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생각을 추측하는 경우가 있다. 소개팅에 나간 남녀는 상대방이 보이는 조그마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저건 내가 좋아서 혹은 내가 싫어서 하는 행동일 거야! 이렇게 넘겨짚게 된다. 정작 상대방은 별 뜻 없이 한 행동인데 그렇게 오해를 하는 것이다.
특히 눈치가 빠르다고 자신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자기 직감을 믿으며 직장 상사가 어떤 말을 하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속내를 파악하는 것이다. 가령 회식 자리에서 임원이 하품을 한다면 이제 그만 자리를 끝내고 싶다는 의미로 파악하고 모임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런 눈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큰 도움을 준다. 특히 한국처럼 직설적인 화법을 꺼려하는 사회에서는 눈치가 특히나 중요하다. 그러나 간혹 상대방의 생각을 잘못 읽어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은 별 뜻 없이 한 말이나 행동인데 이걸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이다.
역사상으로도 함부로 상대의 의중을 판단하고 행동했다가 비참한 운명에 쳐해 진 사람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삼국지에 조조의 책사로 나오는 양수라는 사람이다.
'계륵'이라는 한자성어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계륵은 닭갈비라는 뜻으로, 먹기에는 성에 차지 않고 버리자니 아까운 그런 애매모호한 존재를 일컫는다.
지금이야 닭갈비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소울푸드 중 하나이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한중이라는 지역에서 조조는 유비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격은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병력 소모만 늘어났을 뿐, 별다른 소득은 없었던 것이다. 조조는 군대를 철수할지 말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부하장수였던 하후돈이 조조에게 오늘의 암호를 무엇으로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마침 닭갈비를 먹고 있던 조조는 조용한 목소리로 "계륵, 계륵"을 외칠 뿐이었다. 하후돈이 조조의 책사인 양수에게 오늘의 암호는 계륵이라고 말하자, 양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뜻이 아닐세, 승상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 한중 땅은 병력을 소비해 가며 싸우기에는 가치가 낮다는 뜻일세. 닭갈비처럼 먹기에는 부족하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애매한 곳이라는 의미이지"
그러고 나서는 당장 철수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게 바로 조조의 숨은 뜻이라는 것이다. 당장 철수하고 싶지만 체면 때문에 조조가 망설이는 것이라고 하면서 계륵이라는 말 한마디에서 의중을 파악해 냈던 것이었다.
우리는 계륵이라는 한자성어는 알지만,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잘 모른다. 과연 조조는 양수가 병력을 철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이고! 당신은 참 눈치 빠른 훌륭한 사람이구나! 참 대견하다"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결코 아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었다. 양수가 자신의 명령도 없이 제 멋대로 군대를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는 전형적인 명령 불복종에 하극상이었다.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이런 지시를 내린 것에 대해 조조는 분노했던 것이다.
병력을 철수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무기부터 식량, 천막 등 각종 물건을 다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 철수하게 되면 다시 진격하기는 어렵다. 이미 식량을 소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조조는 화가 났던 것이고, 결국 양수는 군의 사기를 동요시킨 죄로 처형당하고 말았다.
양수는 조조의 책사이니 당연히 눈치가 빨랐을 것이다. 사실 양수가 했던 생각은 맞는 것이었다. 조조 역시 그 부분에서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을 넘고 말았다. 예측을 하는 정도로 끝났으면 좋았을 데 거기에서 독단적으로 지시까지 한 게 문제였다. 조조는 평소에도 늘 자기식으로 예측하고 멋대로 지시를 내리는 양수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이 일이 트리거가 되어 양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다음 이유를 들 수 있다.
눈치가 빠르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쉽게 범하기 쉬운 실수이다. 리더의 생각을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 감에 의존한다. 필연적으로 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거래처 사장과의 회식을 앞둔 상황에서 평소 거래처 사장이 바다낚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급 횟집으로 예약을 했다고 하자. 그러나 그 사장은 며칠 전 회를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바람에 회를 못 먹는 상황이다. 거래처에 확인만 해봐도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자기 느낌만으로 결정했다가 낭패를 본 사례이다. 눈치에만 의존하는 것은 항상 위험하다.
제 때 확인을 해서 정보를 얻어내야 하는데 그게 너무나도 어려울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상대방과의 사이가 좋지 않을 때이다. 얼굴 보기도 싫고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조차 싫은데 말을 섞고 싶을 리가 없다.
이러면 제대로 물어보지 못하고 건너 건너 확인하거나, 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쉬워진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는 충분한 상황판단이 어렵다. 감에 의존해서 의사결정 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부 강연 중인 임원이 급하게 해외법인 마케팅 실적 서류를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고 하자. 당장 서류 전해주는 일이 급하기에 왜 그 서류를 달라고 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직접 물어보기 힘들고 어림짐작으로 서류를 갖다 줘야 하기에 잘못된 서류를 전달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시간이 부족한 경우 당장 그 일을 해치우기 바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멋대로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해고 행동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는 방법이 있다.
내가 가진 사전 지식을 기반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소개팅 자리를 생각해 보자. 상대방은 내가 좋은지 계속 나를 보며 웃는다. '내가 예쁜 건 알아가지고. 그래도 보는 눈은 있네' 사실 상대방은 이 사람이 볼에 큼지막한 김 조각을 붙이고 있어서 웃은 것인데 제대로 착각한 것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팀장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1분 뒤에 팀장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내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들었구나. 망했다' 사실 팀장은 어제 야구 결과를 검색하다가 응원하는 팀이 대패한 것 때문에 한숨을 쉰 것이었다. 이 사람은 괜히 졸아서 하루 종일 팀장 눈치만 살살 보고 있다.
대충 짐작하지 말고 상대방의 생각을 정확하게 물어보자. 그래야 의중을 알고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회사 생활에도 십계명이 있다면 세 번째나 네 번째 정도에는 '회사에서 적을 만들지 말자'가 들어갈 것이다. 회사에 불구대천의 원수가 있다면 정말 직장 생활하기 힘들어진다. 그 원수가 같은 팀에 있다면, 그것도 내 상사라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적이 생기게 되면 의사소통이 막히게 된다. 알 박기에 비유한다면 도로 한가운데에 거대한 바위가 버티고 있어서 그 주변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과 같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기는 어렵더라도 적은 만들지 말자.
만약 적이 있다면 그럼에도 의사소통은 활발히 하자. 사적인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업무상 이야기는 주저 없이 하라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만든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관에게 한 부하가 경례하기를 싫어하자 그 상관은 이렇게 말한다.
마찬가지이다. 직장에서의 소통은 상대방 얼굴이 아니라 상대방 직무를 보고 하는 것이다. 사이가 나쁘더라도 업무 상 소통만큼은 주저하지 말고 활발하게 하자. 그게 프로이다.
실수하기 쉬운 업무라면 더더욱 시간 여유가 필요하다. 이때 상대방에게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 충분히 물어보자. 그걸 알아야 정확하게 일할 수 있다.
아무리 바쁜 상황이라도 상대방에게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자. 그 방향을 모르면 몇 번을 수정해야 하고 엄청난 시간이 낭비된다. 급하게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는 최대한 시간을 벌자. 그 사람이 원하는 기한이 아니라 내가 일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업무의 주도권도 내가 가지고 올 수 있게 된다.
역사에는 천재적인 책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제갈량처럼 끝까지 권세를 누리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한나라 개국공신 한신이나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처럼 끝이 좋지 않았던 책사들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자신의 철학이 너무나 강했고, 상대방의 의중을 지나치게 넘겨짚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독단적인 것으로 보였고, 상관들도 자기 지시를 잘 따르지 않고 그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는 책사들을 불편하게 여겼던 것이다.
함부로 남의 생각을 넘겨짚는 것은 위험하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다. 정확하게 상대방 생각을 물어보고 행동하자. 그래도 늦지 않다. 사이가 좋지 않아 물어보기가 꺼려진다고 해도 물어보자. 물어보는 순간에는 기분 나쁘겠지만 그렇게 확인하고 진행해야 그 사람과 더 얼굴 붉힐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확인하고 일을 진행하는 것, 그게 인간관계의 기본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