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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이겨내면 기회가 찾아옵니다(중국 덩샤오핑)

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by 보이저

고통과 시련을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런 고통을 겪게 되면 말라죽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사람이 모든 의욕을 다 잃고 죄절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난 이제 다 끝났어' 이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 뒤에 찬스가 있는 법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든 이겨내면 분명히 기회가 찾아온다. 축구에서도 초반부터 전방 압박을 하며 엄청난 기세로 밀어붙이는 팀이 있다. 이때 어떻게든 실점하지 않고 버텨내면 전반 중반 이후부터는 찬스가 온다. 이미 상대팀 체력은 빠르게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성공적으로 재기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중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중국의 국가 주석이었던 덩샤오핑(등소평)이었다. 그의 생애를 통해 그가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지 배울 수 있다.


덩샤오핑


출세가도를 달리던 덩샤오핑


1904년 덩샤오핑은 중국 쓰촨 성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부유했던 그는 14살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여기에서 공산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다. 마오쩌둥(모택동)과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는 국공내전 때 중국 국민당 정부와도 싸우고, 중국 본토로 진출하는 일본과도 싸우면서 점점 고위직으로 승진하게 된다. 특히 그가 이끌었던 군은 장강 도하 작전과 난징 정복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중국 공산당이 본토를 차지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 공을 인정받아 그는 고위 군사위원에 선출되었다.




찾아오는 시련


그는 서남지구 서기가 되어 그 지역을 통솔하게 되었다. 리더십이 좋고 과감하게 일을 처리하던 그의 명성은 높아져만 갔다. 다시 그는 중앙위원이 되었고 마오쩌둥과 함께 중국을 이끄는 지도자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사람에게는 늘 좋은 일만 생길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제든 사람에게는 비극이 찾아올 수 있다. 쭉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덩샤오핑에게 엄청난 시련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문화혁명'이었다. 문화혁명은 중국에서 약 10년 간 공산주의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명목 하에 벌어진 온갖 인권유린이었다. 당시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이걸 핑계 삼아 자신의 정적들을 모두 반동분자로 몰아 숙청해 버렸다.

문화혁명



덩샤오핑도 그때 반동분자로 몰렸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리더십이 있고 주변의 신망이 두터웠던 그를 경계하던 마오쩌둥은 잠재적인 경쟁자를 제거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그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밀어닥치게 되었다.


그는 지방으로 추방되었다. 그냥 추방된 것도 아니었다. 한 트랙터 공장에서 트랙터를 직접 고치는 일이 부여되었다. 나이 60대 때 기계라고는 만져본 적도 없던 그에게 이런 일을 시켰던 것이다. 원래대로면 사형이었으나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간곡하게 구탁해서 이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4년 간이나 트랙터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첫째 아들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탈출하려다 2층에서 떨어졌다. 척추가 골절된 그는 평생 하반신이 마비된 채 살아야만 했다. 덩샤오핑은 이 순간을 자기 평생에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고 고백했다.




때를 기다리며 참는 덩샤오핑


그는 묵묵히 참고 또 견뎠다. 불합리한 일은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이 언젠가는 바로 잡히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트랙터 공장에서 손에 기름을 묻히며 그는 만일 내가 다시 복귀한다면 장차 중국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고전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예상대로 그는 다시 복권되었다. 그리고 마오쩌둥이 곧 사망하면서 그가 다음 주석이 되었다. 마오쩌둥을 신봉하던 추종자들은 그가 주석이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다. 마오쩌둥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자기 속을 드러내지 않은 채 주석 자리에 올랐다.




중국을 바로잡는 덩샤오핑


그는 마오쩌둥은 공이 과보다 많다고 평가하며 겉으로는 마오쩌둥을 감쌌다. 그러나 더 이상 공산주의 이념이 중국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했다.


과격분자들을 모두 다 숙청한 그는 본인 우상화를 절대 금했다. 본인 초상화를 걸거나 노래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서방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 협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검은 고양이던 흰 고양이던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에 따라 자본주의 경제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그러면서 값싼 노동력과 낮은 법인세를 카드로 서방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 시련을 겪던 4년 간을 그냥 허비했던 것이 아니었다. 직접 현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뼈저리게 중국의 문제점을 몸소 체험하고 그걸 바탕으로 국가 체질을 바꿔나갔다. 그에게 시련의 기간은 단지 고통의 시간이 아니었다.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고통을 보낼 때의 바른 마음가짐


누구나 고통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별문제 없이 회사생활을 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와 맞지 않는 리더가 새로 부임하면서 나를 차별하고 괴롭히며 지옥이 펼쳐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도무지 나와 대화 방식이 달라 소통이 되지 않던 팀원이 리더에게 내 안 좋은 점을 부풀려 말하면서 이간질을 하고 결국 나를 왕따로 만드는 일도 발생한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업무를 맡으면서 온갖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이때 덩샤오핑을 떠올려 보자. 영원한 고통은 없다. 불합리한 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 그 리더가 떠나거나 내가 다른 팀으로 가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업무능력이 부족해서 겪는 문제는 내가 업무역량을 키워가면서 조금씩 해결될 수 있다. 지금 시련이 있기에 내가 나를 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개선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상대해 보면서 인간관계 스킬이 생겨나고 단단해지게 된다. 전투경험이 축적되면서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꼭 실력을 키우자. 사람은 잘 나갈 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영원히 잘 나갈 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 꺾이면서 내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때 미래에 대한 구상을 꼭 같이 하자. 그리고 나중에 성공해서도 어려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과거의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이 있다면 꼭 건져 주자. 과거의 나처럼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홀로 비를 맞도록 하지 말고 꼭 우산을 씌워주자.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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