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가 바뀌면 느낌도 달라진다.
저녁나절 작은 녀석이 구몬수학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녀석이 쓰고 있는 연필에 눈이 갔다. 샤프펜슬처럼 생겼는데, 연필심이 직사각형으로 한쪽은 납작하다.
'민용아! 아빠 연필 좀 빌려 줘봐라....'
거실 바닥에 엎드려 복사용지에 그려보니, 또 다른 느낌의 것이 된다. 내친김에 몇 장을 그려봤다.
녀석에게 아빠 하다만 사다 달라고 연필 값을 쥐어 주었다....
한옥을 그리는 일은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잘 그리지는 못해도 느낌은 살릴 수 있었으면 하고 연습을 해 보지만, 왠지 경직되거나 비례가 다르거나 혹은 경쾌함이나 처마의 아름다운 선을 살리지 못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처마 밑부분과 같이 많은 부재가 만나거나 하는 부분은 대충 얼버무리기 일수다.
우리는 잘 알고 있거나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는 단순화하거나 그룹화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유로 미묘한 차이를 생략한 채 하나의 유형으로 인지한다. 첫 장면, 새로운 풍광, 강렬한 이미지 등과 같이 그동안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들에 대해 더욱더 시선을 빼앗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손으로 그리는 것과 같이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하면, 실상 자신이 그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한자의 경우 읽을 수는 있어도 쓸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한 것처럼, 눈으로 보는 것과 그것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일은 별개의 문제이지 싶다.
그래서 '손으로 보는 세상'이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처마 밑부분처럼 그 구조를 실제로 알지 못하면 그려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정작 속속들이 들여다보려 하면 할수록 모르겠는 것이 그렇다. 건축물의 구조를 아는 것처럼 인생을 혹은 인간을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관찰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관찰의 시간이 길었다는 의미 일터다. 그래서 조금 더 알아가는 일일 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