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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Apr 29. 2022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다.

지하철에서 읽는 책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개인적인 동기는 초등학교 4~5학년 때에 배운 그림이 있는 과학 교과서 때문이었다. 초라하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으며, 놀라울 정도로 두꺼운 1950년대의 전형적인 교과서였지만, 첫 부분에 나를 사로잡았던 그림이 있었다. 큰 칼로 지구의 4분의 1을 잘라낸 단면을 그린 그림이었다.”(서문, 17쪽)


이 문장을 읽으며 나도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새 교과서를 받으면 <사회과 부도> 책을 먼저 펼쳤다. 세계지도가 책 표지 안쪽에 양면으로 인쇄되어 있고 대륙별 각 나라의 세부 지도에 등고선과 산맥이 그려져 있고 지명과 강 이름이 아주 작은 글씨로 쓰여있다. 파란색은 바다이고 녹색은 육지, 산맥은 갈색으로 표기되어 있다. 난 눈을 거의 책에 붙이다시피 하며 깨알 같은 글자들을 보고 또 봤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이 책은 어마어마한 상식 백과사전이다. 책 속에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학자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마치 사다리 타기 하듯 이 이론은 맞는지 틀리면 다시 다른 사다리로 내려가서 결국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읽어도 또 잊어버리는 방대한 내용이 페이지를 되돌려 다시 읽어도 새롭고 흥미롭다. 놀라운 점은 작가의 방대한 자료 수집 양이다. 실을 짜서 옷을 만들듯이 저자는 이야기의 조합을 통해 멋진 에세이를 만들어 냈다. 실로 대단하다.


저자의 말 대로 우리는 진정 나이도 모르고 거리도 모르고 물질도 모르고 이해도 못 하는 우주에 사는 셈이다. 여하튼 끝없이 연구하는 인간의 무한한 탐구 정신을 높이 사고 싶다. 한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연구해서 업적을 쌓는 방법은 하나다. 학자가 돈이 많아서 누구의 영향도 받지 말아야 하고, 절대로 라이벌이 없어야 하며, 아프지 말고 오래 살면 된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자는 어느 날 비행기 안에서 불현듯 ‘내가 살고 있는 행성에 대해서 내 자신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18쪽) 인류 문명의 발전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지구는 얼마나 무겁고, 바위는 얼마나 오래되었고, 우주는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멋지다.


“아무 숲이나 걸어 들어가서 한 줌 흙을 움켜쥐면, 그 속에는 100만 마리의 포동포동한 효모, 20만 마리의 머리카락처럼 생긴 곰팡이라고 부르는 작은 진균류, 아메바를 비롯한 1만 마리의 원생동물, 그리고 온갖 종류의 담균충, 편형동물, 회충을 비롯해서 미확인 미생물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이다.”(413쪽)


500쪽이 넘는 책인데 이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다. 소설도 아닌데 스토리를 이어가는 기술이 다음 장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호기심을 일게 한다. 책을 만들 때 왜 만들게 되었는지 어떤 내용을 수록할 것인지 서문에 밝히고 일관되게 그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두꺼운 책을 다 읽었다. “나는 당신이 이곳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저자의 서문에 빵 터졌다. 유머와 위트는 팩트를 기반으로 쓴 글에서 정직하게 나온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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