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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SMIN Dec 31. 2019

오늘의 의미

생명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축복으로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해...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그것을 고쳐갈 수 없을 때.


매번 뒤돌아 보고 후회하는 나의 모습이 이제는 지겹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스스로에 대한 자성과 그것을 통한 변화는 충분히 바람직한 일이나, 지금 나는 자성과 회한만 있을 뿐.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신세 한탄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키우며 하루를 소비할 뿐이다. 물론 매일매일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한다는 것은 도를 닦는 일과 같을 터이지만, 그런 거창한 행동이나 실천은 고사하고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의 나 보다는 더 나아졌을 터다.


때로는 원치 않아도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것에 대하여 감당하기 벅차거나 숨 가쁠 수도 있을 일이다. 그것이 많은 생명들에게는 축복일진대, 짐이거나 부담으로 여겨진다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것이고 말이다.


이른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오는 이야기다.

“매일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하루를 오늘도 담담하게 감당할 수 있어  감사하다...”


나도 기적처럼 매일매일 새롭게 주어 졌던 그 하루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맞이할 수 있었으면 싶다.



"오늘, 오늘은 어떻게 보내지..."


눈을 뜨면 습관처럼 흘러나오는 독백이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자책일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사회와 작금의 상황 때문이라는 원망과 함께 '늘 왜 나만 운이 없는 것이지...'라 여기며 내뱉듯 쏟아내는 회피성 독백과 다름 아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싸잡아 한숨 쉬는 책임전가성 표현이라 해야 그 말의 의미와 제대로 맞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고질적 문제다. 늘 벌어진 상황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해 왔던 것은 알량한 '자존심'과 교만 때문이었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인식해야 함에도 거기에 자존심이라는 이름의 폐쇄적 감정을 더함으로써 본질을 흐리게 해 왔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나는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는 우월감이나 교만함이 늘 맘 한쪽에 존재해왔던 것이다. 이것은 ‘의도’나 신념이라기보다는 내 생활의 ‘태도’나 습관이 아니었나 싶다. 잘 못되면, 그것이 자존심 상하고 그래서 그 일은 내 잘못이 아니라 남의 잘못인 것으로 몰아가는 유치하고 어리석은 태도. 다른 한편으로는 깊숙이 숨겨 마치 아닌 것처럼 위장해 왔던 우월감과 교만을 충족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상실감의 발로. 나는 잘할 수 있는데, 혹은 잘하고 있는데.... 상황이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인식은 그렇게 오늘을 있는 그대로 맞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원망과 회한으로 보내는 하루 속에는 내일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지 싶다.

'내일'을 기쁜 맘으로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은 '오늘'을 후회 없이 사는 것...이라는 것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후회 없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용기와 함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오늘의 결과와 대면할 수 있는 용기, 내일을 기대할 줄 아는 용기, 있는 그대로를 감사한 맘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 이러한 용기가 없다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소모적 ‘자존심'이다. 진정한 의미의 자존심이라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을 터다. 좀 더 엄밀히 말한다면, 자존심이라기보다 '허영심'이라 해야 할 듯싶다. 그 허영심은 오늘이라는 시간이 만들어준 결과를 과소평가하고 만족스럽지 않게 여겨 내일 역시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러니 이러한 것을 일소할 것, 바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겐 용기가 별로 없다.

용기를 '양'으로 측정할 것은 아니지만, 내겐 틀림없이 쓸모 있는 용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늘 우유부단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특히 단호한 결단을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용기인데, 결단을 기필코 성사시키기까지 노력해 본적이 거의 없지 싶다. 대부분 환경과 주변여건에 타협하고, 기회에 편승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해야 하겠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겠다.


바로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롯이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일은 좀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아주 가벼운 희망 정도만 있어도 좋겠다.  


모두들 어렵던 2019년 마지막 날....

유독 나만 어렵다 징징대지 않았나 싶어 얼굴이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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