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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물거리면 큰 낭패를 봅니다 (병자호란 사례)

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by 보이저

식당 하나를 고를 때도 결정장애가 있어서 이 식당, 저 식당 고민하다 결국 아무 식당이나 들어갈 때가 있다. 식당에 들어갔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는 메뉴 고르기와의 싸움이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콩국수를 먹을까 장고에 들어간다. 그렇게 밥 먹기로 결심한 때부터 음식을 입에 넣게 되기 따기 수 십 분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과감하게 결정하지를 못하고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기 바쁘다. 보고서는 디테일 신경 쓴다고 온갖 디자인에 시간을 쏟아붓는다. 신제품을 출시할지 말지를 놓고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타이밍을 놓쳐 빛을 잃는 경우도 많다.


역사상으로도 빨리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해 큰 비극을 맞은 사건이 있었다. 잘만 했으면 대박을 노려볼 수도 있었는데 준비 부족 때문에 제대로 쪽박을 찾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바로 '병자호란'이다.




피난을 망설이는 인조


1636년 청나라는 조선을 침공하기로 결심한다. 본격적으로 중국 본토로 진격하기에 앞서 후방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함이었다. 명나라가 조선과 힘을 합쳐 협공을 하면 위험하기에 미리 그 싹을 잘라 버리고자 했던 것이다. 청나라는 선발대 병력들에게 일반 백성들의 옷을 입혔다. 그리고는 전속력으로 한양으로 향했다. 주변의 성들은 아예 건들지도 않았다. 그렇게 조선 깊숙이 쳐들어온 것이다.


기습공격이기는 했지만 청나라가 언제든 조선을 다시 침략하리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불과 9년 전, 정묘호란 때 조선은 청나라의 공격을 받았고 청나라는 그 이후에도 계속 조선을 위협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피난에 대한 준비가 진작에 되어 있었어야 했다.


그럼에도 조선은 제대로 된 피난책을 세워놓지 못했다. 기껏 대비책이라고 마련한 것이 강화도로 피난하여 시간을 번다 이 정도였다. 청나라는 기병대 위주라 해군력이 약하다고 판단하고 그런 대책을 세웠던 것인데, 이미 청나라는 많은 선박을 확보한 상태였고 항복한 명나라 군사를 통해 해군력도 확보한 상태였다. 제대로 된 대책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나마도 인조는 꾸물거리기만 했다. 갈 거면 빨리 강화도로 대피했거나 일찍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니면 예전 임진왜란 때 선조처럼 죽기 살기로 계속 남쪽으로 도망갔어야 했다. 실제 고려시대 때 거란족 침략 때 현종은 전라도 나주까지 피난 가면서 시간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왕이 피난 간다는 비난을 받기 싫다 보니 제대로 싸움은 안 하면서 인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청나라 부대는 엄청난 속도로 한양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일단 인조는 태자를 제외한 두 왕자와 왕후 등의 가족들을 강화도로 피신하게 하고 곧 뒤따라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청나라 군은 지금 홍제동 근방까지 쳐들어오고 말았다. 인조는 어쩔 수 없이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동쪽에 있는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가야만 했다.


남한산성은 산속에 지어진 천혜의 요새였다. 그리고 두꺼운 성벽으로 지어져 웬만한 포격도 다 막아낼 수 있었다. 문제는 식량이었다. 인조가 올 것이라고 예상을 못하는 바람에 충분한 식량을 비축하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인조가 끌고 온 수많은 신하들과 군사들까지 추가되다 보니 식량난은 가중되었다. 아무리 남한산성이 천혜의 요새라도 먹을 것이 없으면 독 안에 든 쥐 나 다를 바 없었다. 꾸물거리다가 결국 이런 사태를 자초했던 것이다.



인조가 빨리 결정을 내렸다면?


인조가 결정만 빨리 내렸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청나라는 조선의 성을 하나도 정복하지 않고 다 지나쳐 버린 상태였다. 이건 엄청난 도박이었다. 만일 조선군이 퇴로를 차단해 버린다면 그들은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고려시대 때 거란족이 비슷한 방법으로 고려를 침공했다가 귀주대첩 때 강감찬 장군에 의해 몰살당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거란족은 감히 고려를 다시 쳐들어 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인조가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면서 조선은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남한산성은 미리 식량을 저장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왕족들이 피신한 강화도 역시 사전 준비 부족으로 방비가 허술한 상태였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병사들도 미리 통지를 받지 못하다 보니 손발을 맞추지 못한 채 제각각 올라오다가 청나라 군에 하나씩 다 각개격파 당하고 말았다.


만일 인조가 빠르게 움직였다면? 그랬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일단 남한산성에 식량을 가득 쌓아두고 병력을 더 배치했거나, 아예 남쪽 깊숙하게 피난을 갔다면 청나라는 큰 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의 성들을 하나도 차지하지 않고 최소한의 식량만 가지고 내려온 상태였기에 몰살당할 염려도 있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처럼 요리조리 도망 잘 다니는 것도 능력이다. 인조는 도망도 제대로 못 가서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청나라 황제 태종까지 직접 온 터였다. 이렇게 되면 청 황제를 사로잡을 수도 있는 판이었다. 아예 청나라 자체를 지워버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황제를 인질로 하여 협상력을 확 끌어올릴 수도 있었다. 인조는 꾸물거리는 바람에 이 좋은 기회를 다 날려먹은 것이었다.




꾸물거리는 것의 문제점


병자호란을 살펴보면 의사결정이 늦어지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많은 회사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으면서도 기술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급격히 기울고 말았다. 수많은 사례들이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키아(Nokia)이다. 피쳐폰 시절, 노키아는 세계 점유율 1위 기업이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기존에 구축해 놓은 피쳐폰 시장 생태계를 버리고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기가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그 결과 노키아는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필름 제조회사 코닥(Kodak) 역시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트렌드가 넘어가는 시기에, 디지털카메라 사업 진출을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쳐 회사가 확 쪼그라져 버리고 말았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막대한 필름 시장에서의 수익을 놓치기 싫어 계속 망설이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당시, 프랑스는 독일의 엄청난 진격 속도를 보게 되었다. 직전 연도에 폴란드는 불과 일주일 만에 독일에게 정복당할 정도였다. 이때 프랑스는 고민에 빠졌다. 사실 프랑스는 '마지노 요새'라고 하는 엄청난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는 전체 20대 남성 중 1/3을 잃었다. 전쟁의 피해가 혹독했던 것이다. 비극을 반복하지 않고자 프랑스는 엄청난 두께의 콘크리트 요새를 독일 국경지역에 일자로 구축했다. 프랑스는 천만 대군이 밀어닥쳐도 이 요새는 뚫지 못한다고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면서 전투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더 이상 참호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던 그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는 전투기와 전차를 앞세워서 돌파하는 기계화 부대의 시대였던 것이다. 프랑스는 마지노선을 고수할지, 같이 전투기와 전차로 맞불을 놓을지 우왕좌왕하다가 몇 달 만에 독일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독일은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벨기에를 거쳐 아르덴 숲으로 밀고 들어왔다. 설마 숲을 뚫고 오겠어? 생각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만 것이다.

(좌) 독일군 침공 방향, (우) 마지노 요새


이처럼 의사결정을 빨리 하지 못하고 지체하게 되면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특히나 지금처럼 기술이나 추세가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는 의사결정이 느려지면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바람직한 해결방안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음 방법들을 활용하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일 수 있다.



1. 미리 사전 지식과 경험을 쌓자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주변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을 최대한 모으자. 미리 충분히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면 의사결정도 빠르게 내릴 수 있다. AI에 대해 기본 지식을 쌓고, 업무에서 실제 AI 기반 챗봇도 만들어보고, Q&A 게시판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면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AI 기술을 선택할 때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지식이 많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주변 사람들과 지식을 공유하자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내가 결정했으니 너네는 그냥 따르기만 해라' 이건 과거 권위주의 시대 의사결정 방식이다. 요즘은 납득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세상이다.

설득은 하루아침에 뚝딱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꾸준히 주변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공유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의사결정 순간 때 쉽게 결정하고 이해시킬 수 있다.



3. 마감 시간을 정하자


조금은 타이트하게 의사결정 마감시한을 정하자. 그러면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늘어지게 글쓰기를 하는 폐해를 막을 수 있다. 딱 그 기한 안에는 무조건 의사결정을 다 끝내겠다는 마인드로 임하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고 무조건 좋은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4. 불필요한 정보는 과감하게 버리자


이것저것 정보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혼선을 주게 된다. 문래역 근처에 카페를 차려야겠다고 결심한 경우, 필요한 정보는 역 출구까지의 거리, 하루 평균 유동인구수, 인근에 경쟁할 카페의 수, 주변에 학교나 학원, 아파트 단지, 직장은 얼마나 되는지일 것이다. 이것 외에 거리가 꽤 먼 신도림역 주변 상권이나 문래역 인근 고등학들의 일류대 진학률 이런 정보는 부차적인 정보일 뿐이다. 이런 정보는 과감하게 쳐내자.


내가 의사결정을 하는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보에만 초점을 맞추면 된다.




마무리하며


미국 인디언 부족 중 하나는 스무 살 남짓된 결혼하지 않은 추장 딸에게 과일밭을 지나가게 하면서 그중 가장 탐스럽게 열린 과일을 따오라고 지시한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 과일밭을 지나가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된 과일을 따오지 못한다고 한다. 지나가면서 제법 탐스러운 과일들이 있지만, 나중에 가면 더 크고 좋은 과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결정을 미루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다. 결정을 자꾸 미루게 되면 결국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바둑 명언이 있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 경기를 망치는 최악의 수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병자호란 때 피난을 늦게 떠났던 인조의 경우도 '장고 끝에 악수를 둔' 전형적인 사례이다. 멀리 도망 다니면서 시간 끌기만 잘했어도 청나라군을 박살 낼 수도 있었는데, 자존심 때문에 그 결정을 미루다가 결국 청나라 황제 앞에서 항복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의사결정은 빠르게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주변 사람들과 지식을 공유하며 마감 시간을 정함으로써 빠른 의사결정을 도모하자. 그리고 불필요한 정보는 과감하게 다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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