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조선시대에는 총 4번의 큰 사화가 있었다. 사화는 지배층이 두 쪽으로 갈라져 한 쪽이 다른 쪽을 대규모로 죽이는 사건을 의미한다. 이 중 세 번째 사화인 기묘사화는 조광조라는 선비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미쳤던 큰 화를 의미한다.
조광조는 평생 바른 말만 하던 사람이다. 왕에게 때를 가리지 않고 옳고 바른 길을 제시하던 사람이다. 조광조는 38세의 젊은 나이에 대사헌이라는, 지금으로 따지면 감사원장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몇 개월이 되지 않아 처형당하고 말았다.
조광조의 생애를 통해 꼭 바른 말만 하는 것이 회사에서 옳은 것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조광조는 조선 중종 때 관료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중종은 그 악명 높던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사람이었다. 당연히 자기를 왕으로 받들어 준 공신들에게 고위 관직을 나누어주었고, 이들은 조정에서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다. 중종은 자기의 은인인 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말도 하기 힘들었다.
그 중 박원종은 직접 면산군 목에 칼을 겨누고 궁 밖으로 쫓아냈던 최고의 공신이었다. 이 사람은 연산군의 애첩들을 모조리 불러들여 연산군 못지 않은 호색을 누리고 있어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왕만 바뀌었지 권세가들의 횡포는 여전하였다.
그 때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 조광조였다. 29세에 진사 시험에 통과하면서 정계에 진출한 그는 청렴결백하고 강직한 성격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중종은 처음에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였다. 신하들이 추대해 오른 왕 자리는 늘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학식이 풍부하고 강직해서 권세 있는 신하들과 서슴치 않고 싸울 줄 아는 그의 모습에 중종은 신뢰를 아끼지 않았다.
자연히 나이 많은 권신들은 그를 경계하게 되었다. 그래도 중종은 조광조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그는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고 38세에는 대사헌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는 칼을 빼든다. 중종을 왕으로 세운 공로로 광활한 토지를 하사 받았던 권신들의 토지 상당부분을 몰수하기로 한 것이다. 노비들의 수까지도 제한하려 들었다.
권신들이 자기 재산이 줄어드는데 가만히 지켜볼리가 없었다. 매일 같이 조광조를 탄핵하라는 상소가 올라오고, 궁궐 앞에서는 명령을 거두어달라는 석고대죄가 이어졌다.
그러나 조광조는 요지부동이었다. 사실 중종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이건 그가 너무 나갔다 싶었던 것이다. 매일 신하들이 저렇게 징징대니 이쯤에서 그가 적당히 뜻을 굽히고 타협점을 찾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는 타협을 몰랐다.
마침내 권신들의 토지 일부와 노비 일부를 국가에 반환하는 것이 최종 결정되었다. 조광조가 이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왕이 그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었다. 이제 그는 왕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그는 툭하면 권신들은 대놓고 소인이라고 불렀다. 계속해서 적을 만들고만 것이다. 과거제도 개혁, 소격서(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기관) 폐지 등 개혁 정책들을 밀어붙였다. 중종은 그의 어머니가 소격서 제사를 자주 드리니 그것만은 존치시키자고 했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제 그는 왕의 말도 잘 듣지 않게 되었다.
그의 몰락은 빠르게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왕에게 올릴 상소문을 쓰던 그에게 금부도사가 다가와 갑자기 그를 체포하였다.직
"어명이오. 당장 옥으로 들어가시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중종을 만나뵈어야겠다고 소리쳤지만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와 친하게 지내던 신하들은 왕과의 만남을 청하였지만 중종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의 죄도 명확하지 않았다. 왕에게 불손했다는 것인데 이는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지극히 주관적인 죄명일 뿐이었다. 중종은 책임을 회피할 뿐이었다. 다수의 신하들이 그리되기를 원하니 그렇게 했다는 말만 반복하였다. 나는 책임 없다는 식의 꼬리 자르기였다. 결국 그는 유배를 가게 되었고, 유배 한 달 만에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왜 중종은 초기에 그토록 신임했던 그를 버렸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타협할 줄 모르고 바른 말만 계속 하는 그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계속하면 잔소리처럼 들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왕이 되셔서 공부도 안하시고, 모범을 보이지 않으시면 절대 안됩니다" 이 소리를 계속 듣는다면 좋아할 왕은 없을 것이다. 융통성 없이 원리원칙만 강조하는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적이 많았다. 주변 공신들을 소인배라고 공적인 자리에서 비난했고, 퇴출시켜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이들은 조광조를 죽이는데 앞장서게 되었다.
혹시 나도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는 않는가?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의 기분이나 처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밀어 붙이는 스타일인가?
울론 그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도 생각해서 적절한 타협안을 찾는 것이 최고이다. 꽉 막힌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과 협업을 할 수 없다.
조광조는 지식이 출중했고 추진력도 좋았다. 당시 조선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타인들과 타협하는 능력은 부족했다. 이 때문에 그는 많은 적을 만들게 되었고 끝내는 왕의 신임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조금만 더 융통성 있게 행동하자. 그리고 내가 하는 이 행동 때문에 입장이 곤란한 사람은 없는지도 항상 염두해두자.
※ 참고로 벌레가 나뭇잎을 주초위왕(走肖爲王) 모양으로 뜯어 먹은 것을 보고, 중종이 조광조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의심했다는 야사가 있다. 그러나 역사 스페셜에서 10번을 실험해봐도 벌레는 절대로 꿀로 글씨를 썼다고 해서 그렇게 풀을 뜯어먹지 않았다고 한다. 야사는 야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