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만 앞서면 벌어지는 일들 (십자군 원정 2편)

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by 보이저

앞선 글에서 십자군 원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십자군 원정은 초기에는 이교도들에게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의욕이 넘쳐났다. 이 순수한 신념이 충만했을 때는 온갖 악조건들을 다 이겨내고 예루살렘 성지 탈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그 신념이 퇴색되기 시작했다. 왕들은 자기 권위를 위해 출정했고, 귀족들도 자기 경력을 채우기 위해 발만 살짝 담그는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외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온갖 사기꾼들까지 합세하면서 십자군은 아싸리판이 되어 가기 시작했다. 소년 십자군 인신매매사건이나, 십자군이 같은 편이었던 동로마 제국의 수도를 공격하고 약탈했던 일은 그 단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십자군 운동의 정신이 점차 퇴색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에 의욕을 갖고 추진했던 일이 변질되고 잘못된 길로 가는 경우가 참 많기 때문이다. 이 점과 연관 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십자군 운동 정신이 퇴색하게 된 이유


십자군 운동은 원래 성지 예루살렘 탈환이라는 종교적 대의와 열정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그 성격이 크게 변질되었다.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경제적 이해관계의 개입


처음의 종교적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영토 확장, 전리품 획득이라는 세속적인 욕망으로 변질되었다. 명분은 성지 탈환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탐욕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특히 베네치아, 제노바와 같은 이탈리아의 상업 도시 국가들은 십자군 수송을 담당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되었다. 이들은 더 큰 이익을 가져가고자 같은 기독교 국가였던 경쟁국가인 동로마 제국을 공격하라고 십자군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처럼 돈에 눈이 멀게 되자 경제적 이익에 따라 이들은 찢어지게 되었다.




2. 정치적 욕심


십자군 운동은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유럽 각국에 참전을 호소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쇠퇴하는 교황의 권위를 신장하고 동서 교회를 통합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교황청은 면죄부 판매를 통해 전쟁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신앙적 가치관을 완전히 포기했던 것이다.


봉건 제후와 기사들은 십자군 원정을 통해 새로운 영토와 부를 얻어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참여했다. 이들 중 일부는 기사도 정신을 저버리고 약탈에만 몰두하기도 하였다.




3. 지휘 체계의 비효율성


십자군은 여러 국가와 봉건 제후들이 모인 연합군이었기에 일관된 지휘 체계가 부족했다. 수시로 벌어지는 내부 갈등으로 인해 효율성이 떨어지고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곤 했다. 이로 인해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나 약탈과 같은 비도덕적인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말았다. 이는 민심이 십자군 운동에서 멀어지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처음에는 포부에 가득 차 진행되었으나, 뱃사공이 너무 많다 보니 배는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다.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사람들, 권력에 눈이 먼 지배층들은 십자군의 의욕과 열망을 꺾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의욕만 갖고 밀어붙이다 실패한 사건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는 비단 과거 십자군 원정에만 적용되는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욕만 갖고 일을 밀어붙이다가 그르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사건이 있을까? 그 대표적인 사고는 바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이다.


20세기 최악의 사고 중 하나를 꼽는다면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들 수 있다. 이 사고로 인해 체르노빌 원전 주변 지역은 지금도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국력이 기울고 있던 소련은 이 사고로 인해 회복 불가능한 결정타를 맞고 5년 뒤 붕괴되고 말았다.


소련 붕괴 후 공개된 극비 문서에서는 사고 당시 체르노빌 원전에서 비밀리에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발전소 직원들은 비상 전원 공급이 끊겼을 때 터빈의 잔여 회전 에너지를 이용하여 냉각 펌프를 가동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실험을 위해 안전 시스템의 작동을 의도적으로 해제시켰고, 원자로의 출력을 지나치게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이때 안전 규정에 따라 원자로 내 최소한의 제어봉 개수보다 훨씬 적게 제어봉을 넣어 원자로를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이렇게 사고는 터지고 만 것이다.


누가 봐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실험을 왜 밀어붙였던 것일까? 당시 소련은 만성적인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적은 제어봉 만으로도 원자력 발전소를 작동시킬 수 있다면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이게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비용 절감에만 꽂혔던 것이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받을지도 모르는 인민 영웅 칭호에도 욕심이 났을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의욕만 앞세우고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큰 피해를 보게 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


직장에서 의욕만 앞세우면 생겨나는 문제들


직장에서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게 되면 많은 부작용이 생겨나게 된다. 의욕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역효과를 낳는 것이다.



1. 성급함으로 인한 실수 증가

열정 때문에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태도로 상세한 계획이나 철저한 준비 없이 일을 진행하는 경우,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히기 쉽고,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빠른 결과를 내고 싶어 세부 절차를 간과하거나 검토를 소홀히 하여 잦은 실수나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2. 번아웃(Burnout) 발생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떠맡게 되거나, 휴식 없이 매일 야근에 주말까지 일하는 바람에 심신의 피로가 누적되어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번아웃으로 이어지기 쉽다. 개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일에만 쏟아부어 개인 생활이 침해받고, 워라밸이 망가지게 된다. 이는 직장 생활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3. 팀워크 및 협업 문제

자신의 아이디어를 독단적으로 너무 강하게 밀어붙여, 팀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거나 존중하지 않게 된다. 이로 인해 협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한 주변 동료들에게 자신의 높은 의욕만큼의 성과나 속도를 기대하여, 불필요한 압박을 주거나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방식이 비효율적으로 보이거나 느리다고 판단하여 성급하게 개입하려 들면서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4. 자원 및 우선순위 관리 실패

충분한 분석 없이 과도하거나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벌여 시간, 인력, 예산 등 한정된 자원을 분산시키고 낭비하게 된다. 당장 눈앞의 흥미로운 일이나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느라 정작 중요한 업무의 우선순위가 밀려나게 된다.



바람직한 해결방법


의욕만 앞세우지 않고 효과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욕심을 버리고 일을 잘게 쪼개서 하나씩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1. 목표를 구체화하고 쪼개기


크고 모호한 목표 대신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살을 뺄 거야" 대신 "2개월 안에 6kg를 뺄 거야"와 같이 명확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3년 안에 독자 기술로 달 착륙선을 만든다 이런 계획이 있다면 3개월 안에 유인 우주 탐사 기술을 개발하고, 독자 기술로 6개월 안에 우주 정거장 도킹이 가능한 우주선을 개발하고 1년 간 우주비행사 10명을 선발하여 집중 양성하고 이렇게 목표를 구체화하여 쪼개는 것이 필요하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면 안 된다.


미국도 소련이 1957년에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하자, 급하게 달 탐사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너무 무리하게 진행하는 바람에 안전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촉박한 일정에 맞춰 훈련은 강행되었다. 당시 아폴로 1호의 승무원들은 훈련 도중 우주선 내부에서 합선으로 인해 불이 났음에도 문이 열리지 않아 승무원들이 모두 사망하는 비극을 겪기도 하였다. 달 탐사라는 거창한 목표만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아폴로 1호 사고 이후부터는 달 탐사 계획은 속도전으로 추진되지 않고, 작은 목표로 쪼개어 안전부터 작은 시설 하나하나까지 다 챙기고 검증하며 단계 별로 진행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그 결과 1969년에 아폴로 11호가 성공적으로 달에 착륙할 수 있었다.

아폴로 1호 승무원들과 불에 탄 시신




2. 현실적인 목표 세우기


예전 중공업에 다닐 때, 해양플랜트 건조 붐이 일었다. 논리인즉슨, 일반 상선이나 가스선으로는 중국 조선소의 저가 공세를 이겨내기 힘드니, 해양 플랜트처럼 고수익 특수선을 많이 수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논리 자체는 맞았다. 일반 선박으로는 더 이상 중국을 이겨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친환경 고효율 배는 일본, 저비용 배는 중국 이렇게 되었기에 한국은 중간에 끼인 상태였다.


해양 플랜트는 석유가 매장된 곳을 드릴로 뚫어 그곳에 파이프를 연결하고 원유를 끌어올려 그것을 배에서 정제까지 해서 다른 배에 옮겨 담는 FPSO라는 배가 당시 선풍적인 인기였다. 한 대에 3조 원이 넘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다들 의욕에 부풀어 있었다. 당장 이런 배를 1년에 3척만 수주해도 10조 원 연 매출이 보장된다는 장밋빛 청사진이 이어졌다.


문제는 기술력이었다. 1조 원 중 드릴 가격만 2,000억 원이었고, 그 외 시추장비 가격도 수천억 원이었는데 이 기술이 우리에게는 전혀 없었다. 서구 기업들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석유 탐사를 진행했기에 기술력이 넘사벽이었던 것이다. 이걸 간과하고 그저 의욕에만 차서 추진했으니 온갖 사고에 실패가 줄을 잇게 되었다. 당연히 수익은 고사하고 적자만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경영진들은 비싼 수업료 운운하며 자기들 책임 벗어나기에만 급급한 상태였다.


목표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장밋빛 미래만을 제시하는 것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판단능력을 잃게 만든다. 거창한 미래보다 당장 눈앞의 가까운 미래부터 제시하자. 3년 간 10억 모으기 이런 허황된 목표가 아니라 당장 1달에 100만 원씩 저축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는 것이 효과적인 것이다.

FPSO




3. 불필요한 인간관계 정리하기


혹시 온갖 술자리마다 다 참석하며 사람들 경조사라면 빠지지 않고 다 쫓아다니는가? 다 실속 없는 짓이다. 인간관계를 줄이고 정말 필요한 사람과의 관계만 남기자. 어떤 일을 크게 벌이게 되면 온갖 사람들이 감언이설로 나를 유혹한다. 당장 조그만 식당 하나만 개업해도 주류 도매상부터 식자재 업자, 키오스크 판매 영업사원 등등 온갖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뺀질나게 가게를 드나든다. 내가 좋아서 오는 것이겠는가? 아니다. 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다.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게 되면 혼란이 일어나게 된다. 6만 명의 관중으로 꽉 찬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생각해 보자. 거기서 인터넷이 잘 터지던가? 아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전파를 사용하기에 방해를 받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꾸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충고하고 간섭하는 사람들을 멀리하자.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의지를 폄하하거나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4. 역할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파벌 없애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온갖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내 방식대로 조직을 이끌어 가려고 하면 혼란이 생기게 된다. 군대 안에서 대대장은 진격하라고 하고, 30년 차 원사는 일단 대기하라고 서로 다른 명령을 내리고 있으면 그 부대는 우왕좌왕하게 된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 이 명령을 가장 앞에서 따르는 사람, 회계 담당, 기록 담당 등 본인의 역할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과 관련 없는 사람들이 자꾸 끼어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과거 축구 국가대표를 선발하려고 하면 특정 학교 출신 선수들을 선발하라고 외압을 행사하는 축구계 인사들이 있었다. 태권도조차도 출신 대학교에 따른 파벌이 있고, 쇼트트랙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파벌이 생겨서는 곤란하다.


파벌이라는 게 없애려 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건전한 경쟁은 인정하되,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축구계 파벌에 따른 국가대표 선발을 막은 것이 바로 히딩크 감독이었다. 나는 한국 내 파벌 같은 것은 모른다는 말로 그런 청탁을 싹 무시했고, 실력에 따라 뽑았다. 그 결과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파벌과 상관없는 제삼자를 데려와서 공정한 역할을 맡기는 것도 해답이 될 수 있다.




마무리하며


십자군 전쟁을 보면 '첫 끗발이 개끗발이다' 이 말이 떠오른다. 신앙적인 순수한 열의에 가득 찼던 1차 원정에서 그들은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했다. 제대로 훈련받은 군인들은 소수였고, 대다수는 신앙적 열의 하나로 전쟁에 참전했던 농민, 상인들이었다. 수 천 km를 이동하여 이슬람 정예병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열의 하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나치게 열의에만 가득 차다 보니 이들은 내부적으로 끊임없는 다툼과 분란에 시달렸다. 그 결과 적을 앞에 두고서도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잦았다. 열의는 금방 잦아들기 마련이다. 예루살렘이 다시 이슬람에 의해 함락된 후 몇 차례 원정이 실패로 끝나자 이제는 자기들끼리 서로 공격하고 소년 십자군들을 인신매매단에 팔아넘기고 막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만 것이다.


장밋빛 미래만을 제시하며 열정을 강조하는 것은 이래서 위험하다. 역사적으로는 이런 열정 때문에 일을 그르친 경우가 참 많다. 이 글에서 소개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나 아폴로 1호 사고, 엄청난 적자를 기록한 해양플랜트 사례 등등 실제 사례가 차고 넘친다.


내가 이 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 열정을 내려놓을 줄 알자. 그리고 주변 동료들을 설득해서 같이 진행하자. 혼자서만 열의가 넘치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참 피곤해진다. 그리고 그 조직은 분란이 생겨나고 그 일은 실패하게 된다. 열정만 갖고는 일을 성공시킬 수 없다. 좀 더 현실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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