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통해 알아보는 인생살이 법칙
기차의 기관차를 운행하는 방식으로 '장폐단' 운행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코레일 관계자나 철덕이 아닌 이상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전문용어이다. 우리나라의 철도는 대부분 구한말이나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기차 관련 용어들은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이 듣기에 낯선 단어가 너무나 많다.
기관차를 뒤로 붙인 다음에 객차나 화차를 끌고 가는 방식을 장폐단이라고 한다. 말로만 들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래 사진으로 보신다면 아마 이해하시기 편할 것이다.
디젤기관차는 운전하는 좌석이 앞쪽에 있다. 당연히 일반적으로는 운전석이 앞쪽에 있는 형태로 기차가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기차는 도로가 아니라 레일 위를 달린다는 사실이다.
자동차는 유턴만 하면 아무 문제 없이 반대방향으로 달릴 수 있다. 도로 위를 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차는 다르다. 기관차가 한쪽 방향으로 간 경우, 다시 반대 방향으로 갈 수는 없다. 기관차는 한쪽을 계속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로에는 전차대가 배치되어 있다. 전차대 위에 기관차가 올라가게 되면 불과 3분 만에 기관차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차대는 모든 역마다 갖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 같은 주요 노선에는 전차대가 잘 갖추어져 있지만, 하루에 기차가 몇 편 다니지 않는 선로가 달랑 한 개 밖에 없는 단선에는 전차대가 갖추어져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면 종점까지 간 기차가 다시 되돌아갈 경우 장폐단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철도 운행 수칙에 따르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장폐단으로 운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있기에 그런 것일까?
바로 기관사의 시야 문제이다. 기다란 엔진부가 떡하니 시야를 막다 보니 제대로 앞을 바라볼 수가 없다. 아래 사진은 장폐단 운전 시의 시야이다. 앞에 차량이나 사람이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제대로 인지하고 멈추기 어렵다.
운전대는 앞에 있는데 뒤에 달린 창문을 보며 운전해야 하다 보니 기관사는 45도 방향으로 몸을 비틀어서 운전해야 한다. 운전할 때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있지만, 시선은 뒤를 보며 계속 운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자세도 불편하고 피로도 빨리 느낄 수밖에 없다. 장폐단 운전은 안전상의 문제가 크고, 기관사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기에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다.
전차대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장폐단으로 달리는 경우, 반드시 기관사 두 명이 탑승하여 한 명은 좌측, 다른 한 명은 우측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이때 속도는 원칙적으로 25km/h 이하로 운행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 상황 관찰도 더 철저하게 해야만 한다.
내가 캠핑카를 매달고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당연히 차 뒤에 캠핑카를 연결해서 끌고 갈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정이 생겨서 캠핑카를 차 앞 쪽에 매달고 후진으로 고속도로를 간다면 어떻겠는가? 물론 이론상으로는 이렇게도 운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계속 고개를 뒤로 젖혀서 혹시라도 다른 차랑 부딪치지는 않을지 불안해하면서 최대한 천천히 이동하게 될 것이다. 장폐단 운행은 딱 이런 상황과도 같다.
이 블로그는 철도 관련 글을 올리는 곳도 아닌데, 갑자기 뜬금없이 왜 장폐단 운행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까? 내가 잘하지 못하는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디젤기관차는 원칙적으로 운전석 방향대로 운행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걸 반대로 가게 하면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기는 것이다. 시야도 극히 제한되고 기관사도 운행에 더 집중해야 하기에 피로도는 더 높아지게 된다.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있다.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도 있고, 기획력이 좋은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은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창의적인 생각을 기가 막히게 잘 떠올리기도 한다. 친화력이 좋아 처음 만난 사람과도 쉽게 잘 친해지는 사람도 있다. 각자마다 주어진 달란트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달란트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자기가 잘하는 일은 좋은 성과로 이어지게 된다. 좋은 평가를 받게 되고 자신감이 쑥쑥 상승하게 된다. 이 일을 계속하면서 경험이 쌓이게 되고 그렇게 이 분야의 원탑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PPT, 망고보드 등 디자인 도구를 활용한 안내 게시문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드는 직원이 있다고 하자. 이 직원이 회계팀에서 일하고 있다면 과연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아닐 가능성이 크다.
물론 뭘 시켜도 다 잘하는 직원이 있기는 하다. 오타니 쇼헤이처럼 투수도 타자도 완벽하게 다 잘하는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케이스는 흔히 않다. 일반적으로 투수는 공을 던지는데 특화되어 있고, 타자는 공을 치는데 특화되어 있는 것이다. 프로선수가 되기 이전까지 둘 다 잘했더라도, 그중에서도 더 잘하는 하나에만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장폐단으로 운행하면 시야가 좁아지다 보니 열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하게 된다. 사고 위험성도 증가한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 익숙하지 않은 일을 맡게 되면 일의 능률은 오르지 않고 성과도 낮아지게 된다. 평생 용접만 한 사람에게 벽지를 바르라고 하는 것, 설계를 쭉 한 사람에게 재무회계 업무를 맡기는 것은 사람의 강점을 도외시한 결과이다. 그러고 나서 일을 못한다고 비난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욕먹을 사람은 그렇게 일을 시킨 리더인데 말이다.
내가 잘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세상이 언젠가는 나를 알아주겠지! 이렇게 생각해 버리면 결국 내가 관 속에 들어가 관뚜껑이 덮일 때까지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필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 별 관심이 없기에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모른다면 당연히 내 강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다. 살아오면서 내가 특출 나게 잘했던 일을 떠올려보자. 진짜 잘한다고 칭찬받았던 일이 무엇이 있었는가?
나는 교육 자료 만드는 일을 잘했다. 5시간짜리 임원 강의 교안도 하루만 주어지면 뚝딱 다 만들고는 했다. 내가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다들 놀랬을 때 비로소 내가 이 쪽에 강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이런 업무가 자주 나에게 주어졌고 이 업무를 하면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원래 보스턴 오케스트라의 수습생이었다. 마침 지휘자가 아파서 공연에 못 나오는 바람에 자기가 자청해서 대타로 지휘를 했고 그 공연에서 우레와 같은 찬사를 받게 되었다.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사람은 뜻하지 않은 기회에 내 재능을 발견하고는 한다. 그 재능을 꼭 찾아보자.
사람들은 나에 대해 모른다. 다들 자기 살길 찾기 바쁘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누가 알아주기만을 바라면 안 된다. 내가 직접 어필해야 한다.
나는 교육 때 사용하는 교안 만드는 일을 잘하는데 매번 보고서만 쓰라고 하고 강의실 예약만 신경 쓰라고 하면 이건 장폐단 운행과 같다. 어떻게든 그 일을 하기는 하겠지만 제대로 하기는 어렵다. 일에 대한 만족도 느끼기 어렵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자. 나는 교안을 만들고 싶으니 이번 리더십 세미나 교안은 내가 만들겠다고 말하자. 당장 그 일이 주어지지 않을 수 있더라도, 그렇게 어필하면 리더는 마음에 담아두고 업무 분장 때 신경 쓰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면 이 조직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내가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도록 하자.
보고서를 예쁘게 잘 만드는 일, 엑셀 수치를 정확하게 관리하는 일.. 이 업무들이 회사 밖에 나가서도 경쟁력이 있을까? 아니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절대로 아니다. 이처럼 회사 밖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운 지식이나 기술이 많다.
내가 잘하는 일이 회사 밖에 나가서도 계속 써먹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일인지 생각해 보자. 만일 회사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마치 코드 뽑힌 티브이처럼 아무 활용가치가 없어진다면 다른 강점을 고민해 보자. 내가 가진 강점이 꼴랑 한 개일리는 없다. 분명 다른 달란트가 있을 것이다.
한국 여자당구에는 전설적인 선수가 한 명 있다. 캄보디아 출신의 '스롱 피아비' 선수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녀는, 스무 살에 자기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은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고 한국으로 이주했다. 한국어가 통하지 않아 집에만 틀어박혀 심심해하던 아내가 불쌍했던 남편은 어느 날 동네 당구장에 그녀를 데려갔다.
큐대라고는 평생 잡아본 일도 없었던 그녀는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십 년 이상 구력을 가진 고수들보다 더 잘 쳤던 것이다. 그렇게 당구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 그녀는 프로 선수가 되었고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게 되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재능이 있다.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처럼 그 재능을 일찍이 발견하는 경우도 있고, 스롱 피아비 선수처럼 뒤늦게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자기 재능을 발견했다면 그 길로 가자. 그 길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장폐단으로 기관차를 운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떻게든 기차야 움직이겠지만 속도도 느리고 내 몸도 힘들고, 여러 사람들이 안전 신경 쓰느라 붙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