"
"버렸겠지. 오빠가 버린 게 어디 한 두 번이야?"
이런 상황을 종종 겪지는 않는가? 꼭 필요한 서류를 버린 뒤에 다시 찾느라 재활용품 수집 공간에 가서 진땀을 뺀 적이 있지 않은가? 버리기 전에 내용물을 한 번 더 살펴보자. 회사에서도 이메일을 삭제하기 전에 내가 건질 정보는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해 보자. 파일을 닫기 전에 내가 이 파일을 저장하였는지 한 번 더 보자. 그냥 닫아버리고 멘붕이 와서 허우적대는 일이 없도록 하자.
주변 사람들을 보거나 풍경을 보면서 문득 좋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뇌를 쉬면서 사색을 할 때 여유가 생기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의 폭이 확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귀한 기회를 스마트폰 보는 일에 뺏겨버리면 곤란하다. 폰을 들여다보는 순간 다른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지금 버스 타고 건너가는 한강대교 노들섬이 하루가 다르게 멋있게 변해간다는 사실도, 우리 집 근처 새로운 지하철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도 다 놓쳐 버리는 것이다. 그런 것 하나하나가 관찰을 잘하면 나중에 글을 쓸 때나 생각을 할 때 귀한 벽돌 한 장이 되는데 그걸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폰을 안 볼 수는 없지만 가끔은 창 밖을 보며, 주변 사람들을 보며 관찰해 보자. 요즘 젊은이들의 패션을 보며, 타투를 하는 젊은이들이 많구나, 지워지지 않는 타투를 굳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 보고, 주말만 되면 4호선 경마공원역에서 후줄근한 사람들이 열차를 타는 것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왜 경마에 빠져드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이탈리아 시스티나 성당에 갔다. 중세 역사를 아는 사람은 미켈란젤로가 성당 천장에 그린 그림을 보며, 저 그림이 7일 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하루 단위로 끊어서 그린 것이구나 하고 주의 깊게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그림의 화려한 색상만 보일 뿐 그 어떤 영감도 받을 수 없다. 내가 그 분야에 관심이 있어야 그만큼의 관찰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꾸준히 책을 읽으며 영상도 보고 지식을 쌓아가자.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그 분야에 대한 경험을 쌓아가자. 그럴 때 관찰력이 생기는 것이다. 현대 정주영 회장도 건설이나 토목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보리를 묘지에 심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배경지식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의 관찰력은 큰 힘을 발휘한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한번 더 자료를 살펴보고 내용물을 보는 것은 내가 섣불리 물건을 버리거나 파일을 지우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좋은 관찰력은 인간관계를 더 풍성하게 하기도 한다. 팀 동료 캘린더에 동그라미 표시로 '내 생일' 이런 글이 쓰여 있으면 생일을 기억했다가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다. 그 사람의 기념일이나 관심사를 기억했다가 챙겨주는 것은 굉장히 고맙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찰하고 조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한다면 이 관찰력으로 얻은 지식은 큰 힘을 발휘한다. 하나하나 사례를 들거나 이론을 만들 때 이것들이 철근이 되고 벽돌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관찰력의 힘은 크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세상을 유심히 바라보자. 내 주변을 조금 더 세심하게 살피자. 습관이 되면 이것도 자동적으로 될 것이다. 그렇게 관찰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