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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Apr 13. 2022

헌신의 끝은 어디인가?

지하철에서 읽는 책


수요일이다. 기상 예보대로 밤새 비가 내렸다. 아침에 나가보니 나뭇가지에 연둣빛 이파리들이 촉촉하게 자라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더니 맞는 말이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벚꽃을 감상한다. 고맙다.


지하철을 타고 못다 읽은 책을 펼친다. 어제 <용의자 X의 헌신>에 대해 독서토론을 했다. 오프라인 토론은 오랜만이라 더욱 반가운 시간. 줌 화면으로만 얼굴을 보던 회원들이 서로 마주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아파트 신규 분양에 당첨되었다는 회원, 이사를 했는데 책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는 회원, 사무실 일이 너무 힘들었는데 책을 읽고 힐링이 되었다는 회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들 잘 지내고 있었구나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은 논제를 풀어보면 왜 책 제목이 <용의자 X의 헌신>인가? 꼭 찍어서 실명을 밝히지 않고 왜 ‘X’라고 했는가? 수학 교사 이시가미는 야스코 모녀가 불가피하게 저지른 전 남편 살인 현장에 와서 시체를 본인 집으로 옮기고 뒷정리를 해준다. 경찰이 의심할 것에 대비해 철저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준다. 결국 경찰에 자수해서 본인이 살해했다고 말한다. 내 생각에 ‘용의자 X’는 단 한 명이 아닐 수 있다. 야스코를 도와주는 구도라는 남자도 있고, 야스코의 도시락 가게 주인도 있다. 어쩌면 이시가미의 대학 친구 유가와도 용의자일 수 있다. 왜 ‘헌신’이라는 말을 제목에 넣었을까? 헌신은 내 몸과 마음을 바쳐 그 사람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일인데 왜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가? 그 사람의 신념인가, 의지인가, 고집인가?


대학 시절 천재 수학자로 이름을 날렸던 이시가미는 형편이 어려워 연구를 포기하고 고등학교 수학 교사가 된다. 유일한 낙이 있다면 퇴근 후에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내고 잠이 드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앞집에 모녀가 이사를 왔고, 그녀가 도시락집에서 일하는 것을 안 뒤에 매일 아침 도시락 가게에 가서 ‘오늘의 도시락’을 산다. 왜 그는 꼭 ‘오늘의 도시락’을 살까? 오늘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는 모녀를 위해 모든 걸 바친다.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아무리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좋아하는 것과 살인 누명을 대신 써주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는 자수한 뒤에 감옥에 가서 연구할 수학 관련 자료를 챙긴다. 그는 수업 시간에 수학이 왜 필요하냐고 따지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누군가를 위해 수학이라는 수업이 있어. 말해두겠는데 내가 자네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수학이라는 세계의 입구에 지나지 않아. 그 입구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물론 싫은 사람은 안 들어가도 돼. 내가 시험을 치르는 것은 입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야.”(160쪽)


이시가미 같은 선생님들이 지금 우리 학교에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낸 회원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내 전공에 대한 자부심과 필요성에 대해 학생들을 설득해서 이끌어나가는 선생님이 필요하다. 같은 책을 읽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입체적인 독서를 가능하게 해주는 <여리 독서 모임>의 매력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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