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세계』_ 01. '에덴 동산'부터 '운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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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연한 게 어디 있어.
주택가와 숲의 경계, 인적 드문 끝집에서 사는 호기심 많은 소녀 소피는 여느 때처럼 하교 후 집 앞의 우체통을 뒤지다가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하지만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편지를 발견합니다. 그 편지 안에는 15세 소녀의 예민한 감수성을 뒤흔드는 질문이 들어 있었죠. 그 질문은 바로
'너는 누구니?'
평범한 질문같지만 상황이나 맥락 없이 질문 자체로 육박해 들어올 때 이 짧은 문장의 무게는 생각보다 엄청납니다. 나를 정의하는 개념들을 나열하면 할수록 나란 존재는 알 수 없어지죠. 해보시면 알겠지만,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고 그렇기도 하고 요렇기도 한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렇지도 않고 저렇지도 않고 그렇지도 않고 요렇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게 '나'이니까요.
그러니 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피도 순식간에 멘붕을 맞이하게 되죠. 이름 속에서, 거울 속에서 자신의 실체를 탐색하던 소피는 결국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자신이 어쩌다 인간이란 존재로 태어났는지조차 모르겠다고 말이죠. 그러다가 문득 인간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소피는 삶의 유한함과 인생의 아름다움에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15세의 미친 브레인스토밍!)
할머니의 죽음을 떠올리며 얼얼한 마음을 달래던 소피는 혹시나 자신이 아까 잘 살피지 못해 놓친 편지가 더 있지 않을까 하고 다시 우체통에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앞서 발견한 것과 같은 봉투를 발견하죠. 네, 바로 그 질문 봉투요. 이번엔 어떤 질문일까요?
'세계는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맙소사. 질문을 받고 어지러워진 소피는 자신의 비밀 동굴로 향합니다. 소피는 순식간에 자신의 존재와 존재의 기반을 반추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받게 된 겁니다. 하지만 소피는 그 당혹감 속에서도 그러한 질문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 한 번 던져보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게 오히려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면서요.
2. 우리는 수시로 철학자가 된다.
소피의 당혹감이 느껴졌다면, 우리도 이미 질문을 받은 겁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나에게서 시작되는 철학적 고찰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죠. 처음부터 철학적 고찰이라니 다소 부담스러우신가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수시로 철학자가 됩니다.
필로소피(philosopie)라는 말의 어원이 필로소피아라고 하죠. '사랑하다'를 뜻하는 필로스(philos)와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sophia)가 합성된 말이라고 해요. 말하자면 동양권에선 철학(哲學)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필로소피(philosopie)는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죠. 지혜란 다름 아닌 삶을 현명하게 살기 위한 방편일 텐데요, 그렇다면 철학자는 바로 그런 것들을 고민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도 수시로 고민을 하잖아요. 각기 다른 취향, 관심사, 가치관에 따라 달고 사는 질문들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사람이라면 모두 골똘히 생각해보게 되는 의문들이 있죠. 사람으로 살다보면 부딪히게 되는 필연적 질문들. 이를테면 소피가 받은 질문이기도 한, 이번 화의 제목 같은 질문이요.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리고 그 질문은 또 이러한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앞뒤가 바뀌어 떠오르기도 하는 이 질문, 다들 한 번쯤 부딪혀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살아있네- 사고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사소한 계기로 허탈함인지 경이로움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여 우리는 우리의 삶을 낯설게 발견합니다. 그렇게 청소를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과제를 해결하다가, 밥을 먹다가 우리는 문득 철학자가 되는 거죠.
3. 그렇다면 모두 이상해.
약 3000여년 전에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가 궁금했을 겁니다. 특히 여러 자연 현상들이 궁금했겠죠. 왜 천둥이 치는지, 비가 오는지, 해가 뜨고 지는지, 바다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왜 덥고 추워지는지. 쉴 새 없이 변하는 환경에 적응해 생존하자니 우선 그런 것들에 대한 지식이 오랫동안 간절했을 거예요. 지금이야 여러 근거들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해석이 우리를 납득시키고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자 그럼, 한번 상상해 볼까요? 과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되어 보는 거죠. 그리고 그 상태로 문득 번개가 치는 걸 봤다고 상상해 봅시다. 아, 번개군. 이러고 말 순 없겠죠? 만일 그 번개가 나무라도 박살 내는 걸 봤다면 그 놀랍고도 예측 불가능한 힘에 아마 공포마저 느껴질 겁니다. 끊임없이 비가 내려 급류에 모든 게 휩쓸려 버리는 걸 경험하거나 노도가 몰아치는 바다를 봤을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사실 예측 불가능 혹은 불확실성처럼 위협적인 게 없습니다. 제어는 물론이고 어떤 대처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은 정말 끔찍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했다면, 축적된 지식이 많지 않았던 고대인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시절,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만만하다 싶으면 제어하려 들지만 그럴 수 없겠다 싶으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했나요?
네, 일단 공손해지죠. 조심스러워집니다. 잘못 건드렸다가 괜히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도 있잖아요. 자연 앞에 선 인간은 바로 그런 마음으로 신화를 만들었을 겁니다. 자연현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여러 문제에 대한 종교적 설명이 신화로 정리되어 일종의 지혜로써 구전되었겠죠. 그리고 납득하는 겁니다. 천둥은 왜 치지? 토르 신이 망치를 휘둘러서. 지금이야 황당하지만 이런 설명의 등장은 인류사의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 대처의 근거가 생긴 것이니까요. 공손해질 대상이 있는 겁니다. 신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 신전을 짓고 정기적으로 제물을 바치거나 혹은 신의 서사를 공연함으로써 이 세상의 질서에 동의하는 등의 방식으로 신의 비위를 맞추는 거죠. 이 일들은 신의 권위에 동의하는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뤄낼 수 있는 일들이라 자연히 집단을 바탕으로 발전하고 제의, 기념일(명절)의 형식으로 문화를 만들어 나갑니다.
집단의 생존이 걸린 일(흉작, 항해, 전쟁 등)이 있을 땐 특히 그 제의를 통해 신의 뜻을 확인하고 지지를 얻는 게 중요했겠죠?
그런데 기원전 700년 경,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라는 사람이 그렇게 구전되어 오던 그리스 신화의 대부분을 글로 적는 작업을 해요. (물론 '사관史官'보다는 '시인詩人'에 가까운 입장이긴 했습니다.) 이 문학적 작업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제각각으로 상상되던, 그래서 영원히 신비롭던 신화를 객관적 텍스트로 전환시키는 사건이 됩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토론을 통해 신화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게 되었죠.
이를테면, '이거 인간 사는 얘기랑 똑같네. 결국 신이라는 건 그냥 인간이 스스로를 반영하여 창작해낸 존재 아닌가?' 하는 비판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철석같이 섬기던 것들을 곱씹으며 생각하고 의심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상상력이 아니라 논리와 이성적 성찰에 근거한 설명을 시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연, 질병, 혹은 운명에 이르는 모든 생각들이 새로워집니다. 최초의 철학이 등장하는 것이죠.
소피도 본격적인 철학사 강의가 담긴 편지를 받기 시작합니다.
4. 자연철학자들
자연철학자들도 그런 새로운 해석을 하는 사람들 중 한 부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본질과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관찰하고 생각했겠죠. 신화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이상, 워낙 압도적이어서 감당할 수도 없는 자연의 변화를 새롭게 이해할 더 타당하고 논리적인 사고 체계가 필요했을 테니까요. 이들에 대한 기록은 사실 자세히 남아 있지 않지만 뿌리를 더듬는 마음으로 대강이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1) 만물의 근원
먼저 밀레토스라는 지방(현 터키 서쪽 에게해변. 에페소스의 약간 북쪽)에 살던 세 철학자부터 볼까요. 당시의 많은 철학자들처럼 이들도 자연 변화의 이면에는 특정한 원질이 있다고 믿었다고 해요. 다만 그 원질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에 갈렸죠. 탈레스는 신들로 가득 차 있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여겼고(물론 탈레스가 말하는 신은 신화 속의 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자연 곳곳에 내재한 어떤 생명력으로 신을 이해했죠.),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이 대기 또는 공기라고 믿었어요.
아낙시만드로스는 좀 더 복잡한 설명을 했는데요, 그는 이 세상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접할 수 없는 무한한 어떤 것에서 생겨나(만물 형성의 근본이 되는 것은 이미 형성된 것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므로) 다시 그것으로 돌아가는 수많은 세계들 가운데 하나라고 믿었습니다. 뭔가 빅뱅 같은 걸 연상 시키면서도 황홀한 상상이네요. 하지만 세상의 본질은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생각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떠오르게도 합니다.
2)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한편, 멀리 엘레아라는 지방(현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 탈레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에서는 파르메니데스라는 학자가 등장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늘 존재하던 것이므로 변화란 실제로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오관의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죠. 아마 빛의 굴절 등으로 인한 시야의 왜곡이나 메아리같은 청각적 환상 등을 의식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이 사람은 그래서 여러가지 형태의 '감각적 착각'을 밝혀내는 것을 철학적 과제로 삼게 됩니다. 감각을 통한 경험을 그대로 믿을 순 없어. 믿을 건 오로지 이성뿐이야. -라고 되뇌이는 매우 데카르트스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 밀레토스 남쪽의 에페소스라는 지방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이 사람은 파르메니데스와는 반대로 자연의 기본 특성이 지속적인 변화라고 주장합니다.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흐른다는 것이죠.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사람은 파르메니데스와는 달리 감각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변화를 자연의 기본 원리로 이해한 이 사람은 그 질서 자체를 신이라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 질서를 일컫기 위해 신이라는 단어 대신 '로고스'란 단어를 사용했답니다. 그는 아마도 자연의 모든 현상을 총괄하는 '세계이성' 혹은 '세계 법칙'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고, 바로 거기에서 신격을 느낀 것 같아요. 헤라클레이토스의 신 역시 신화 속의 신보다 탈레스의 신에 가깝네요. 스피노자의 범신론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3) 엠티처와 미스터아낙
그런데 사실 존재하는 것은 본래 늘 존재하던 것이란 말도 맞는 말이고,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자연이 변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잖아요. 저같은 혼란을 겪는 사람이 많았는지 어쨌는지 얼마 후 엠페도클레스(저는 엠티처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이름 어려워 ㅠㅠ)라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파선생과 헤선생의 의견을 절충(?)해 냅니다. 그 절충은 이전까지의 자연철학자들과 달리 기본 원소가 한 가지가 아니라 네 가지라고 생각하면서 가능해지죠. 네 가지 원소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네 가지가 어떤 비율로, 어떻게 혼합되고 분리되느냐에 따라 여러 물질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오! 설득력 있죠? 고딩 때 화학 선택한 사람들 소리 질러! (전 문과였음.)
엠티처는 물질과 힘을 구분하는, 현대물리학에선 너무 당연한 전제이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혁명적이랄 수 있는 발상을 보여주기도 해요. (물론 그 힘이 사랑, 미움 이런 정의이긴 하지만...엠티처보다 훨씬 후대인들도 오랫동안 물질과 힘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는 걸요.) 그나저나,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조금씩 비판을 주고 받고 그 비판을 극복하기 위한 생각이 보태지면서 점점 이론이 풍부하고 섬세해지는 게 느껴지시나요? 갑자기 뿅하고 나오는 설은 없는 건가 봐요.
비슷한 시기에 아낙사고라스(웹툰에서 은근 나옴)라는 사람도 질서를 세우고, 만물을 창조하는 일종의 '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불이나 물 따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소립자가 자연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아예 신 따위는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태양도 신이 아니라 엄청나게 거대한 불덩어리라고 생각했고(!), 달이 빛나는 것은 지구의 빛(ㅎ 한참 놀랍다가도 요런 어쩔 수 없는 어설픔들이 발견되기도 해요.)을 반사하기 때문(반사는 맞힘!)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일식을 규명하기도 합니다. (탈레스는 일식의 주기를 계산하는 정도였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죠.)
약 2500년 전에요. 미스터 아낙. 그는 지구인인가 외계인인가.
4)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그리고 마침내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가 있다는 발상, 한 가지 원소가 아니라 여러 가지 원소가 있다는 발상, 그 원소는 물이나 불 따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립자라는 발상을 이어 종합한 것 같은 발상을 보여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원자론을 펼쳤던 데모크리토스죠.
그는 엠티처와 미스터아낙의 생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세상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의 다양한 원자가 무한히 존재하며 만물은 그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여겼어요. 구성 입자는 변하지 않고 영원하며 그 원자들과 빈 공간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기원전 5~4세기 경에요).
반면 그는 엠티처나 미스터아낙처럼 '힘'이나 '정신'을 고려하지는 않았어요.(말하자면 미움과 사랑 같은 것은 객관적 진리 요소로 보지 않은 것이죠.) 요즘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흔하죠? 의지 따윈 없어. 다 물질적 현상이야. 데모크리토스가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잘은 몰라도 데모크리토스는 당대 철학자들 중 가장 과학자, 혹은 유물론자에 가까운 정서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5) 그리고
자연철학자들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습니다만, 당대의 철학적 발전은 비단 자연과 관련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연 변화처럼 인간이 무력함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대상인 운명이나 질병에 대한 철학적 해석도 시도 됩니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테스 같은 역사학자나 히포크라테스같은 의학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죠. 책에도 간단히 다루고 있으니 같은 맥락 안에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탈레스부터 데모크리토스까지 고작 200년 남짓인데, 고대인에 감정이입하여 생각해보자니 변변한 관찰 도구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 놀랍기도 합니다. 거의 밥 먹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철학만 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할 것 같은 성취인데요(보통은 그렇게 해도 불가능했을 듯), 실제로 밥 먹고 철학만 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는지는 다음 시간에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생각보다...너무 길어졌어요.
5. 다음 주 진도 및 subtext
소피는 앞으로 어떤 편지들을 더 받게 될까요? (안 물어보면 안 궁금할 것 같아서 써 봄)
아마 다음 주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름들을 만나는 소피의 이야기를 전할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그의 제자 플라톤, 그리고 또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너무나 유명해서 그 이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야말로 서양철학계의 슈퍼스타들 말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소크라테스, 아테네, 플라톤, 소령의 오두막, 아리스토텔레스. 이렇게 다섯 단락입니다. 제가 가진 책으로는 88쪽부터 179쪽까지네요.)읽다 보면 우리 모두 공감할 것 같습니다. 현자로 추앙받는 그들도 역시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물론 이 사람들이 현재 서구적 사고방식의 근간을, 어찌 보면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지배적인 사고방식의 토대를 제공한 사람들이기는 해요. (뭐, 아무리 위대한 업적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습니다. 오늘 얘기한 자연철학자들의 이야기도 사실 그의 기록을 통해서 전해져 오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희랍 사상 최고의 권력자였던(세계 최초로 대륙 간 제국을 건설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알렉산더의 스승이었으며 고대 철학을 체계화하고 보편적 정의(正義Justice) 즉 도덕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십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센델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자신의 스승으로 숭앙했었죠.
오늘 소개하는 subtext는 아선생에 대한 그런 통설에 가열찬 똥침을 날리는 책입니다. 그책은 바로 요것.
필맥에서 나온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부제가 "자유와 예속의 원류"인데요, 누가 자유의 원류고 누가 예속의 원류일까요? 지은이 박홍규는 고흐, 카프카, 프롬, 니체 등의 평전을 쓰기도 하고 미셸 푸코, 에드워드 사이드 등의 매우 중요한 인문학 저서(이를테면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같은 책이요.)를 번역해 우리나라에 소개하기도 했지만 본래 법학자세요. 주로 노동법이나 헌법, 그리고 사법개혁에 대한 책을 쓰셨다고 하네요. 노동법, 그리고 사법개혁이라... 이쯤 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어떤 점을 불편해 하셨을지 감이 오시나요?
안 오신다면 일단 우리의 main text, 『소피의 세계』의 '아리스토텔레스' 단락까지 읽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아니 이렇게 훌륭한 아선생이 뭘 잘못했다고 똥침을 날리는 거지?'하고 더 궁금해지실 테니까요.
소피를 중심으로 한 서사도 한창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읽어가시는 분들의 재미를 위해 너무 많이 하지 않으려고요. 단지, 부디 동참하시는 분들이 더 늘어나길 기대할 따름입니다. 가죽 깊숙이 기어 들어가 편안히 지내는 삶도, 토끼 털 끝을 잡고 올라서는 삶도 모두 소중하겠습니다만, 마법 같은 세상을 마주하는 일은 정말 포기하기엔 아까운 즐거움이니까요. ^^
그럼 다음 주에 또 숙제 검사하러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