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이야기를 시작하며
한 동안 사진(필름)을 통해 세상을 보고자 했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으로 비교적 손쉽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넘쳐나게 되면서 장면 속 이야기들이 너무도 가볍게 소비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찍고 확인 후, 맘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삭제, 그리고 다시 찍기. 물론 가볍게 찍든 고민하여 찍든, 모든 사진들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겁니다. 그렇게 사진의 수는 늘어났지만 손쉬운 만큼 사진 속 이야기들은 대부분 휘발성 강한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있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으로 한 장면을 그릴 때.
물론 순간을 포착하지는 못합니다. 장면이 완성될 때까지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야 하고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지요. 좀 더 마음에 드는 장면이라면 그만큼 시간은 더 소요되고요. 하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바로 지금 '현재'는 아니지만 '기억'에 의존하게 되고, 그 기억은 때로 흐려지거나 다른 것과 더해져 색다른 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손으로 장면을 그려나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또 그 장면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분의 디테일도 그러려니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시간을 들여 손을 움직이다 보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손을 통해 보게 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건축을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그러니까 대학 3학년 여름부터 시작하여 꾸준하게 스케치를 해 왔지요. 물론 그동안은 '건축'이라는 나의 업무 범위 내에서 활용해 왔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일상 속 장면도 건축을 통해 만들어진 공간 속 일 들이라 생각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갑작스레 시간이 많이 남기 시작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남는 시간은 내게 커다란 시험이었습니다. 원하지 않게 잡스러운 생각이 이어졌기 때문이지요. 그 생각들은 대부분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장래에 대한 불안함... 뭐 그런 것들이었지요.
그래서, 한 장면 한 장면 일상의 풍경들이 더해지게 되었고, 이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작업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골목, 궁궐, 도시, 일상처럼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들을 대상으로 작업해 왔습니다.
작업은 대부분 iPAD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절 좋아졌지요.
시간이 없을 때는 우선 사진 촬영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리기도 합니다. 또는 종이 위에 그렸던 것을 스캔하거나 해서 옮겨 추가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지금 저는 저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이 싸움은 오래된 싸움입니다.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떠오르는 생각들과 그것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는 과정을 좀 유난스럽게 겪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싸움의 한 방식이 지금 이 작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좀 더 애착을 가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들을 모으고 보완해 보려 합니다.
has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