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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Apr 08. 2022

오랜 인연

25년 차 직장인


한 10년 전이다. 내가 맡은 업무가 노조 관리였는데 3년 근무하는 동안 팀장이 4번이나 바뀌었다. 처음 2년은 1년마다  바뀌었고 그다음 팀장님은 8개월 만에 하차하였고 9월에 새로운 팀장님이 오셨다. 4명의 팀장님은 각기 개성이 달랐다.


첫 번째 팀장님은 자상한 아버지상이었다. 팀장님은 아침 출근길에 막내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하셨다. 컴퓨터를 켜면 아들 학교 홈페이지가 보였다. 팀장님은 온종일 과묵하셨고 어쩌다 회식을 할 때나 말씀을 조금 하셨다. 두  번째 오신 팀장님도 과묵하셨지만 스타일이 달랐다.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온화보다는 강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일의 맺고 끊음이 단호해서 노조 간부들은 팀장님을 불편해했다. 하지만 오히려 업무추진이 명확해서 직원들이 더 환호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1년 만에 발령이 났다.


세 번째로 오신 팀장님은 명랑하신 분이셨다. 관리자나 노조 간부들과 유대 관계도 잘 맺으셨고 지방에 워크숍을 가면 인기가 많으셨다. 볼링, 탁구, 배드민턴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겨서 그러신 지 주변에 어울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신입 때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했다고 하시니 문무를 겸비하셨다고 볼 수 있다. 그해에 선거가 있었고 정권이 바뀌었다. 노조는 다시 들고일어났고 팀장님은 뭔지는 모르지만, 8개월 만에 발령이 났다.


마지막으로 오신 팀장님도 온화하신 분이셨는데 다른 분들과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지셨다. 이분은 인상이 좋으셨다. 딱 누가 봐도 이야기를 잘 들어줄 분으로 보였고 실제로도 그러셨다. 차분한 말투와 인상은 상대방이 흉금을 털어놓고 싶게 만든다. 또한 기준에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관용을 베푼다.


세월이 흘러 세 번째 팀장님을 빼고 모두 4급으로 승진하셨다. 첫 번째 팀장님은 정년퇴직을 하셨다. 남들 6개월 공로 연수 들어갈 때 당신은 1년 먼저 들어가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셨다. 두 번째, 네 번째 팀장님은 승진해서 기관장으로 근무하신다. 세 번째 팀장님은 곧 4급 승진을 앞두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힘든 시기에 동고동락한 사람들은 자주 만나게 된다. 두 번째 팀장님은 내가 승진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을 주셨다. 가끔 소주잔도 기울여주시고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으셨다. 네 번째 팀장님은 나에게 "한번 1등이 영원한 1등이 아니듯이, 한번 뒤처짐이 영원한 뒤처짐은 절대 아니다."라고 늘 강조하셨다. 지금까지도 노조 간부를 하고 있는 직원이 있는데 내가 승진시험 보기 전날 야식으로 치킨과 떡볶이, 어묵을 사 왔고 덕분에 결과가 좋았다. 그 친구와 두 분 팀장님과 나는 적어도 1년에 두 번 이상 만난다. 어떤 날에는 바닷가에 바람 쐬러 가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막걸리에 삼치구이를 먹으며 지난 시간을 이야기한다.


좋은 만남의 조건이 있다면 그건 깊이라고 생각된다. 오래 만나서 좋은 것이 아니라 깊이 만나서 오랜 인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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