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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Jun 17. 2022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하철에서 읽는 책



“살다 보면 이상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아침부터 어쩐지 모든 일이 뒤틀려간다는 느낌이 든다.”(59쪽)



남자가 출근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나왔는데 고장이 나서 19층에서부터 땀을 흘리며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5층에 한 남자의 다리가 엘리베이터에 끼어 있다. 남자는 119에 신고하려고 했으나 전화기를 집에 두고 와서 없고 다시 올라가려니 힘들어서 1층 경비실에 가서 말하려고 하니 순찰 중이라는 팻말만 있다.


남자는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옆에 있는 남자에게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하자 없다고 한다. 그 옆에 여자에게 부탁하니 짜증을 내며 저 건너편에 공중전화가 있다고 손짓을 한다. 버스가 왔고 남자가 탔는데 아차 지갑이 없다. 버스 기사와 남자가 실랑이를 하는 사이 갑자기 대형 트럭이 와서 부딪친다. 버스는 아수라장이 되고 전화가 없다던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119에 신고하고 가족에게 전화를 건다.


뒤에 오는 버스에 우르르 타고 회사에 도착했는데 어떤 여직원과 탄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다가 멈추었다. 비상벨을 눌러도 소용이 없고 휴대전화도 없고, 문을 겨우 열었더니 10층과 11층 중간이다. 남자는 등을 구부려 여직원이 남자의 등을 밟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왔지만, 사람은 안 온다. 그 사이 경비원이 왔고 남자는 겨우 구출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말라고 구두를 끼워두고 와서 맨발이다.


겨우 사무실에 들어와서 지각한 사유를 말하려고 하자 과장은 회의나 시작하자고 한다. 화장실 휴지 사용 절감 방안에 대한 브리핑 내용을 듣더니 과장은 다시 검토하라고 한다. 오후 근무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가니 엘리베이터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집에 와서 샤워하고 머리를 감으면서 남자는 계속 궁금하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어제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단숨에 읽은 김영하 작가의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에 수록된 단편소설이다.


엘리베이터에 남자가 끼였다는 사실을 빨리 알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신고하려고 하면 전화가 없고, 빌릴 사람이 없고, 또 다른 사고가 생긴다.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오히려 남자를 경계한다. 예전에는 남의 집 일에 지나친 관심을 가졌었던 다정했던 사람이 지금은 지나치게 남의 일에 무관심하다. 나와 상관없는 일,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남자는 버스 안에서 여자를 추행하는 다른 남자를 보고 소리 질렀고 오히려 오해를 샀다. 다른 부서 여직원과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았다. 응급 상황을 보고 119에 신고하려고 했던 남자, 갇혀있는 엘리베이터에서 여직원을 먼저 구해준 남자는 왜 피해를 봐야 하는가? 남자가 사무실에서 하는 일도 어이없다. 화장실 휴지 사용 절감 방안이라니? 개인차가 있는 사용 습관을 어떻게 연구해서 바꾼단 말인가.


어이없는 설정을 한 단편소설을 읽으며 허탈한 웃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밋밋한 일상이 지루할 수는 있지만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면 안 된다. 운 좋은 하루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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