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페이스 메이커가 주는 힘

직장생활 잘하는 방법

by 보이저

나는 뛰는 것을 참 좋아한다. 일주일에 다섯 번을 뛰는데 평일에는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출근하기 전에 역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서 40분 간 8km를 뛴다. 10km 정도 중장거리 달리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혼자 근자감에 빠져있다.


그런 나도 42.195km 풀코스 마라톤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인간이 어떻게 저 거리를 뛸 수 있을지 선뜻 달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만큼 풀코스 마라톤은 인간의 한계에 다다르는 쉽지 않은 종목이다. 선수들의 경우, 풀코스 한 번 뛰면 체중이 무려 4kg가 빠질 정도라고 한다.


이런 극한의 코스를 뛰는 것은 전문 선수들에게조차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은 '페이스 메이커'라고 불리는, 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다. 페이스 메이커는 힘들고도 고독한 마라톤 레이스에서 동반자 역할을 하는 고마운 존재이다.

마라톤


마라톤 트렌드의 변화


사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마라톤에서 페이스 메이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굳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마라톤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지구력이 강한 선수가 잘 뛰는 것이 이전의 트렌드였다면, 이제는 폭발적인 스퍼트 능력을 갖춘 선수가 좋은 기록을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에티오피아의 '게브르 셀라시에'였다. 그는 원래 5km, 10km 중장거리 달리기를 평정했던 선수였다. 그랬던 그가 마라톤 선수로 바꾸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실패를 예상했다. 사실 10km를 뛰던 선수는 42.195km를 끝까지 버텨낼 지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게브르 셀라시에는 마라톤에서도 폭발적인 스퍼트를 보여주었다. 막판에 체력저하가 왔지만, 초반에 폭풍 스퍼트 덕에 벌어놓은 거리로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전 세계 마라톤을 평정하였다. 그가 마라톤에 뛰어든 이후 세계 신기록은 엄청나게 단축되었다. 이제 2시간 대 벽도 곧 깨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게브르 셀라시에


페이스 메이커의 중요성


기록이 빠른 속도로 단축되어 가는 마라톤에서 이제 페이스 메이커의 존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내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면서 계속 코칭을 하며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주변에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정 구간마다 어떤 속도로 뛰는 것이 좋은지 미리 알고 앞에서 자기 선수를 이끌어준다.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하지 않고 막판에는 지치지 않도록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기도 한다. 가끔은 도발(?)을 하기도 한다. 일부러 초반에 미친 듯이 속도를 내는 것이다. 상대 선수들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 페이스를 쫓아가다가 초반에 지쳐 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페이스 메이커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페이스 메이커는 보통 40km 정도가 되면 자기 역할을 끝내고 레이스에서 물러난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에 체력이 버텨내기 힘들고, 우승을 바라볼 만큼의 기록을 가진 선수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페이스 메이커로 적합한 사람


마라톤에서 페이스 메이커는 선수들의 페이스를 관리함으로써 선수 기록을 단축시키는데 크게 기여한다. 자기 혼자 외롭게 기록 신경 써가면서 뛰는 것보다 페이스 메이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직장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주변에 페이스 메이커가 있다면 내가 그 페이스에 맞춰 일할 수 있고 수시로 조언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페이스 메이커로는 누가 적합할까?


팀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팀장은 평가권 자이다. 평가권자가 업무를 코치하고 지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마치 야구 심판이 이건 왜 스트라이크고 이건 왜 볼인지 투수에게 일일이 설명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리, 과장급처럼 4년 이상 실무를 하면서 업무 노하우가 쌓이고 자기 일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페이스 메이커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업무 일정은 어떻게 세우고 마감은 언제까지 할지 이런 부분부터 이메일 쓰는 방법, 보고서 작성법, 행사 준비 요령 등 업무 관련 노하우를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선임의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물어보자. 자기를 따르고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도와주고 싶은 법이다. 그렇게 나만의 페이스 메이커를 확보하자.




직장에서 페이스 메이커의 역할


그렇다면 직장에서 페이스 메이커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맡은 직원이 업무에 집중하여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1. 명확한 목표 제시 및 일정 관리


내 업무의 명확한 목표(Goal)와 그 목표달성을 위한 마감일, 단계 별 납기일 등 일정을 관리해야 하는데 페이스 메이커의 도움을 받아 처리할 수 있다.


자칫 의욕이 앞서 무리하게 타이트한 일정을 편성하거나, 세월아 네월아 늘어지게 일정을 잡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2. 과부하 방지 및 에너지 효율화


신입사원도 그렇고 경력사원에게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고 벌이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오히려 실수하게 되고 수습하지 못해 애를 먹는 경우가 생겨나게 된다.


페이스 메이커는 이들이 초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오버 페이스를 막아준다. 그리고 긴 호흡으로 최종 목표까지 꾸준히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업무량을 조정하고, 불필요한 작업이나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줄여 에너지를 중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3. 자신감 및 의욕 상승을 도와줌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서 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모든 부분에 있어서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때 페이스 메이커는 정신적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혼자 달릴 때보다 훨씬 든든한 것이다. 굳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아보고 챙기지 않아도 된다. 잘 모르는 것은 물어보면 되기 때문이다.


페이스 메이커는 특히 난도 높은 과제에 직면한 팀원들에게 롤모델이 된다.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 교수를 생각하면 된다. 해리를 비롯하여 호그와트 학생들이 볼드모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공격을 받을 때 맨 앞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학생들은 그를 중심으로 뭉쳐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게 된다.


이처럼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멘토 역할을 하는 페이스 메이커는 구성원들에게 안정감과 자신감을 심어주게 된다.




4. 구성원들의 성과 달성을 위한 헌신


페이스 메이커는 자신의 완주 기록보다는 팀원이나 다른 선수의 최고 기록 달성을 위해 일정 지점까지 헌신적으로 속도를 리드하고 빠지게 된다.


개인 성과를 챙기는 것과 동시에 다른 구성원들의 성공을 위해 전략적인 헌신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까다로운 초기 작업을 같이 처리,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해 피드백 제공, 자기 시간 중 일정 시간을 할애하여 구성원들의 성장을 위한 노하우 공유를 하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페이스 메이커 역할은 결코 쉽지 않다. 2012년에 출시되었던 김명민 배우 주연의 '페이스 메이커'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연의 성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사람들은 마라톤 우승자는 기억해도, 그 우승자의 페이스 메이커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페이스 메이커는 이와는 다르다. 나도 살고 남도 사는 일이다.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회사일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하는 업무이다. 손목시계 안에는 수많은 태엽들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이 중 한 톱니의 날이 부러지면 다른 톱니들도 돌아가지 않게 되고 시계는 멈춰 서게 된다.


톱니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챙기는 것, 이게 나도 살고 그 직원도 사는 길이다. 직장에서 페이스 메이커는 이런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람은 가르칠 때 가장 많이 배우게 된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가르치면서 내가 알고 있는 노하우를 다시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페이스 메이커, 당신도 한 번 해보자!



※ 오늘 열린 대구 국제마라톤 남자부 경기에서 페이스 메이커로 참가한 탄자니아 선수가 당당히 3위를 차지했습니다. 페이스 메이커는 단순한 도우미가 아닙니다. 다른 선수들을 돕다보면 내가 그 영광의 주인공이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말귀를 심하게 못 알아들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