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탈출하기
나는 상위 1% 똥손이다. 정말 물건 고치는데 있어서는 젬병 중의 젬병인 사람이다.
와이프의 주된 불만사항 중 하나는 남편인 내가 물건을 하나도 고치지 못해 본인이 고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탁기 배수구 물이 빠지지 않을 때, 화장실 전등이 나갔을 때, 심지어 벽에 못질을 할 때도 내가 하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배수구에서는 물이 역류하고 전등은 여전히 안켜지고 못은 휘어지기 일쑤이다.
와이프는 물건 못 고치는 남편 어디 반품 안되냐고, 혹시 회사에서도 물건 다루는 것에 대해 이 정도로 젬병이냐고 타박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사실 회사에서도 나는 물건 다루는데 굉장히 서툴다. 듀얼 모니터 설정하는데도 한참 시간이 걸리고 프린터 복합기 IP 잡아서 연결하는데도 상당히 고생한다.
회사 복지몰에 임직원 아이디로 접속해서 혜택 누리는 것도 어려워서 입사 석 달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웃으면서 넘어갈 수도 있는 손재주. 그런데 개인의 재능으로 치부하기 쉬운 이 손재주가 사실 업무 능력과 상관관계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가 똥손이라는 것을 더 이상 웃어 넘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과연 손재주라는 것이 무엇일까? 단순히 고장난 물건 고치는 능력일까?
그것도 포함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나와 관련된 물건을 다루는 전반적인 능력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기능을 명확하게 숙지하고 있거나,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하자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프로세스를 알고 대처하는 능력이다.
내가 특히 잘 다루지 못하는 것들을 한번 나열해보자. 뭔가 공통분모가 나올 것이다.
1. 윈도우 등 컴퓨터 관련 프로그램들
2. 스마트폰 주요 기능들
3. 요리 (음식 만들기)
4. 자동차 주요 기능 숙지
5. 가전제품 수리, 청소 (가습기, 전등, 세탁기 등)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프로그램에 취약하다는 것을 들 수 있고, 요리, 다전제품 수리와 같이 시작과 끝이 프로세스화 되어있는 일에 약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 번 적어보자. 내가 만일 물품 다루는 일에 서투르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약한지 말이다.
손재주가 부족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업무 처리능력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낯선 일이 닥쳤을 때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우왕좌왕 당황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즉 상황판단, 문제해결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일에 대해 전체 프로세스를 빨리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런 유형들은 문제가 생기면 일단 닥치고 돌격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 전등을 갈아야 할 때
1) 어떤 도구를 갖고 가야 하는지 (드라이버, 나사, 전동드릴 등)
2) 갈아낄 새 전등은 집에 있는지
3) 이 작업할 때 화장실 전기는 내려야 하는지
4) 전등 교체할 때 나사를 갈아야 하는지 그냥 빼면 되는지
5) 전등이 뜨거우니 목장갑을 끼고 해야할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일단 잡아 뺐다가 당겼다가 해보고 안되면 그냥 포기하게 된다.
눈 앞에 닥친 문제에만 집중하기에 전체 프로세스, 유의사항을 꼼꼼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프린터 복합기랑 내 PC를 연결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회사마다 복합기 IP 연결에 대한 메뉴얼을 보유하고 있다. 차근차근 메뉴얼 읽어가면서 진행하면 왠만하면 금방 다 해결하는데 그걸 잘 못한다. 내 식대로 IP 잡아보고 그래도 안되면 IT 담당자에게 전화하고 옆 사람에게 물어보고 판을 키운다.
내가 잘 못한다는걸 알기에 더 안하려고 한다.
싸워서 이길 것 같은 전투를 하고 싶지, 질게 뻔한 전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다 보니 늘 다른 사람 도움에 의존하게 되고, 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갈수록 더 못하게 된다.
요리를 안해봤기에 선뜻 요리를 안하려고 하고 인터넷 연결작업도 안해봤기에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닌데 두려움이 앞서다 보니 쉽게 시작하지 못한다.
내가 잘 못하는 원인은 앞서 말했듯이 전체 프로세스를 잘 못 보기 때문이다. 눈 앞에 닥친 문제만 해결하려고 한다. 조금만 더 차분하게 생각하고 챙길 것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되는데 그걸 잘 못한다.
어릴 때부터 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적고, 그걸 부모님이 대신해 준 경우 문제해결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어렵게 된다. 즉 훈련이 안되어 있기에 대처가 잘 안되는 것이다.
내 친구들을 봐도 교회에서 학생회를 했던 경우, 많은 교회 행사를 기획하면서 문제해결 경험을 키우게 되고 사회에 나가서도 그 경험을 요긴하게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근육도 많이 쓰는 근육이 단련되는 것처럼 문제해결도 많이 해봐야 단련되는 것이다.
손재주라는 측면 하나만 보면 안되고, 갑자기 주어진 업무에 잘 대처하는 방법은?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많은 전문가들은 레고와 같이 순서대로 작업해야 하는 놀이를 권장한다. 일의 순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 레고와 같이 뭘 조립하는데 취미가 없는 사람이 갑자기 레고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레고는 설명서 대로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우리에게 닥치는 대다수의 문제들은 정답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집에서 연습해 보자. 일상에서의 많은 일들이 다 훈련 소재가 된다.
가족끼리 외식을 하러 나갈 때
1) 물티슈를 챙긴다.
2) 둘째 아이를 위한 유모차를 갖고 나갈지, 갖고 나간다면 가벼운 걸로, 무거운 걸로 할지 정한다.
3) 외식 후 쇼핑을 할 것에 대비해 유모차 아래에 쇼핑백을 챙긴다.
4) 어느 식당을 갈지 정하고, 만약에 사람이 많다면 대신 갈 식당을 생각해 본다.
5) 아이들이 근처 게임센터에서 게임할 것에 대비해서 현금 1만원을 미리 챙긴다.
혹시 해외로 가족여행을 간다면 공항에 장기예약으로 주차할지, 캐리어 속 짐을 뭘 넣고, 전체 여행계획 수립, 호텔 예약, 렌트카 대여 등 전체 프로세스를 한 번 직접 세워보자.
빨래를 할 때 아래처럼 프로세스를 정해서 해결하는 것도 문제해결 연습에 해당한다.
1) 세탁기에 수건이나 속옷도 겉옷과 같이 넣을지
2) 한번에 세제는 얼마나 많이 넣을지
3) 헹굼이나 탈수는 몇 번으로 할지
4) 집 안에서 건조할지, 베란다에서 할지, 건조기로 할지
5) 옷 개는 것은 몰아서 할지, 그때마다 할지
마무리하며
이건 다른 지름길이 없다. 많이 연습하고 훈련해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잘 빠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다음에 할 때는 조심하면 된다.
만약에 위의 가족 외식에서 내가 유모차를 잘 못 접어서 고생했다면 유모차 접는 법을 숙지하여 다음에는 더 수월하게 외식하러 나가면 된다.
많이 연습해보자. 일상에서 별 생각없이 하던 일들을 좀 더 생각해보고 프로세스를 만들어보자. 그게 손재주가 되는 것이고 직장에서 문제해결능력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