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세계』_ 02. 소크라테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늦어서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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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철학 강의를 보내주는 철학 선생님에 대한 소피의 호기심은 숲을 지나는 용기와 호수를 건너는 대담함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들어선 외딴 오두막에서 철학 선생님의 흔적, 또 자신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힐데'의 또 다른 단서를 발견하죠. 하지만 소피를 놀라게 하는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전율 속에서 문득 옷장에 걸린 오래된 청동 거울을 응시했을 때 소피는 거울 너머의 자신이 혼자 눈을 깜빡이는 것을 목격합니다!
힐데는 대체 누구일까요? 엄마는 철학 선생님이 머무는 게 분명한 그 오두막을 어떻게 이미 알고 있으며, 왜 소령의 오두막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궁금하죠?! 궁금하죠?! 궁금할 거야...)
1. 고대 그리스. 그리고 아테네
최초의 철학자들이 주로 자연의 변화, 운명, 질병처럼 불가항력적인, 그래서 신화적 상상력에 의존하여 납득해 온 것들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개척했다면 소피가 새롭게 만나는 아테네의 세 철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사람 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한 사람들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면서 철학적 관심사의 주된 흐름이 바뀐 겁니다. 자연 철학의 명맥이 끊긴 건 아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인기 있는 주류가 아니었죠.
그럼 새로운 주류 철학이 꽃 피던 아테네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당연히 당대 그리스의 새로운 중심지였습니다. 그 이전까진 밀레토스, 에페소스 등이 있던 소아시아 지역이 그리스의 중심이었어요. (그러니 그 지역 철학자들과 자연철학이 주류를 형성했겠죠?) 그러나 그곳은 모두 동쪽에서 발흥한 대제국 페르시아에게 점령 당하고 말죠. 그런데 당대 최강대국 페르시아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아요. 바다 건너 폴리스들(아테네, 스파르타 등)에게도 굴종을 강요합니다.
그에 대한 저항과 승리를 다룬 영화가 바로 영화 <300> 시리즈예요. 아시죠? 전 세계 남자들의 벌크업 유전자를 자극한(깨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바로 그 영화. 스빠르타~!!! <300>이 스파르타의 장렬한 저항과 패배를 다룬 이야기라면 속편인 <300 : 제국의 부활>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연합이 마침내 페르시아를 물리쳐 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물론 재미를 위해 풍부한 역사 왜곡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그리스에 민주제(democracy)를 불러오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결국 이후 그리스의 패권을 쥐게 된 결정적 원인은 바로 아테네의 해상 장악력이었는데요, 말하자면 테미스토클레스의 선견지명으로 장기간 길러온 해군력이 아테네를 일으켰던 것이죠. 그런데 당시 배의 동력은 다름 아닌 '노 젓기'였고, 그런 만큼 노 젓는 인력의 전문성이 매우 중요했다고 해요.
말하자면 노 젓는 해병이 매우 중요한 인력이 된 것인데, 페르시아 군을 물리치고 이집트로 원정을 갈 정도로 군대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더 많은 노잡이가 필요했고, 결국 이 인력들은 하나의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평민이나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주요 구성원이었던 테테스라 불리우는 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아테네의 귀족은 이들을 제압할 만큼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의 귀족은 페르시아나 이집트, 중국의 권력자들에 비해 힘이 없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크고 강한 권력을 이루려면 많은 사람이 모여 풍부한 자원을 생산하고 축적할 수 있는 대륙과 큰 강이 필요한데, 지중해 구석의 산악 지대에서 그런 규모의 물적 집약이 이루어지기 어려웠죠. 그러니 고대 그리스의 귀족들은 고만고만한 도시 국가들의 경제 규모 안에서 부를 축적한, 대륙의 권력자들에 비하면 소박한 동네부자 정도였던 거예요.
그러니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봉기한 민중의 지도자(에피알테스라는 사람이었는데, 찾아보면 이 사람의 업적이 페리클레스 못지 않습니다.)를 암살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민중들의 민주제에 대한 열망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걸출한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등장으로 아테네에는 비로소 민주제를 실현시킬 여러 제도들이 자리잡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압도적인 강대국의 침략을 힘을 합쳐 물리치고 공동체의 질서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리스 연합의 대표 도시 국가(폴리스polis). 그곳이 바로 당대의 아테네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테네의 열린 광장, 아고라(agora)에서 여러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가 활동했습니다.
(잘나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열악한 지리적 조건과 소규모 공동체라는 취약 조건이 그리스를 민주제의 종주국으로 만들었다는 아이러니는 참 재밌는데요, 이후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가 세를 키우고 정복 활동을 벌이면서 그리스 지역도 제국 시스템에 포섭되어 갑니다. 사실 고대의 기술력이나 행정력으로는 어느 정도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민주제를 시행하기 힘들었어요. 도편 추방제 같은 것도 옹기종기 모일 정도의 규모니까 가능했던 것이지, 시민이 천 명, 만 명만 넘어도 공정한 투표의 운영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죠.)
2. 어리석은 현실과 이상적 지혜
절대권력이 생기기 힘든 폴리스적 환경이 의회와 법원을 기초로 한 원시 민주제를 낳고, 재산이 없는 성인 남자(20세기 전까지는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어요.)들도 민회를 비롯한 여러 정치 제도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선 새로운 관심사가 떠오릅니다. 그것은 바로 '뛰어난 언변'이었죠. 설득력 있는 언변은 여러 회의에서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역량이었으니까요.
이런 배경을 토대로 인기를 모으게 된 것이 소피스트sophist들입니다. 여러 폴리스를 떠돌아다니며 다양한 지식을 섭렵한 박학다식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죠. 이들은 돈을 받고 자신의 지혜를 팔았고 사람들은 이들이 고안한 수사법(말을 꾸미는 방법, 즉 문장이나 연설을 풍부하게 해주는 여러 기술들을 말해요.)을 배우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했습니다. 말하자면, 소피스트는 그 시절의 스피치 일타강사들이었어요.
그런데 이들은 자연철학자들처럼 영원불멸한 절대적인 진리를 믿지 않았어요. 있다고 해도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이었습니다. 폴리스마다 제각기 다른 문화와 관습을 접하다 보니, 진리란 상황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었죠. 그들의 의견은 때때로 지극히 상대주의적이었고, 말재간을 심하게 부릴 때는 궤변으로 치닫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소피스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진리를 알 수 없다면서도 그때그때 상황 봐서 편의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는 식의 지혜로 장사를 하는 기만적 존재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소중한 아테네 시민들이 그런 작자들에게 휘둘려 그렇잖아도 대외적 위협(스파르타와의 경쟁)으로 혼란스러운 사회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으니 더 싫었을 거예요.
더군다나 기회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다분한 소피스트의 무책임한 상대주의는 공동의 행복과 안녕을 합의해 가야 하는 민주제를 왜곡하고 훼손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혈혈단신 광장에 나서서 똑똑한 척 하는 사람들에게 질문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길 바라면서요. 그 유명한 소선생의 문답법(산파법이라고도 합니다.)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물론 소크라테스도 인간의 무지와 무력함에 대해 늘 절감하고 있었어요. 자신이 유일하게 아는 것은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진리는 있다고 생각했어요. 세월은 빠르게 흐르고 모든 게 바뀌어 갈지라도 변치 않는 게 있다고 믿었죠. 그러면서 그는 자기 안의 신의 목소리, 양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누구나 양심에 귀 기울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올바른 인식을 이룰 수 있으며, 그렇게 얻은 확신을 통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했죠.
그러나 돈 한 푼 받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 양심(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이성적 태도를 설파하던 소크라테스는, 외려 젊은이를 망치고 국가가 정한 신을 믿지 않는다는 혐의로 고소되어 재판에서 지고 독배를 마시게 됩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형을 면할 방법이 있었고 다른 폴리스로 망명할 수도 있었지만, 도망 친다면 저들의 판결을 인정한 셈이 된다며 자신의 죽음으로 그 판결의 그릇됨을 증명하죠.
그리고 이를 지켜본 명문가의 훈남 청년 플라톤은 충격을 받습니다. 그 어떤 소피스트보다 현명하다고 믿었던 이상적 인물이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현실에서 용인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진리와 이상은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좌절에 빠진 것이죠. 왜 소크라테스 같은 이상적 인물이 현실에선 처벌 받는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는 현실 속에서 실현될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변하는 현실과 변치 않는 진리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플라톤식의 해답이 바로 "이데아론"입니다.
감각세계로 인식되는 현상(현실)의 본래적 현실(이데아)이 따로 있다. 말하자면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바로 그 이데아의 반영일 뿐이다. 그러나 '몸'이라는 현실적 조건에 갇혀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마치 동굴의 입구를 등진 채 묶인 것처럼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밖에 보지 못하는 처지라, 그것이 동굴밖의 현실이 만든 그림자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철학자는 몸의 감각에 얽매이지 않는 이성의 힘으로 자신을 속박하는 사슬을 풀고 마침내 동굴밖의 현실을 목도한 사람이다. 그러나 철학자는 그 환희를 혼자서 만끽해서는 안 된다. 철학자는 동굴에 묶여 본래적 현실(이데아)의 그림자(현실)밖에 못 보는 우매한 대중에게, 그러니까 그야말로 "환상 속의 그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본래적 현실의 존재를 깨우쳐 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아고라에서 행했던 철학적 실천의 플라톤식 계승이기도 했습니다. 비눗방울 같은 찰나의 현실에 집착하느니, 보편 타당의 기준을 제공해 주는 이성을 길잡이 삼아 이데아의 영원한 진리를 동경하고 그 기쁨을 공유하겠다는 것이었죠. 그가 세운 아카데미아에서 철학과 함께 체육, 수학이 강의되었던 것도 감각에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몸과 날카로운 이성적 사고의 단련을 병행하기 위함이었던 게 아닐까요?
3. 인문 철학의 자연 과학적 확장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열전>에 따르면 다리가 가늘고 눈은 작으며 화려한 옷을 걸치고 반지를 끼웠으며 머리는 짧게 깎은 외모를 하고 다녔대요. 멋 부리기 좋아하는 명문대 댄디남을 상상하면 비슷하겠네요. 알렉산더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듯이, 그는 마케도니아 사람이었습니다. 플라톤과 아카데미아의 명성을 듣고 아테네까지 유학을 왔던 것이겠죠.
그런데 이 남자는 스승인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너무 시적인 비유 같다고 생각했어요.(실제로 플라톤이 남긴 저서가 매우 문학적이었던 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문헌들은 매우 건조한 논문이나 보고서 같은 면모가 강했다고 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강의 초록이었대요.)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난 플라톤이 전형적인 문과 남자였다면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과 남자로서의 면모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데아'에 대한 생각부터 스승과 달랐습니다. '이데아'가 현실에 선행하는 본래적 세계라기보다, 그저 사람이 감각을 통해 현실을 인지한 후에 만들어낸 일종의 관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그가 이데아론을 비판하면서 내세운 개념이 "질료"와 "형상"이었습니다. 그는 이 개념들을 통해 소피스트 때부터 개척된 아테네의 인문 철학과 그동안 축적된 자연철학의 성과를 훌륭하게 조합해 냅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요.
사물을 이루는 재료인 질료에는 제각기 특정한 형상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모든 질료는 가능성이 실현되기 전과 후의 상태로 나뉘는데, 자연에서 생기는 변화란 다름 아닌 이 질료의 상태 변화인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변화는 질료가 형상을 얻기 전인 '가능성의 상태'에서 형상을 얻게 되는 '현실성의 상태'로 변형되어 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그 형상을 인지하고 만물을 분류하는데 그 분류 능력이 바로 이성의 핵심이다.
와우, 역시 아형(아는 형님 아니고아리스토텔레스 형).
중요한 것은 그가 가능성에서 현실성으로 변형되는 원인마저 분석했다는 것입니다. 네 개의 원인을 들어 자기 나름의 빈틈없는 인과율을 완성했죠.
"비는 왜 올까?"라는 명제를 예로 한 설명이 책에 나와 있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현대의 과학 지식이 있었다면 아마 대기와 수증기라는 질료(비의 재료) 원인, 차가워진 대기는 수증기를 냉각시킨다는 작용 원인, 질량을 가진 물은 땅으로 떨어진다는 형상 원인(비의 속성) 그리고 식물과 동물이 자라게 하기 위해서라는 목적 원인으로 그 현상을 설명했을 겁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목적 원인인데요,
물방울 하나에도 일종의 삶의 과제와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을 만큼 아리스토텔레스는 삼라만상에 합목적성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고전 논리학이나 문학, 질료와 형상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자연철학, 혹은 고대철학의 체계화로도 유명하지만(사실 안 건드린 분야가 없습니다. 책에서 확인하셨죠??) 바로 이 합목적성과 관련하여 확장해 나간 사상 때문에 현대 윤리학에서까지 꾸준히 소환됩니다.
모든 존재에는 그에 합당한 목적이 있다- 는 그의 생각은 곧 당위로서의 정의, 도덕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니까요. 정의와 도덕을 고민하고 합의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적어도 서양에서는 그에게서 시작되는 셈입니다.
4. 억울한 소피스트 (지난 주 소개해 드린 subtext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관이나 정치적 견해는 이후 서구 사회는 물론이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세계에 걸쳐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곳곳에서 아형의 시대를 뛰어넘는 현명함과 깊이에 감탄하고 고개를 숙이죠. 지난주에 소개해 드린 subtext,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그 점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는 책입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물론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 우리가 그렇게 존경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죠.
아형은 합목적성에 근거하여 사람을 천성에 따라 구분하고(아형은 그 점에서 소선생이나 플선생과도 매우 결이 달랐어요. 소크라테스는 성별이나 계급에 차별을 두지 않았고, 다소 귀족적이었던 플라톤조차 여성을 매우 존중했습니다.) 그에 따른 사회적 역할을 부여해 엘리트 우월주의와 계급주의의 기틀이 되는 사상을 마련하였으며, 국가 운영에 있어서도 그리스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인간 이하의 야만인을 정복하는 것은 타당하다는 식의 논리를 펴 제국주의의 기틀이 되는 사상을 마련한데다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가 한 말이죠.)라며 인간중심주의적인 사상을 펼쳤던 소피스트에 비해 등가교환을 정의 실현의 원칙으로 보고 그 중간자의 기능을 위해 돈을 강조함으로써 모든 인간론을 화폐론으로 치환시킨 장본인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저자의 비판은 비단 아형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소선생과 플선생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는 현대가 안고 있는 천민적 자본주의, 반민주주의, 능력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쟁주의 등의 원흉이 바로 아테네의 슈퍼스타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시대를 초월한 현인들이 '원흉'이라니, 다소 충격적이죠? 하지만 이 책은 실제로 그들이 주장했던 철학적 이론은 그들이 속해 있던 계급의 편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조목조목 역사적 근거를 들어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 이전에는 서양한 철학사의 위대한 뿌리라는 전제를 빼고 이렇게 건조하게 소-플-아 세 사람을 다루는 책을 보지 못했어요.
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흔히 궤변론자로 욕을 먹는 소피스트나, 우민정愚民政으로 저평가되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아테네의 시민정이 오히려 현대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바와 가까운 면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그리고는 그럼에도 우리가 정반대(소크라테스 최고, 소피스트 바보)로만 그 시대를 학습하고 있는 것은 이름을 남긴 세 철학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꾸준히 기득권을 챙겨 온 이들의 어이없는 자가당착 때문이라고 (물론 이런 문장은 없지만 거의 이런 느낌으로) 쏘아붙입니다.
(사실 소피스트들은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 조건의 중요성을 파고든 사람들이기도 했어요. 그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견해를 발전시켜 나갔고요. 사람들은 소피스트들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이 자연적이고 무엇이 인위적인 것인지를 놓고 토론을 벌였고 그러한 토론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훌륭한 결론을 내진 못했을지 몰라도 시민정은 그런 비판 의식이 각축을 벌이는 장이었습니다.)
물론 이 책은 본격 철학서라기보다 일종의 에세이라서, 학술서적처럼 신중한 문장을 기대하신 본은 좀 당황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관점의 신선함과 주장의 신랄함은 꽤 통쾌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10여 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오히려 요즘 독자들의 취향에 더 맞을 것 같아요.
5. 다음 주 예고 및 subtext 소개
앞서 설명한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자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명저를 한국 대중에게 소개한 사람으로도 유명한 분인데요, 대중에게 소개했다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저같은 무지랭이도 접할 수 있도록 그 책을 번역했다는 뜻입니다. 서구는 물론이고 서구에 지배 받은 비서구에 만연해 있는 서구중심주의적 가치관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들 중 하나인 이 책이 역사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닌 법학자의 번역으로 소개됐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이 책은 어쨌거나 9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쳐 무턱대고 서구의 것을 흠모하고 동양의 전통을 무시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사회적 문화가 자리 잡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이렇듯 어떤 사회의 사고방식, 사상적 유행을 결정하는 데 있어 외부 사회의 지식이 번역되어 들어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는 하는데요, 우리가 오늘 살펴본 아테네 철학자의 이야기도 사실은 한때 지중해를 정복했던 이슬람 학자들의 번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이랍니다. 이슬람의 화려했던 한때가 무너지면서, 그들이 정복했던 지역을 다시 정복한 유럽의 기독교 문화가 이슬람이 흡수하고 발전시켜 보관하고 있던 풍부한 지식을 다시 흡수하면서 고대 그리스 문화가 비로소 유럽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그뿐인가요? 이후 유럽의 근대를 흥하게 한 결정적 계기인 수학 혁명도 이슬람의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다음 시간엔 서구 세계에서 그러한 지식의 융합이 대규모로 일어났던 첫 번째 시기인 헬레니즘과 그 이후 동서양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한 철학들에 대해 이야기할 텐데요, 그리서 추천해 드리는 subtext도 그와 관련된 책으로 골라봤습니다. 박상익씨가 쓴 『번역은 반역인가』라는 책입니다. 『소피의 세계』는 1부의 마지막인 '두 문화권'까지 함께 읽어요.
발행일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
다음엔 정말 안 늦을게요. 화요일에 꼭 만나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