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세계』_ 03. '헬레니즘'에서 '두 문화권'까지
0. 소피가 받은 질문들
기억하시나요? 이 책이 출발부터 강조했던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놀라워 할 줄 아는 것'이었죠. 심지어 이 책은 한창 책을 홍보하던 시절에 '철학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단 하나의 능력은 놀라워 할 줄 아는 것'이라는 문구를 광고 카피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기획자는 어쩌면 그게 이 두꺼운 책을 꿰뚫는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여긴 것 아닐까요? (물론 단순히 이 책 별로 안 어렵다는 메시지를 간절히 전하고 싶었던 걸 수도...)
'놀라워 할 줄 아는 태도'가 대관절 무엇이길래? 음, 그것은 아마도 그것이 '무엇이든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당연하지 않기에 우리는 궁금해 하죠. 그리고 질문 합니다. 그 질문을 등불 삼아 간신히 무지의 암흑을 헤쳐나가고요. 질문이 밝혀주는 일말의 해답을 내딛으며 나름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이 세상과 나의 경이로움을 깨닫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쯤에서 소피가 그 동안 받았던 질문들을 한 번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소피가 첫날 받았던 질문은,
'너는 누구니?' 그리고 '세계는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였습니다.
이 질문들은 철학 이전의 신화적 상상력과 최초의 자연 철학자들의 구상을 이해하는 관문이었죠.
그 다음 받은 질문은
'운명을 믿니?', '질병은 신이 내린 벌일까?', 역사의 진행을 지배하는 힘은 무엇일까?'였죠.
이 세 질문은 자연철학과 더불어 존재했던 고대인들의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신탁), 그리고 그것에 대한 실증적 해석(역사)과 조화로운 대처(의술)에 대한 의지에 공감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갈수록 수수께끼는 늘어가는데요,
'본성적인 수치감이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올바른 인식은 안에서 비롯한다.' 무엇이 옳은지 아는 사람은 옳은 일을 한다.'와 같은 문장들은 소피스트와 아테네의 세 철학자(소선생, 플선생, 아형)의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을 이해하는 단서가 됩니다.
질문에서 도망치지 않고 열심히 맞선 덕분일까요? 소피는 미처 준비도 하지 못하고 맞닥뜨린 종교 시험의 네 가지 문제에 자신있게 답을 써냅니다. 그 질문이 다음처럼 난해했는데도 말이지요.
1. 인간이 알 수 있는 것과 다만 믿을 수 있을 뿐인 것의 목록을 작성하시오.
2. 한 인간의 인생관을 규정하는 몇 가지 요인들을 적으시오.
3. 양심이란 무슨 뜻입니까? 모든 인간이 동일한 양심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4. '가치 우위'란 무슨 뜻입니까?
소피는 뭐라고 답했을까요? 궁금하신 분은 이제라도 함께 책을 펼쳐 보아요~.
1. 지중해 너머의 세상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고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한 아테네의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어요. 백 년은 커녕 50년도 채 가지 못했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도 사실 아테네가 저물어 가던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현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세계는 끝없는 경쟁을 반복하며 공멸을 향해 갔던 것이죠. 그리고 마침내 그 경쟁을 평정하는 레전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등장합니다.
알렉산더의 대제국 건설로 인해 에게해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문화권과 이집트, 그리고 오리엔트 문화권의 여러 나라는 허물어진 국경과 함께 문화의 경계마저 허물어집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스(헬라Hellas)를 중심으로 동서양의 문명이 융합되는 국제적 문화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죠. 이것이 기원전 4세기경부터 300여 년간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 지역에서 융성했던 그리스적 문화, 즉 헬레니즘입니다.
민족과 국가 사이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면서 정체성이나 가치관에 혼란을 겪은 사람들은 인생과 세계에 대해 의구심과 불안을 느끼게 되었을 겁니다. 그 결과 '종교적 의구심', '문화적 해체', '비관주의'가 헬레니즘 대중문화(?)의 한 트렌드가 되죠. 삶의 여건이 급속히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포스트(탈脫) 현상과 비슷한 것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있었던 것 같아요.
범람하는 변화의 물결 속, 철학은 어떤 길들을 열어 갔을까요?
2. 윤리와 행복
책에 따르면 헬레니즘 철학은 딱히 독창성을 띠진 않았다고 하네요. 아테네의 슈퍼스타들을 뒤엎는 천재들이 등장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새로 유입된 여러 문화들을 바탕으로 그 슈퍼스타들의 철학적 구상을 더 깊이 파고들었고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 확장은 혼란스러운 시대의 철학답게 '인간이 어떻게 하면 가장 유덕하게 살다 죽을 수 있는지'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유덕有德한 삶의 기준', 즉 '윤리'가 대제국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과제로 자리잡게 된 것이죠.
그와 더불어 행복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습니다. 어디에 행복이 있고 어떻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것이 이 시기 철학자들이 답을 얻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수요가 대단했거든요. 정의와 행복에 대한 관심. 정말 요즘과 비슷하지 않나요? 인터넷 댓글 창의 신랄하고 다양한 도덕적 비판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좀 지나긴 했지만 욜로나 소확행을 전시하는 SNS의 사진들도 떠오르는군요. 정의와 행복은 혼란기의 불안이 필연적으로 소환하는 철학 과제인 것도 같습니다.
모든 것이 휘딱휘딱 변해버리는 시대여서 그랬을까요. 진정한 행복은 그렇게 변하다가 언젠가 사라져 버리고 말 외적 현실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중얼거리는(왠지 외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이들이 주목받습니다. 바로 견유학파인데요, '현실은 유한하고 결국 사라진다'는 것이 그들에겐 아마 가장 중요한 전제였던 것 같아요. 그들은 물질이나 소유에 대해 초연했을 뿐만 아니라(굴속에서 살고 막 그래요.) 육체나 건강에 대해서까지 굉장히 초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고통이나 죽음도 일시적이라는 것이죠.
심지어 이들은 타인의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부질없다는 것입니다. 견유학파의 이런 태도가 '눈치 안 보고 욕구대로 살아가는 개'같다 해서 견유犬儒(개같은 철학자, 그리스어로는 "Kynikos : 개 같은, 개를 닮은")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영어의 씨니컬Cynical이 바로 이 키니코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니, 대강 이들의 삶의 태도를 알만하죠? 현명한 게 기특하니 소원 하나 들어주겠다며 찾아온 알렉산더에게 됐으니 해나 가리지 말라고 했던 디오게네스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후에 로마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스토아학파도 큰 주목을 받습니다. 제논(극한limit 배울 때 나오는 제논하고는 다른 사람입니다.)이라는 사람이 창시자인데요, 디오게네스보다 한 세대 정도 뒤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원래 지중해에서 무역하던 사람인데, 항해 도중 배가 난파되어 아테네에 기착하게 되고 거기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책을 접한 뒤 철학에 빠져들어 아테네에 즐비한 다양한 학파들의 가르침을 받고 다닙니다. 그러다 당시 알렉산더조차 반했던(날 이렇게 대한 건 견유학파가 처음이야) 견유학파의 일원이 되기까지 하죠.
견유학파의 자족과 초연한 삶에 큰 감화를 받은 제논은 자신이 습득한 여러 아테네 철학의 이론을 더해 마침내 독자적인 철학을 창안합니다. 그리고 공회당의 '커다란 기둥이 늘어선 회랑(회랑은 그림처럼 기둥으로 경계지어진 좀 개방적인 복도 같은 곳 상상하시면 돼요.)' 즉 스토아stoa에서 강의하죠. (그래서 스토아학파) 스토아학파는 복잡하게 변하는 온갖 현상의 저변에 유일하고 총체적인 질서(logos. 헤라클레이토스 때 나왔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공동체적 질서와 정치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정치 친화적 태도는 견유학파와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지점이에요. 관습이나 정치적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개처럼 살겠다는 견유학파와 달리 스토아학파는 세계시민(헬레니즘 시대를 사는 이들의 정체성)으로서 공동체적 질서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스토아학파의 몇몇은 적극적인 정치가이기도 했어요. '인문주의'라는 세계관을 세우고 로마의 그 카이사르(씨저)와도 친분이 두터웠던 키케로는 제논보다도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입니다. (디오게네스가 견유학파의 창시자인 안티스테네스보다 유명한 것처럼요.)
스토아학파가 중시했던 유일한 질서에 대한 감각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경건함으로 연결되어 마음을 절제하고 이성에 따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의 태도로 귀결됩니다. (약간 유교 느낌?) 중요한 것은 이들의 '유일한 질서(logos)'에 대한 생각이 보편타당한 법률, 즉 자연법에 대한 사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이에요. 자연법의 등장은 윤리학 발전의 강력한 토대가 마련되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인권의 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지점이 됩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주입식 교육 때문에 왜곡된 대표적 학파가 아닐까 싶어요.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와 대비해 암기하다보니 "에피쿠로스=쾌락"이 상식이 되어버렸잖아요? 물론 저는 그마저 안 외웠어요. 에피쿠로스가 쾌락을 중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말초적인 쾌락을 중시하진 않았습니다. 그런 육체적 쾌락을 중시한 학파는 아리스티포스의 키레네학파였는데, 그들조차 '쾌락을 누리되 쾌락에 지배당하지 말 것'을 강조했어요. 에피쿠로스는 그러한 키레네학파의 윤리학을 발전시킨 사람입니다. 일단 쾌락의 재정의부터 시작했죠.
에피쿠로스는 쾌락이 '말초적인 향락과 무조건 같지는 않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삶을 즐길 수 있으려면 먼저 절제, 중용 등의 오랜 그리스적 이상이 조건으로 갖추어져 있어야만 한다는 입장이었죠. 쾌락은 고통의 부재이고,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중요하지만 단기적 쾌락으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쾌락을 놓치는 것은 경계했어요. 지속적이고 안정된 삶을 위한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닮은 구석이 많은 것이죠. 욕망을 절제한다거나,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다거나 하는 면들은 거의 겹친다고 할 만 합니다.
의외로 스토아학파 만큼이나 꼰대스럽게 절제를 강조하던 에피쿠로스의 차별점이 있다면, 바로 데모크리토스(마지막 자연철학자 기억나시죠?)를 끌어와 완성한 '영혼 원자'이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현실의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에도 시달렸어요. 그런데 에피쿠로스가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거죠. "죽으면 영혼이 원자로 분리된다. 즉 나의 현존은 해체된다. 그러니 고통도 없다. 내가 현존하는 한 죽음이 온 게 아니고 죽음이 현존한다면 난 이미 없으므로."
어떤가요? 스토아학파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던 에피쿠로스학파가 이 생사관 하나로 확 달라 보입니다. 현실 너머의 질서인 로고스에 삶의 초점을 두었던 스토아학파와 달리 에피쿠로스학파는 삶의 초점을 바로 지금의 현실에 두었던 것이죠. 그것이 종종 '어차피 나중은 없다'는 무책임한 생각으로 이어졌던 걸까요? 에피쿠로스의 후예들은 진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퇴폐적인) 쾌락주의자들로 전락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불확실한 삶을 헤쳐나갈 윤리와 행복에 대한 그리스 철학의 지혜는 헬레니즘을 지나 로마 시대까지 이어집니다. 특히 플로티노스의 구원론은 당시 차츰 세력을 얻어 가던 기독교와 쌍벽을 이루기도 했다고 하는데요(말하자면 경쟁관계였다는 거죠.), 하지만 플라톤의 철학을 계승한 그의 신플라톤주의는 후에 기독교 신학 이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자세한 건 이 책에 안 나오지만 동양의 유교가 불교와 부딪히며 비로소 철학적 토대를 더 단단히 하게 된 사례를 떠올리면 힌트가 될 것 같아요.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을 숭배하다시피(오죽하면 신플라톤주의) 했던 철학자이지만, 페르시아와 인도의 지혜를 탐구하고자 로마의 원정 전쟁에 동참할 만큼 동방의 사상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일까요? 신플라톤주의에서는 플라톤이 말했던 이데아가 '하나[일자一者, The One]'라는 매우 유일신스러운 개념과 더불어 더 섬세해져요. 인간의 영혼이 그 근원적 '하나'와 하나가 되는 체험인(@ㅇ@) 신비체험 또한 동방의 유대교 등에서 신성시하는 체험과 뭔가 닮은 구석이 있죠.
플로티노스도 몇 번밖에 못해 본 고급 체험이지만 그런 만큼 신비체험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대중적으로 동경받았던 것 같아요. 내면 세계의 가치를 중시하고 그리하여 진정한 행복, 즉 구원에 도달하려는 헬레니즘 철학의 흐름(생각해 보면 앞서 말한 학파들이 모두 그런 면이 있습니다.)이 동방세계의 신비주의와 만나 제대로 융합된 것이죠. 이 신비적 체험은 윤리학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띄는데, 이 얘기는 꽤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아요.
3. 기독교의 탄생
이제, 헬레니즘이 만들어낸 문화 융합의 하이라이트, 기독교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가 쓰는 동방이니 서양이니 하는 용어들이 좀 헷갈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책에서 말하는 인도-게르만 어족(보통 인도-유럽 어족이라고도 해요.) 문화권과 셈 어족 문화권을 기준으로 간단히 정리하고 갈게요. 정말 간단히요.
그러려면 먼저, 이 '어족語族'이란 개념이 뭔지부터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말씀 어語'를 통해 유추할 수 있듯 언어학 개념이예요. 서구의 제국주의적 확장이 한창이던 시기에 등장한 '역사비교언어학'의 개념인데요, 이 언어학은 18세기 말 식민지 인도에서 근무하던 영국인(윌리엄 존스 경)이 인도의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연구하다가 산스크리트어와 유럽의 여러 언어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어요. 그가 주장했던 학설이 바로 인도-유럽어족 학설인데요,
그게 무슨 말인지 대강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인도 대륙 근방에서 살던 사람들이 점차 더 넓은 영역으로 퍼져 살게 되는데 그 중 일부는 서쪽으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소아시아쯤에서 좀 정착하고, 거기서 좀 더 이동한 사람들은 에게해 근방의 땅에 정착하고, 좀 더 간 사람들은 이탈리아, 이베리아 반도를 지나 영국 섬까지 가서 정착하게 됐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결국 그 이동선 위에서 사는 여러 종족들의 언어는 떨어져 사는 동안 생긴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통 조어(조상 언어)를 공유하는 만큼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럼 거꾸로 생각하면 언어의 유사성을 통해 유럽 곳곳에 퍼진 민족들이 어떤 친족 관계에 있는지도 추론할 수 있겠죠? 같은 친족 에 속한 민족들이라면 애초에는 원시적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공유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고요. 고대사를 연구하는 여러 지점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책에서 얘기하는 '~어족 문화'는 이런 발상을 바탕으로 한 서술입니다. 그럼 인도 반도의 북쪽에서 출발한 인도-유럽 어족과 아라비아 반도 일대에서 출발한 셈 어족 중 애초에 누가 더 서쪽에 위치했었을까요?
셈 어족이겠죠. 그래서 책에서는 셈 어족 쪽 종교나 문화를 '서양'의 것이라고 서술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지중해 일대에서 출발한 그리스 문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것을 감안해서, 그리스나 이집트 사람들 입장에서는 히브리 민족이 있는 아라비아 반도 쪽이 동쪽이니 그 사람들 입장을 고려해 '동방'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의 동방하고는 다른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셈족 입장에서의 동방은 인도쪽이니, 동방박사는 아마 이란계나 페르시아쪽 사람이었을 확률이 높대요.)
그러나, 어쨌든 헷갈리니 이제 동이니 서니 하지 않고 그냥 '인도게르만', '셈' 이렇게만 쓰도록 할게요.
먼저 각 문화권의 특징부터 살펴 볼까요?
인도게르만 인들은 다양한 신을 믿습니다. 세계의 질서를 선한 힘과 악한 힘의 대립, 긴장, 싸움으로 인한 드라마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고요. 자신들이 예측할 수 없는 싸움에 속해 있다는 세계관이 '예언'에 대한 욕구를 불러 일으키고 그것이 '통찰력'이나 '지혜'에 대한 욕구로 이어진 건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이들 언어에는 그와 관련된 단어들이 발달하는데 그것들 중 많은 것이 현재 '본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도게르만인에게 '통찰'이나 '지혜'는 곧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던 것이죠.
그리스 철학이 괜히 관찰을 바탕으로 한 논증에서 출발한 게 아니었나 봐요. (물론 저만의 뇌피셜)
노아의 세 아들 중 장남인 셈(Shem)에서 그 이름을 가져온 어족인 만큼 셈족(Semitic peoples)의 문화는 유대 문화와 관련이 깊어요.
일단 유일신을 믿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이 셈족 문화를 뿌리로 합니다. 사실 이 세 종교는 친족 관계에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가까운데요, 어느 정도냐면 신성시하는 성지(예루살렘)조차 일치해요. 이슬람의 성전 코란과 유대인의 구약 성서는 비슷한 셈족 언어로 쓰여 있기도 하죠. 이들은 시간관(역사관)도 일치합니다.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시간관(불교, 혹은 플라톤이 믿던 윤회를 떠올리셨다면, 맞습니다.)을 지닌 인도게르만인들과 달리 셈족은 역사를 처음과 끝을 갖는 선으로 이해했고, 그래서 마지막에 늘 '최후의 심판'을 가정해요.
직선적인 시간관을 지닌 셈족에게 역사는 신의 뜻이 진행되는 과정이자 현장입니다. 신은 역사를 통해 인간을 인도하며 모든 역사가 마무리 되는 때가 오면 최후의 심판을 통해 악을 파괴하는데, 그때 파괴 당하지 않고 구원 받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신의 의지를 따르고 신이 악으로 여기는 것들은 피해야 하겠죠. 이것이 유대 민족의 고대사가 구약성서로 전승되는 이유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역사歷史는 신이 역사役事하신 증거니까요. 그들의 역사는 그 자체로 배우고 탐구해야 할 신의 행적이자 경전이 됩니다.
재밌는 것은 셈족은 통찰을 '듣는다'는 행위와 관련지었다는 점입니다. 성경만 보아도 신은 대부분 '말씀'으로 일을 하거나 등장하고, 이슬람이든 가톨릭이든 설교를 '듣거나' 성전을 '낭독'하는 것이 예배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고 보면 신의 목소리를 듣고자 '눈을 감고' 기도하는 행위조차 예사롭게 보이지 않네요. 신의 형상을 만들어 받드는 우상 숭배를 금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한낱 조각일지라도 인간이 창조로써 신과 경쟁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지만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경계가 드러나는 건 사실인 것이죠.
그러나 아시다시피 유럽 여행을 할 때(저는 못해 봄 ㅠㅠ) 접하게 되는 수많은 기독교 유적지에서 우리는 성경 속 이야기나 예수에 관한 그림과 조형물을 무수히 만나볼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형성된 기독교가 헬레니즘의 토양 위에서 인도게르만 어족 계열인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알수 있는 예죠. 또한 인도게르만의 '윤회'라는 사고방식의 근간이 되는, 윤회의 주체에 대한 의식이 있었기에 셈족 종교들의 영혼에 대한 관념들이 만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어요.
문화의 교차와 융합은 헬레니즘 이후에도 이어져요. 만물에 존재하는 신성을 통찰하는 수련을 통해 부처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인식은 그리스 철학의 플로티노스를 떠올리게도 하는데요, 이때의 수련은 보통 엄격한 자기 성찰과 철학적 명상에 중점을 두게 마련인데, 속세에 대한 소극적 태도(견유학파도 좀 이런 면이 있죠.)와 은둔이 종교적 이상으로 여겨지는 이러한 면모는 실제로 그리스 세계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바이며 이는 후에 유럽의 중세 수도원 생활의 근본 원리들과도 연결된다고 합니다.
4. 다음 주 예고 및 subtext 소개
예수가 죽고 난 후, 바울이 헬레니즘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면서 비로소 기독교는 교세라 할 만한 것을 형성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신약 성서는 모두 이 시기 이후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헬레니즘 시대에 형성된 만큼 예수를 기점으로 한 기독교의 신학과 교리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표현되고 정리됩니다. (보통 교회에서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쓰여 있다고 하는데, 히브리어는 셈어족에 속하는 언어고 헬라는 그리스인들이 스스로를 일컫던 말입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헬레니즘 철학의 영향도 많이 받고요.
바울의 선교는 유럽의 전통 속에 기독교 문화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됩니다. (유럽에게 기독교는 동북아시아의 유불선_유교, 불교, 도교와 거의 비슷한 지위를 지닌 문화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그것을 바탕으로 기독교가 주도하는 중세의 사상사가 이어지게 되고요. 그래서 오늘 못다한 예수와 사도바울의 이야기, 그리고 중세의 이야기는 다음 주에 몰아서 이어갈 예정이에요. 우리의 Main text, 『소피의 세계』는 '중세'와 '르네상스' 두 챕터만 더 읽어보기로 해요.
오늘 소개해 드릴 subtext는 『개인의 발견』(리하르트 반 뒬멘 / 2005/ 현실문화연구)입니다. 중세의 문화가 어떻게 근세의 문화를 낳았는지와 중세 문화 속에 숨은 개인주의의 맹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솔직히 재미없는 책이지만(거의 학술서예요.) 참 접하기 어려운 내용을 다루고 있는 좋은 책인데...절판된 것 같아요. ㅠㅠ 그래도 혹시 도서관이나 헌책방 등에서 발견하시거든 망설이지 말고 get 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유해 봅니다. 다음엔 꼭 엄청 대중적인 책을 골라 올게요. ;;
5. 덧붙여
유럽으로만 제한해서 봐도 이렇게 많은 융합이 일어났으니 전 세계적으로는 또 얼마나 많은 융합이 일어났을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융합을 겪어 여기까지 왔으며 또 얼마나 많은 융합을 겪게 될지 생각하면 정말 우주 여행이 따로 없습니다.
어쨌든 오늘 얘기하고 싶은 핵심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종교나 문화는 각기 독립되어 따로 이어져 오다가 현재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라는 것인데요, 말하자면 다른 민족, 다른 문화, 다른 종교로 갈려 있는 것 같은 그 모든 문화와 철학은 사실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라는 것이죠. 물론 지금은 의무감으로 상대를 용인하다가, 또 그마저도 안 돼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처음 만나 조화를 꿈꾸며 서로 용인하고 배우던 마음가짐을 찾는다면 지금의 싫증과 갈등도 차차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도 잠시 품어 봅니다. (참 복잡한 문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럼, 다음 주에 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