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핵주먹으로 유명한 미국의 전설적인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했던 명언이다. 이 말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의욕을 가지고 계획을 세운다. 새해부터 금연에 성공하기, 이번 여름 전까지 10kg 다이어트하기, 일주일에 책 한 권씩 읽기.. 그러나 이 목표 달성에 성공하는 경우는 결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좌절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의욕만 지나치게 앞섰을 뿐 목표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지 부족을 들 수 있다. 20킬로그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일 꾸준하게 운동을 해야 하고, 회식 자리도 줄여야 한다. 세부적으로 따라붙는 조건들이 많은 것이다. 이걸 간과한 채 목표를 세우니 성공하기가 힘든 것은 당연하다.
역사적으로도 의욕만 앞서 일을 추진했다가 큰 실패를 경험했던 사건이 있었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 이루어졌던 '십자군 원정'이 바로 그것이다.
십자군 원정은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유럽 각국들이 군사들을 모아, 당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왕국이었던 셀주크 투르크 제국과의 싸움을 위해 총 7~8차에 걸쳐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던 사건이었다. 십자군 원정이 벌어지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071년 동로마제국은 셀주크 투르크 제국에 크게 패한 뒤, 지금의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 지역을 몽땅 다 빼앗기고 말았다. 빼앗긴 땅 중에서는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3년 반의 기간 동안 공생애를 펼친 주요 지역이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장소도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이었기에 기독교의 성지였던 것이다. 성지를 이교도들의 손에 넘겨줄 수 없다는 의식이 싹트게 된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황의 힘은 막강했다. 그가 가톨릭 세계에서 제명한다는 '파문' 선언을 내리면 그 사람은 살아있어도 산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공직, 직업에서 추방되었고 사회의 그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동방 정교회에서는 점차 로마 가톨릭에 반기를 들고 있었고, 유럽 각지의 왕들도 점차 교황의 지나친 간섭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카노사의 굴욕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놓고 교황에게 대드는 왕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쯤에서 교황은 십자군 원정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권한을 다시 강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7세기에 마호메트에 의해 창시된 이슬람교는 나날이 세력을 팽창해 가기 시작했다.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지역까지, 서쪽으로는 스페인 지역까지 밀고 들어갔던 것이다. 비록 프랑크 왕국에 의해 피레네 산맥 위쪽까지 더 밀고 들어올지는 못했지만, 동방으로의 무역을 틀어쥐고 막대한 이익을 챙기던 이슬람 세력은 유럽에 큰 골칫거리였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이슬람 세력이 성지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말을 들은 유럽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은 왕이나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모두 성지 탈환을 위해 나서겠다고 한데 뭉치게 되었다. 신앙심으로 하나가 된 것이었다.
첫 번째 원정은 대성공이었다. 1096년부터 3년간 동로마제국을 지나 시리아 땅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예루살렘 정복에 성공한 것이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셀주크 투르크 제국은 우물에 독을 풀고 주변의 평야 지대에는 불을 질러서 십자군들이 울과 식량을 얻지 못하게 했다. 십자군들은 갈증과 배고픔에 늘 시달렸다. 무게가 수 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중세 시대 갑옷은 이동을 어렵게 했다.
그럼에도 이들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은 사명감이었다. 성지를 이교도들의 손에 넘겨줄 수 없다는 믿음은 그들이 온갖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악전고투 끝에 앞으로 나아갔다.
십자군은 소속 국가도 달랐고 민족, 언어도 달랐다. 그렇기에 기사들끼리 늘 갈등이 있었다. 특히 지도자 격이었던 레몽과 보두앵 두 사람은 늘 다투었다. 동로마 제국의 지원도 뜨뜻미지근하기만 했다. 동로마 제국은 성지 탈환을 희망하고는 있었지만 그 지역이 다시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예 그 지역에 새로운 기독교 국가를 세우려는 십자군과는 의견이 맞지 않았고, 그 결과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마침내 도착하였다.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아무리 공격을 가해도 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레몽은 이때 기지를 발휘한다. 구약 시대 때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 이스라엘군은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번씩 6일간 돌았다. 이것을 반복한 것이었다. 대부대가 하루에 한 번씩 예루살렘 성을 돌도록 했다. 황당할 수도 있지만 이 행동은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초심을 일깨워주었다. 다시 군사들의 사기가 오른 것이다. 이 기세를 몰아 마침내 십자군은 예루살렘 정복에 성공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왕국을 수립했다. 초대 왕은 보두앵이었다. 그렇게 십자군들의 꿈은 단 한 번의 원정만에 성공을 거두었다. 성지 탈환에 성공했는데 그러면 왜 십자군 원정이 이후에도 8차까지 쭉 진행되었던 걸까? 그것은 40여 년 뒤에 예루살렘 왕국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당했기 때문이다.
동로마 제국은 도와주지도 않았고, 다른 유럽 국가들은 멀어도 너무나 멀리 있었다. 주변은 이슬람 국가들 뿐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예루살렘 왕국이 오랫동안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1144년경 불과 45년 만에 예루살렘 왕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다시 성지를 탈환해야 한다는 불길이 전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제는 귀족들, 기사들 뿐 아니라 왕들까지도 직접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떠났다.
그러나 이후의 원정부터는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기 시작했다. 성지를 되찾아야 한다는 초기의 뜨거운 의욕이 점차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제는 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있었다. 더 이상 예루살렘 탈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루살렘 근처도 못 가보고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아래와 같은 이상한 일들도 벌어지고는 했다.
난데없이 한 무리의 소년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겨우 10세 ~13세 정도의 소년들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나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철없는 아이들이 장난치는 것이라고 웃어넘겼다. 그러나 이들은 진지했다. 목숨 바쳐 성지를 탈환히겠다는 의지가 결연했던 것이다. 결국 교황청은 이들의 출전을 허락하고 말았다. 여기에는 이런 의도도 있었다. '아이들이 숭고하게 싸우다가 다 전사하면 어른들도 이걸 보고 사기가 올라가겠지'
군중심리란 무서운 법이다. 소년들이 각 국의 마을들을 돌며 참전을 독려하자 십자군을 자청하는 소년병들은 나날이 늘어갔다. 마침내는 수 만 명의 소년들이 모이게 되었다. 이들은 행렬을 지어 다녔으며 이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항해하여 근동 지방으로 갈 예정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돈에 눈이 먼 나쁜 어른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배의 선주들이었다. 성지 예루살렘 근처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소년들을 속이고는 배에 태워 그대로 노예 상인들에게 돈을 받고 넘겨주었다. 소년들은 그저 신앙적인 열정에 불타올라 원정을 떠났던 것인데 이를 돈벌이에 악용한 것이다.
간신히 살아서 도망친 소년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왜 십자군에 합류했니?" 결의에 찬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이들의 대답은 의외였다.
군중심리에 사로잡혀 순간의 감정에 이끌렸던 것이다.
어이없는 일은 또 있었다. 십자군 부대가 이슬람 세력이 아닌 같은 편을 공격하고 약탈했던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대규모의 부대가 원정을 떠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뱃삯도 지불해야 했고 식사비용도 어마어마했다.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그 비용을 지불하였다. 그러나 원정이 거듭되고 실패 소식만 들려오자 사람들은 점차 지갑을 닫게 되었다.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거듭된 기부 요구에 반감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십자군은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당장 지중해를 항해하려면 뱃삯을 지불해야 했는데 그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때 베네치아 상인들이 기막힌 제안을 했다.
같은 기독교 형제국을 공격해 달라니.. 비록 동로마제국은 동방 정교회라 로마 가톨릭과는 달랐지만 그 뿌리는 같은 기독교였다. 그럼에도 돈에 눈이 먼 베네치아 상인들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당시 지중해 무역 패권을 두고 베네치아와 동로마 제국은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베네치아 입장에서는 동로마 제국의 힘을 꺾을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판이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십자군들이 이 제안을 덥석 수락해 버린 것이었다. 돈이 없어 배를 탈 수도 없는 판에 이 제안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기독교 성지를 구하겠다는 초기의 신념과 열정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십자군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여 그곳을 공격했다. 설마 십자군이 자기들을 공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동로마제국은 아무런 전쟁 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십자군들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후 마을 것 그곳을 마구 약탈했다. 그리고 전쟁물자를 보충했다.
이 십자군들은 과연 성공적으로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했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이미 약탈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초기의 그 신앙적인 신념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면서 상당수의 병력을 잃고 말았기에 이미 전투력이 급감한 상태였다. 결국 그들은 이슬람 세력에 크게 패했고 뿔뿔이 다 흩어지고 말았다.
그 뒤로도 십자군 원정은 몇 차례 더 이어졌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교황의 권위는 땅바닥까지 떨어지게 되었고, 성지 예루살렘은 700여 년 뒤인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까지 회복되지 못한 채 남아있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십자군 원정이 결국 왜 실패로 끝나게 되었는지 분석하고, 의욕만 높은 상태에서 벌이는 일들은 왜 실패 가능성이 큰지 회사에서의 사례를 기초로 설명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