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컨추리우먼 Aug 26. 2022

늙은 웹기획자

지하철에서 읽는 책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건, 조금은 슬픈 일인 것 같다." 19쪽


나이 들어 다니는 직장생활은 쉽지 않다. 젊은 직원들은 능력 있고 화려하다. 저자에게도 꽃피던 시절이 있었다. 기획안 작성해서 통과되고 대리 승진하고 스트레스 해소한다며 하이힐 신고 클럽에 다녔다.


지금은 조용히 사무실에 앉아 눈치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도 하고 글도 쓴다. 한때는 게임용 키보드를 가져와서 다른 직원들 눈치 안 보고 소리 나게 두드리며  일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글 쓰시죠? 키보드 소리만 들어도 압니다." 36쪽


나중에 팀장한테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는 저자는 사무실에서 내가 무얼 하는지 모르는 이가 없다는 걸 알았다.


나이를 먹어가니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된다. 우울증도 오고 사는 게 무기력하다.


새로운 기획안을 내놓기에는 아이디어가 딸린다. 알아야 할 프로그램도 많다. 점점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계산서 정리하기 사무용품 구입하기 탕비실 정리하기 등 잡무가 업무로 바뀐다.


성과등급이 B만 나와도 안도하고 C가 나와도 감수한다. 직장에 다닐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그래도 짬을 내서 글을 쓴다. 글을 쓰며 자신을 위로하고 글을 쓰며 희망을 갖는다. 그 희망은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다.


책이 잘 팔리기 바라며 저자는 여전히 직장에 다닌다.


이 책을 읽으며 꼭 내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나 역시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뭔가 꿈을 꾸었던 시절이 가고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던 시간이 흐른 에 팔다리 힘 빠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때는 명품이었지만 이젠 유행이 다 지나고 주름진 가방이 되었다. 리폼이라도 해서 다시 유행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할까? 그 시간조차 아깝다.


까짓 거 주름지면 어떠하리 나는 나대로 사는 거지, 리폼하기 귀찮으면 싸구려 비닐가방으로 바꾸면 된다. 질기고 가볍고 아무거나 다 들어간다. 시장 가서 두부를 담아도 되고 빵집에 가서 갓 구운 식빵을 담아도 된다. 언제나 책 한 권은 넣어야 하고 아침마다 어떤 책을 넣을지 고민해도 행복하다.


출근해서 하루를 보내는 사무실에서 키보드는 정말 중요하다. 저자의 소리 나는 취향에 동의하긴 어렵지만 개성은 존중해주고 싶다.


소소한 일상을 재치 있게  그려낸 책 <늙은 웹기획자>는 결코 늙지 않은 작가가 쓴 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해드린다.


*도서 지원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9월이 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