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내가 한 일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직원들 급여를 주지 않고 야반도주하는 사장들도 있고, 세입자들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하는 집주인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리더가 잘못 의사결정을 해서 벌어진 일인데 애꿎은 부하 직원을 희생양 삼아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고는 한다. 이건 내 책임이 아니라 다른 사람 탓이라는 것을 보이려는 의도도 있고, 주변으로 관심을 환기시켜 문제에서 슬쩍 멀어지려는 것을 노린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잘못된 의사결정을 한 권력자들이 애꿎은 부녀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을 슬며시 문제에서 발을 빼려고 했던 사례이다. 그것은 바로 병자호란 이후 '환향녀'에 관한 것이다.
조선은 당시 떠오르는 태양이었던 청나라의 침입을 받고 있었다. 청나라는 명나라를 정복하기 전, 배후의 위험을 없애고자 하였다. 명나라와 조선이 힘을 합쳐 청나라를 공격할 경우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에 두 차례에 걸쳐 (정묘호란, 병자호란) 조선을 침략하였다. 병자호란 때 조선은 남한산성에 틀어박혀 항전했지만, 결국 청나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조선의 왕 인조는 청나라 황제 태종 앞에서 아홉 번 땅에 머리를 대고 조아리는 삼궤구고두 방식으로 항복했다. 그렇게 조선은 청나라에 굴복하게 된다.
역사에서는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부른다.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잘 묘사했지만 청나라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 포로들을 강제로 청나라로 데려갔다. 인구수가 적었던 청나라는 이들을 노예 삼아 힘든 일을 시킬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 중 가장 가혹한 운명에 쳐해 진 것은 여인들이었다. 청나라는 이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정절을 중시하는 성리학 아래에서 살던 조선 여인들에게 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치욕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수많은 여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 청나라는 이들을 붙잡아 다시는 도망치지 못하게 아킬레스 건을 끊어버렸다.
운 좋게 조선으로 돌아온 여인들도 있었다. 친정에서 큰돈을 마련하여 속전(노예에서 풀려나는 조건으로 내는 돈)을 낸 경우였다. 그러나 이렇게 풀려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청나라에서 이게 돈이 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점점 그 액수를 올렸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는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운 좋게 노예에서 벗어나 조선으로 돌아간 여인들의 삶도 기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는 '환향녀'라는 딱지가 붙었다. 환향녀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조선 여인들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당시 지배층들은 철저하게 성리학 이념에 절여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들이 정치를 잘못해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청나라 땅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버렸다. 환향녀들은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정절을 잃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야지 무슨 낯짝으로 조선 땅으로 기어들어 왔느냐는 논리였다. 참으로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왕 인조는 그래도 이런 명령을 내렸다. "홍제천 물에 몸을 씻은 여인들은 더러움이 다 씻겨나간 것이니 더 이상 정절에 대해 논하지 마라" 그러나 왕이 이런 말 했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심지어 당시 영의정이었던 장유조차 환향녀인 자기 며느리를 아들과 이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왕에게 간청할 정도였다.
수많은 환향녀들이 고국으로 돌아온 뒤 이혼당했고 심지어는 친정에서조차 내쳐지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걸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친정으로 돌아간 경우에도 동네에 소문나지 않게 죽은 사람 마냥 숨 죽이며 살아가야 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방치된 그들은 고국에서도 편안한 삶을 살지 못했다.
환향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지배층들은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경우가 많다. 비난의 화살을 그들이 대신 받게 함으로써 본인은 교묘하게 피해 가려는 것이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고, 돌을 던지면 다 맞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악용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직장에서도 자주 벌어진다.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는 경우, 밑의 직원 중 힘없는 직원이 이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제대로 이끌고 가지 못한 잘못을 감추고자 한 직원에게 독박을 씌워 자신은 탈출하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마치 샌드백 두드리듯이 팀 내 만만한 사람을 건드리고 공격하는 사람도 있다. 보통 이 만만한 사람은 팀에서 일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고, 팀에서 내 편을 들어줄 사람도 없기에 안심하고 괴롭히는 것이다. 그렇게 화제를 전환해 버리면서 나는 그 문제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가 버린다.
2006년 월드컵의 대한민국 마지막 경기는 스위스와의 경기였다. 당시 대한민국은 스위스의 촘촘한 수비벽에 막혀 공격 다운 공격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그때 스위스의 두 번째 골이 두고두고 논란이 되었다. 부심은 오프사이드로 판단해서 깃발을 들었는데, 주심은 이걸 무시하고 그대로 골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2대 0으로 패하고 말았다.
당시 여론은 들끓었다. 16강을 도둑맞았다. 심판 때문에 졌다 등등 당시 경기 심판을 성토하는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심지어 당시 감독이나 선수단, 대한축구협회까지 심판 탓을 하며 악화된 여론에 더욱 불을 지폈다.
그러나 당시 판정은 애매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오프사이드로 인정하지 않을 여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설령 비겼다고 하더라도 16강 진출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도 그 경기에서 대한민국팀 경기력은 최악이었다. 전술이 전혀 통하지 않았고, 선수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때 심판 판정 때문에 졌다고 하면서 팀은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처럼 책임을 지려고 하기보다, 외부의 누군가를 탓하면서 교묘하게 빠져나오려는 모습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때 타깃이 되는 것은 만만하고 힘없는 사람이다. 변명할 수도, 자기를 지켜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 편이 되어주자. 같이 힘을 합쳐 싸워주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처지를 이해해 주자. 그것만으로도 이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언젠가 나도 이런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 그때 아무도 도와두지 않는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리고 이런 희생양이 된다면 철저히 증거자료를 모으자.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폭로하자. 폭로가 어렵다면 적어도 이 팀을 벗어나도록 하자. 나에게 올가미가 씌워진 곳에서는 그 어떤 일을 해도 인정받을 수 없고, 내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감시당하고 지적당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전에 꼭 탈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